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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고 싶어서 퇴사합니다 조회 : 2376
스톡king (211.211.***.217) 작성글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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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급 장군
2016/03/03 23:31
 

사표는 직장인이 꺼낼 수 있는 최후의 카드다. 개인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저항이기도 하다. 어렵게 취업문을 통과한 젊은이들은 왜 회사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을까.

청년 고용 빙하기, 이태백(20대 태반이 백수), 이구백(20대 90%가 백수), 인구론(인문계 90%가 논다), 십장생(10대도 장차 백수가 되리라)…. 청년 실업을 가리키는 신조어가 끝없이 개발되는 현실. ‘바늘구멍’ 진입에 성공한 낙타들도 안심하기는 이르다. 중산층의 삶이 보장되는 ‘좋은 일자리’를 가져도 삶은 피폐하다.


각종 지표가 우울한 현실을 보여준다. 한국인 노동자의 1인당 평균 노동시간은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국가 중 멕시코 다음으로 많다. OECD 회원국 평균에 비해 주당 6.8시간 더 일한다. 신입 노동자 3명 중 1명은 입사 1년 이내에 퇴사한다. 1000명 이상 규모의 기업에서 고용보험 피보험 자격 상실률은 2004년 19.9%에서 2013년 29.8%로 크게 증가했다.

 

고용보험 피보험 자격 상실은 다니던 직장을 잃은 것을 의미한다. 명예퇴직을 당하거나 해고를 당해 잘려나간 수치다. 예외도 있다. 자발적 퇴사자들이다. 높은 학점과 토익, 해외 연수, 각종 자격증, 수상 경력 등의 화려한 스펙을 쌓고 어렵게 대기업 정규직 일자리를 얻으며 ‘온몸을 불살라 일하리라’ 마음먹었지만 1∼5년 만에 회사를 떠난 이들이다. 이들은 왜 사표를 썼을까? 회사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시사IN>은 ‘중산층 임금이 보장된’ ‘좋은 일자리’에서 자발적으로 퇴사한 11명을 만났다. 1985∼1988년생(현재 20대 후반∼30대 초반)으로 한때 연봉 4000만∼7000만원을 받던 ‘엘리트 직장인’이었다. 이들 가운데 4명의 이야기를 싣는다.


● 갚을 게 있어야 회사에서 버틴다


2013년 김남희씨(가명·28)는 지방 사립대의 인문계 출신이자 어학연수와 공모전 수상 경력이 없는 무(無)스펙 상태에서 세계적으로 알려진 대기업의 금융업종에 입사하면서 학교에서 ‘레전드’로 불렸다. 면접에서는 현장을 잘 돌파할 수 있는 만능 엔터테이너로서 자질을 어필하려고 애썼다.


그는 자신의 시간을 온전히 회사에 바쳤다. 아침 7시30분에 출근하고 밤 9시 넘어 퇴근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어느 날은 오전 7시30분에 맞춰 출근하고 있는데 부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7시엔 자리에 앉아 있어야지?’ 동기들은 아침은 포기하더라도 저녁만 보장되면 월급 100만∼150만원 줄어도 상관없다고 말하지만, 자기 저녁을 보장받겠다는 사람을 기업에서 뽑겠나?”


영업부에 소속된 김씨는 자신이 관리하는 매장의 매출이익을 성과로 인정받았다. 부장이 실적 달성 목표치를 잡으면 반드시 성취해야만 했다. 평가 시즌에는 허위 계약을 만들어서라도 매출이익을 올리는 일이 공공연했다. 매출이 오르면 돈으로 보상받았다. 그의 통장에는 매해 7000만원가량이 꽂혔다.


“과연 돈으로만 만족할 수 있을까?” 그가 이런 고민을 하기 시작할 즈음 동기들은 차를 샀다. “대부분 신입 사원은 1년차에 외제차를 산다. 갚을 게 있어야만 회사에서 버틸 수 있으니까. 한 부서에서는 주니어 사원 7명이 빚을 내 벤츠를 샀다. 기업 네임 밸류에 자기를 맞추려는 뜻도 있고 일에 대한 보상이기도 한데, 사실 족쇄를 채우려는 목적이 제일 크다.”


