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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정한 로봇과 청년의 가난 조회 : 1666
스톡king (211.211.***.217) 작성글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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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급 장군
2016/03/14 22:22
 

우리는 정말 ‘달’에 착륙한 걸까. 달이 지구 위로 떨어져 충돌한 것 같은 이 기분은 내가 단지 기술 공포에 사로잡힌 시대착오적 ‘인문충’이기 때문일까.


200년 전 영국에서 태어났더라면 “산업혁명 웬말이냐, 직공들은 다 죽는다” 외치며 러다이트 운동의 주역으로 이름을 남겼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역사는 우리에게 기술은 그런 것이 아니라고 가르쳤다. 슬픈 마음이 떨쳐지지 않는 것은 괜한 기우일 텐데도, 곤히 잠든 두 아이 사이에서 한참을 뒤척거렸다. 천장에 붙여놓은 태양계 야광 스티커는 눈치도 없이 반짝거렸다.


“알파고가 이겼다. 우리는 달에 착륙했다.(AlphaGo WINS! We landed it on the moon.)” 구글의 바둑 인공지능(AI) 프로그램 ‘알파고’를 개발한 IT 천재 데미스 하사비스 딥 마인드 최고경영자가 세계 최고 바둑기사 이세돌 9단을 이긴 직후 트위터에 남긴 이 말에, 고백컨대, 적개심을 느꼈다. ‘우리’가 누구지? 엄밀히 번역하자면 “우리가 알파고를 달에 착륙시켰다”이므로 저 ‘우리’는 구글의 인공지능팀을 일컫는 것일 테다. 그래도 분했다. 하사비스는 대국 전 기자회견에서 “인공지능은 모든 도구처럼 그 자체로는 가치중립적이다. 어떻게 다수가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윤리적으로 쓸지는 사회가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자신은 사회의 일원이 아닌 양 “나는 알고리즘밖에 몰라요”의 태도로 모른 체하고 있다는 반감. 사회의 권력구조가 가난한 자, 못 배운 자, 고용된 자를 어떻게 배제해 왔는지 설마 모르는 걸까 싶은 의구심. ‘똑똑한 나는 다만 실력을 보여줄 테니 너희가 좋은 쪽으로 알아서 잘 사용해 봐’의 오만함을 느낀 것은, 그래, 나의 성격이 비뚤어진 탓이다.


터미네이터의 지배를 받을까 봐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내 상상력은 그렇게까지 멀리 가지 못한다. 나는 그저 생산성이라는 자본주의적 신앙에 대해 한층 더 회의하고 있을 뿐이다. 인간의 생산성과 효율성은 도대체 어디까지 극대화돼야 하는 걸까. 생산성의 무시무시한 증대와 생존한 적자(適者)의 독식구조가 벌려놓은 작금의 불평등만으로도 허리가 휠 지경인데, 사회적 합의 없는 기술의 전력질주를 그저 달 착륙에 빗대며 환호해야 하는 걸까.


새로운 기술로 사라지는 일자리만큼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된다는 고전적 공리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것은 많은 전문가들이 이미 입증한 바다. 미국 인구의 98%였던 농부들이 2%로 줄어들기까지 200년이 걸렸고, 그 200년간의 재훈련을 통해 새로운 일자리로의 자연스런 세대 이전이 이뤄졌다. 하지만 작금의 기술변화 속도는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 일자리 자체가 없는데 재교육이 무슨 소용인가. 디지털 카메라의 등장으로 필름산업은 궤멸됐지만,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이 생겼지 않냐는 반론은 성립하지 않는다. 페이스북의 기업가치가 코닥보다 몇 배나 높지만, 고용인력은 코닥의 극히 일부다.


전기 동력의 발전으로 육체노동의 전쟁에서 패한 인간은 이제 정신노동의 전쟁에서도 기계에 졌다. 목전에 당도한 노동의 종말. 선 마이크로시스템스 공동창업자인 비노드 코슬라는 지난해 포브스에 기고한 글에서 “인공지능이라는 차세대 기술혁명이 소득 불평등을 심화할 것”이라며 “국제사회와 각국 정부는 기술진보가 야기하는 불평등 문제에 대해 더 이상 논쟁과 논의를 미뤄선 안 된다”고 말했다. 인류의 미래를 좌우할 양날의 검을 이윤을 추구하는 민간 기업의 영역에만 맡겨두는 건 정당하지 않다. 인간과 기술의 공존을 위해 국제사회의 합의에 기초한 윤리적·사회적 감시망을 본격적으로 가동해야 할 때다.


장차 인간은 노동시장에 무엇을 제공할 수 있을까. 이제 여섯 살인 내 어린 딸은 장차 어떤 노동을 통해 자아를 실현하고 사회에 기여하며 생계를 영위할 수 있을까. 때마침 청년실업으로 20~30대 가구의 연간 가계소득이 사상 처음으로 감소했다는 통계가 나왔다. 같은 날 영국 일간 가디언은 선진 8개국 20대 청년의 가처분소득이 전체 평균보다 20%나 낮다고 보도했다. 우리는 과연 달에 착륙한 걸까.


한국일보 박선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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