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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놈들 말 하나도 믿지 마세요"…알파고 뒤끝 조회 : 5229
스톡king (211.211.***.217) 작성글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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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급 장군
2016/03/18 23:08
 

"우리는 달에 착륙했다" 인공지능 알파고가 이세돌과의 첫 대국에서 이긴 날, 하사비스 구글 딥마인드 최고경영자(CEO)는 이렇게 말했다. '달 착륙'이라…그 말을 듣는 순간 떠오른 한 이야기.


#미 항공우주국(NASA)은 1969년 아폴로11호 우주선을 달로 쏘아 보내기 위해 달과 비슷한 지형의 사막에 있는 나바호족 인디언 보호구역에서 우주인을 훈련시켰다. 이들과 마주친 나바호족의 나이 든 현인 한 명이 우주인들에게 달에 가면 그곳에 사는 신성한 정령들에게 꼭 메시지를 전달해달라며 나바호 언어로 짧은 문장을 들려줬다. 우주인이 또박또박 문장을 외운 걸 확인한 뒤 그 현인은 만족스럽게 사라졌다. 헤어지기 전 우주인이 뜻을 물었지만, 대답하지 않았다. NASA로 돌아온 우주인이 직원들을 수소문한 끝에 나바호 언어 통역자를 찾아 알아낸 문장 내용은 이랬다. '이 놈들이 하는 말 하나도 믿지 마시오. 당신네 땅을 빼앗으러 온거니까'"


알파고 달착륙 행사가 끝났다.
다행히(?) 사람들은 '달에 착륙한' AI 알파고를 경계해야 한다는걸 인디언 부족의 충고가 없어도 눈치 채고 있는 듯하다. 하사비스가 말한 '우리'가 인류 전체를 의미하는 걸로 좋게 해석할수도 있지만, 이세돌을 이긴 직후 한 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우리'는 '구글 딥 마인드'를 뜻하는 걸로 들릴 수 있다는 점에서 좀 조심했어야 했다.


2차 대전 종전일인 8월15일, 일본의 항복을 전하는 미국의 라디오 방송은 승자의 기쁨 분위기와는 거리가 있었다. 프로를 진행하던 빙 크로스비는 "오늘 우리 모두의 마음속 깊이 자리잡은 감정은 겸손입니다"라고 말했다.
원자폭탄으로 전쟁을 이겼지만, 인류의 손에 엄청난 무기가 들려 있다는 자각과, 그로 인해 엄청난 희생이 뒤따랐다는 엄숙함과 회의가 승리의 기쁨보다 앞섰다(데이비드 브룩스는 '인간의 품격'에서).


기술적 측면에서 인공지능의 성과는 인류로서는 축복해야 할 일 임에 분명하다. 보이지 않는 것을 상상해내는 '인지혁명'으로 인간이 동물과 다른 길을 걷기 시작한 것처럼, '인공지능혁명'은 호모사피엔스를 한 차원 높은 삶의 단계로 올려줄 혁명이다. 농업혁명과 산업혁명보다 훨씬 신속하고 광범위한 혁명일 것이다.
산업혁명 당시 러다이트운동처럼 신기술에 대한 저항은 대체로 '심경은 이해는 갈지언정' 역사의 주류 자리를 차지 하지 못했다.


인공지능이 지금의 '약' 수준을 넘어서 스스로 자아의식을 갖는 '강'수준으로 자체진화하면 인류를 지배하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은 아직은 공상과학 단계이다.
문제는 혁신과 혁명이 아니라 그 뒤의 사람이고, 어떻게 활용되느냐다. 인공 지능 뒤에는 결국 '인간'이 있다. 인디언이 두려워했어야 하는건 제임스타운에 도착한 메이플라워호가 아니라 그 배를 타고 온 유럽인들이었다. 달토끼가 무서워해야 할 것도 아폴로 11호가 아니라 사람인 것 처럼.


인류의 온갖 문제를 다 '합리적으로' 계산하고 조절할 수 있는 인공지능이 있다면 굳이 김정은 같은 '감성형' 인간 지도자보다 인공지능을 마다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더 현실적인 공포는 당연히 부의 집중과 일자리 문제로 좁혀진다. 클린턴 정부에서 노동부장관을 지낸 로버트 라이시 버클리대 교수는 IT 기술 발전이 가져올 미래를 ‘부스러기 경제(Scraps Economy)’라고 표현했다. 큰 돈은 기술기반 플랫폼을 지닌 기업과 기업인에게 돌아가고, 노동자들은 부스러기나 주워먹어야 하는 시대가 된다는 경고다. 알파고의 모기업 구글의 이익 규모나 시가총액은 이미 비교할 대상을 찾기 힘들다.