꾹꾹 참고 일하더라도 고용안정성은 보장되지 않는다. 김씨의 회사에서는 “나이 든 직원을 필요로 하지 않는” 태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곤 했다. 인사팀 담당자는 40대 이상 직원 몇몇에게 “썼나, 안 썼나”를 묻고 다녔다. 희망퇴직 신청서를 두고 하는 말이다. 하루아침에 퇴출 대상이 된 상사를 보는 일은 절망스럽게도 김씨 본인의 일로 느껴졌다. “어차피 60세 정년을 채우는 사람은 없다. 그 전에 다 나가야 하니까.”


그는 책을 읽고 운동할 수 있는 저녁을 원했다. 하지만 ‘생존’에 필요한 돈보다 훨씬 많이 벌면서도 일상을 누릴 수는 없었다. “정부가 말하는 ‘좋은 일자리’에 전 직장은 반드시 포함될 거다. 하지만 그런 좋은 일자리에서도 노동이 생활을 짓눌렀다.”


우리 사회에서 일과 생활이 양립 가능한 직업이 있기는 할까? 만 3년간 회사에 ‘갇혀’ 있던 그가 기자에게 되물었다. 김씨는 지난 1월 퇴사한 이후 특별한 계획이 없다. 요리사·세계여행 등 목록을 정해놓았지만 일단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했다. “만약 재취업한다면 실컷 쓰고 버려지는 부품이 아니라 생활을 지킬 수 있는 일이나 회사와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일을 우선순위로 둘 것이다”라고 김씨는 말했다.


● ‘사내 정치’가 승진의 비법?


송기영씨(가명·30)가 일한 대기업은 수년 전 공기업에서 민간 기업으로 변경되었다. 한때 정권에 따라 사장이 달라지고, 전(前) 사장은 어김없이 비자금 사건에 연루되던 곳이다. 여전히 이런 ‘관습’이 있다. ‘자리’에 연연해하면서 내부 정치가 곧 능력이자 실력으로 통하는 분위기는 송씨가 일의 의미를 찾지 못하게 만들었다.


“일을 통한 성과가 아니라, 내부 정치가 곧 능력이었다. 업무 내용을 설명해줘도 알아듣지 못하는 상사가 다른 이들에 비해 승진이 빠른 게 정말 이상했다. 회사 내 온갖 부서와 커넥션이 있고 본부장이 가는 술자리에 다 따라가는 게 비법이었다.”


회사 내에서도 ‘히피’ ‘4차원’으로 통했다는 그녀는 사내 정치에서 한 발짝 거리를 두었다. 핵심에서 멀어져 스스로 고립된 측면이 있다. 그럼에도 그녀는 이번 인터뷰 대상자 가운데 가장 오래(5년9개월) 일했다. “처음부터 회사를 오래 다닐 수 없으리라 생각했는데, 3년 동안 문화예술 지원 업무를 맡으며 재미를 느끼면서 퇴직이 늦춰진 셈이다.” 회사 밖으로 눈을 돌린 시간도 사표를 유예하는 데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그녀는 회사에 다니면서도 소설가가 되려고 서울예대 문예창작과 시험을 보는가 하면 크루즈 승무원 원서를 내기도 했다. 해외 봉사를 나가려고 알아본 적도 있다.


사내에는 ‘건강한’ 여자 선배가 없었다. 일을 잘하더라도 승진에서 열외가 되는가 하면, 아첨을 늘어놓는 이들만 살아남았다. 한 부서에 여직원이라는 ‘꽃’은 하나여야만 했다. 꽃은 꽃끼리 맞교환되는 식이었다. 여직원은 결혼을 안 해야만 환영받았다. “너 5년 내 결혼할 생각 있니?” 따위 질문이 아무렇지 않게 오갔다. 결혼하면 현장으로 가야 한다. 그런데도 여성 최장 근속연수 우수 대기업으로 손꼽히곤 했다. ‘사원 가족은 기업이 지킨다’는, “입이 떡 벌어질” 정도의 복지 때문이다.


높은 연봉, 사택 제공, 복지 포인트 지급, 전국 각지에서 이용할 수 있는 숙소 등 넘치는 ‘꿀’은 ‘꿈의 기업’의 사원이라는 자부심으로 연결되기 쉬웠다. 연수 때부터 기업 역사를 나열하며 한 가족이 되었고, 매일 아침 똑같은 체조를 하며 일체감을 키워갔다. 직장 밖에 있을 때보다 안에서 자긍심이 큰 이유였다. 이런 이유에서 퇴사 당시 상사로부터 들은 말은 전부 비슷했다. “이만큼 주는 회사가 없다” “이 정도 이름값 하는 데가 어디 있어?”


그러나 의심스러웠다. 회사의 명예에 노동자가 종속되었을 뿐 실제 자기 자신의 성취가 아니기 때문이다. 송씨는 참다 참다 의미를 찾을 수 없는 일을 관두기로 했다. 지난해 9월, 퇴사와 동시에 자신이 제작한 독립출판물을 발행했다. 통장은 비어가지만 다른 세상을 꿈꾸는 이야기를 전달하는 일은 손에서 놓지 않을 계획이다.


● 부품이라기보다 ‘노예’였다, 나는


윤기민씨(가명·31)는 2014년에 입사해 1년4개월 만에 퇴사를 결정했다. 그는 유수의 대기업 유통 관련 계열에서 일했다. 일을 하는 과정에서 한국 경제를 ‘선도’하는 대기업의 파렴치한 모습을 목격했다.


“주요 업무가 협력업체 쥐어짜기였다. 논리가 없고 ‘너희 납품할 거면 단가 깎아라, 안 그러면 물량 끊겠다’ 협박하는 게 일이었다. 단가 깎는 게 성과로 돌아왔다. 수년 전만 해도 공장 여러 개를 운영하던 협력업체 대표가 달랑 하나만 남겨놓고 있고, 재무제표로 적자 사정을 확인하고도 또 단가를 낮추라고 했다. 팀장은 회의 때마다 ‘목에 빨대를 꽂아서 쪽쪽 빨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일은 깡만 있으면 된다. 마음 여린 신입 사원은 상사가 일단 세게 갈구고 나서 협력업체에 보낸다. 그러면 무덤덤하게 가서 해코지한다. 회의감이 들었지만 더 큰 회의감은 그 정도의 경쟁력밖에 없다는 거였다. 기업은 경쟁력이 생겨서 성공하거나 경쟁력이 떨어져서 망하든 해야 하는데, 한국 대기업 제조업은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는데도 특혜를 받고 협력업체를 쥐어짜면서 망하지 않는다. 생각이나 솔루션, 알고리즘을 바꾸는 문제 해결 노력은 전혀 없다. 변할 의지가 없는 시스템은 자존감을 떨어뜨렸다. ‘머지않아 한국 제조업이 추락하겠구나’ 하고 깨달았다. 내가 한국 경제를 악화시키는 대기업을 위해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윤씨는 자신이 ‘노예’였다고 회상했다. 고통스러운 정서적 체험을 표현하기에 ‘부품’보다 ‘노예’가 적절하다. 기업의 논리를 받아들이지 못하면 적응력이 떨어지는, 나약하고 능력이 부족한 사람으로 취급받았다. 그는 입사 때 상사에게 들은 말을 기억했다. “맡은 업무를 못하겠다는 말은 곧 돈을 안 벌겠다는 뜻이다. 회사는 그런 사람을 고용할 이유가 없다. 기업은 부품 하나쯤 교체하는 게 어렵지 않다.” 고용을 인질 삼은 회사에 저항은 통하지 않았다.


급여 외에는 다 포기한 채 수동적으로 살겠다고 체념하고 근무하더라도 노후를 보장받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점은 상징적이다. “예전 세대처럼 1억원에 산 집이 10년 지나 5억원으로 올랐다면 꾹 참겠지만 이미 집값은 5억 이상이다. 수십 년 고생해 집을 사더라도 인구는 줄어들고 장래 부동산엔 기대할 수 없다. 보장이 안 되는데 미래를 담보로 현재를 희생할 이유가 없어지는 것이다.” ‘금수저가 승리자’인 현실 역시 노동 의욕을 꺾었다. 윤씨는 “참고 참아서 열심히 일해도 부모 재산 물려받은 사람한텐 죽어도 못 당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퇴사와 동시에 소규모 영상 제작 업체에 입사했다. 대학 시절 아르바이트했던 경험을 살려 용기를 냈다. 영상 제작이라면 자신만의 길을 개척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대기업에서는 명함에만 기댈 수 있었던 반면, 영상을 제작하면서 “감각과 개성을 존중받는다”는 느낌이 든다.