AI로 인해 사라질 직군이 500개이니 1000개이니, 30년 뒤면 현존 직업의 절반은 사라질 것이니 하는 말은 새삼스럽기까지 하다. 이미 아예 '노동의 종말(제레미 리프킨)'까지 예고돼 온 터에.

모든 신기술이 늘 그랬듯 없어지는 일자리 한편에선 새로운 일자리가 나타날 것이다. 문제는 없어지는 멀쩡한 일자리 대신 생겨날 일자리는 '디지털 노가다'가 대부분일것 같다는데 있다. (알파고 같은 인공지능을 형성시켜주기 위해 수많은자료가 '입력'돼야 할 것인데, 그 작업은 그리 '고상한' 것은 아닐 것이다).


과거 산업혁명으로 인한 생산성 증가,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대중의 수요는 대공황으로 이어졌다. 경제학 이론이 새로 씌여져야 했고, 유효수요를 인공적으로 만들어내는 '반시장적' 케인즈의 처방이 조제됐다.


인지혁명의 시대는 한명의 천재나 한개의 기업이 10만명의 일자리를 만드는게 아니라 수천 수만명 분의 부를 가져간다(허사비스만 해도 딥마인드 설립 4년만에 구글에 6000억원을 받고 팔았다). 허사비스는 알파고는 '조수'일 뿐이라고 했다. 맞는 말이다. 그 조수를 활용하는 기업은 혁신의 대가로 생산성과 효율성을 극대화할 수 있다. 조수를 만들어내는 측은 개척시대 청바지 장사처럼 더 많은 이익률을 뽑을 것이다.
반대로 이익을 향유하지 못하는 기업과 국가는 수요감소와 디플레, 그리고 공황으로까지 이어질수 있는 혁신의 치명적 대가도 가장 크게 부담해야 할 것이다.


자동화 인공지능화는 고용감소로 이어지고, 기업의 고객인 소비자(다시 말해 기업 종업원)의 구매력은 점점 줄어들 수 밖에 없다는 건 우리가 보고 들어온 대로다. 일부의 한정된 소비만으론 산업이 유지될수 없다. 이미 겪고 있는 수요부진, 과잉공급, 경기침체의 악순환 고리 실체를 AI는 한층 명확히 보여준 계기가 됐다.


알파고 이벤트 와중에 난데없는(?) '기본소득' 개념이 재조명 받는게 이 대목이다. 소득을 창출할 능력이 줄어든 사회구성원들에게 최소한 기본적인 '시드 머니'는 주고 시작해야 경제가 돌아간다는게 기본소득의 아이디어다.
급진주의자들이 아니라 실리콘 밸리의 벤처캐피털리스트, 다음 창업자 이재웅 같은 사람들이 자본주의 붕괴를 막기 위해 기본소득 개념의 필요성을 들고 나온다.


기술혁신에 저항하는 퇴행보다는 이를 뒷받침할수 있는 사회시스템을 만들어내는게 전향적이다. 인공지능혁명이 불러올 공황의 파국을 막기 위해선 거기 맞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는 주장에 대한 공감대를 넓힌 것만으로도 알파고 이벤트의 공로는 '명예 바둑 프로 9단증'을 받을 만한 가치는 있다.


이세돌은 알파고와의 바둑을 즐겼다고 했지만, 잔치 뒤끝, 많은 사람들에게는 숙취가 남았다. 알파고의 완승을 바라보며 가장 머리가 무거워야 할 사람들은 바둑인과 IT 전문가들이 아니고 정치인과 기업인, 경제학자들이다.


알파고와 이세돌의 5국 혈투 결과가 전해진 시각, 우리 정치권에서는 여야의 공천혈투 소식이 전해졌다. 인공지능 혁명시대를 헤쳐나가야 할 일꾼을 뽑는 선거가 코 앞인데, 선택 기준이 여전히 '진박 비박, 친노 비노, 내편 네편'이다.
끼리끼리 뒷담화로 '결속력'을 유지할 수 있는 최대 인원 150명 단위로 유지되던 원시시대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은 집단이다. 두 당이 나눠 갖는 우리 국회의원 숫자가 300명인 게 우연이 아닌 것도 같다.

머니투데이 김준형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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