● 병명이 나오지 않는 병을 얻고서야…


고영주씨(가명·28)는 2013년 굴지의 대기업 금융계 영업팀에 입사하면서 사내에서 오를 수 있는 최고점(임원)을 찍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공부를 계속하고 싶었지만 여건이 마련되지 않았고 그에 대한 보상은 ‘이왕 취업했으니 지위를 획득하는 일’이었다. 사내에서 자신의 능력을 어느 정도 발휘할 수 있는지 가늠해보고 싶기도 했다. 자신 있었다.


그녀의 목표는 건강에 빨간불이 켜지면서 변화를 겪었다. 입사 2년째에 오전 7시20분까지 출근하고도 새벽 2∼3시에 퇴근했다. 링거를 맞으며 버티는 날이 이어졌다. 결국 지난해 7월 사무실에서 쓰러졌다. 눈을 떠보니 사무실 파티션 사이에 누워 있었다. 고작 1∼2분이 흘렀을 뿐인데, 기억이 없었다.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이송됐다. 각종 검사를 했지만 병명은 나오지 않았다. 그때 기억이 생생하다. 집에 와서 통곡하고 말았다. “이렇게는 못 살겠어.” 두 달간 병가를 냈다. 입사한 지 만 2년7개월째였다.


“그날 이후, 몇몇 상사들은 ‘몸 관리도 능력이다’ 같은 조언을 했다. 수치스러웠다. 병가는 승진 포기와 같다는 얘기도 들렸다. 병가나 육아휴직을 길게 쓰는 건 인사고과에 심대한 악영향을 준다고 했다.”


그녀가 몸을 버릴 정도로 일하고 알게 된 건 ‘일은 잘하는 사람에게만 몰린다’는 것이다. 상사가 돈을 더 많이 받는 건 일에 대한 책임을 지기 때문인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일도, 책임도 자신의 몫이었다. 임원에게 보고할 때만 상사가 나섰다. 회사는 구조를 변화시키기는커녕 관심도 두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을 “회사의 부품”이라고 표현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돈은 노동이 아니라 시스템이 벌었다. 월급은 시스템 안에서 마구잡이로 주어지는 일에 대한 스트레스를 버틴 값이다. 입사 때에는 몰랐던 사실이지만, 대기업 계열사의 사장 역시 부품이었다. 결국 고씨가 임원이 되더라도 상급 부품이 될 뿐이었다.


대기업 직장인을 경험한 이후, 삶의 가치가 바뀌었다. 그녀는 대기업·대도시 같은 “겉보기만 번지르르한 데에 질렸다”. 병가 이후 퇴사한 그녀는 8년간의 서울 생활을 접고 고향인 소도시로 거처를 옮겼다. 공기업 가운데 일이 적은 곳에만 지원할 예정이다. ‘최소한’의 노동만 하겠다는 뜻이다. 노동을 자아실현의 도구로 보거나 내부 승진을 하겠다는 기대는 애초에 접었다.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으리라 자신감을 보였던 그녀로서는 대단한 변화였다. 현재 토익·한국사능력시험 등 ‘처음부터’ 공부하고 있다.


신입 사원의 조기 퇴사 현상은 실제로 빈번한 듯 보인다. ‘조건이 더 좋은’ 곳으로 이직한 경우도 있지만, 기업에 인생을 저당잡히지 않겠다고 ‘탈주’한 이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최근 대기업 신입 사원의 조기 퇴사 현상을 분석한 자료가 없어서 실태를 정확히 확인하기는 어렵다. 대기업은 신입 사원을 선발하고서 정착 비용을 들인다. 대기업에서는 통상 신입 사원 한 사람이 성과를 창출하는 데 1년이 걸리고 1억원 이상 소요된다고 보는데, 그가 조기에 퇴사한다면 업무 공백이 생기고 이는 고스란히 손실로 돌아온다. 이 때문에 신입 사원의 퇴사율을 낮추기 위해 기업 내에서도 고심 중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복지제도 도입 △연봉 인상 △단합대회 개최 △멘토링 수준이다.


그러나 ‘당근’을 더하거나 ‘소속감’을 높이는 방식으로는 직장인의 지친 심신을 달래는 데 한계가 있다. 회사가 ‘사표의 이유’에 귀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시사IN 44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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