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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누라 설득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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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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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827 2017/03/16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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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누라 설득하기                                             

  나는 1995년 4월 1일 자로 50세에 명예퇴직을 했다. 공무원으로 들어서기도 어렵다지만 물러나기는 더 어려운 일이었다. 공개경쟁채용시험을 치를 때를 생각하면 아쉬운 일이기도 하지만 평소 생각했던 내가 할 일을 찾아 나서는 일이 옳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명예퇴직하면 남은 임기 8년 가운데 5년은 보수의 50%를, 초과분 3년은 25%의 퇴직수당이 안성맞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막상 정년 8년을 남기며 명예퇴직을 결심하고 명예퇴직신청서를 제출하니 총무국장님이 절대로 안 된다는 일이 낭패였다. 그래서 건강문제라고 억지로 우겨 넘겼다. 시장실에도 불려가서 시장님이 나의 계획을 묻고는 자기의 농정국장 시절 이야기를 하시며 농사로도 성공할 수 있겠다고 허락해 주셨다. 나는 지금 나가서 사과농사를 하려 농장을 마련해 놓았다고 했던 것이다. 그런데 더 막강한 장벽은 마누라 설득이다. 마누라는 밥도 먹지 않고 숟가락을 던져 버렸다. 6남매 대학 졸업이 불가능하다는 불만이다. 직장을 그만둔다는 일이 이렇게 어려운 장벽이 겹겹으로 생길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그래도 마누라의 불만 속에 사과원 경영은 열심히 시작되었다. 사과농사를 짓다 보니 대구사과연구소라는 곳을 알게 되었고 기술습득이 아주 빨랐다. 컴퓨터를 통한 통신활동으로 농사기술을 습득하기란 이렇게 좋을 수가 없다고 느꼈다. 인터넷이라는 괴물이 나타나 농사혁신을 일으키고 있는 시대다. 정부가 만든 농림수산정보센터는 농촌에 정보통신 보급으로 크게 성과를 올렸다. 당시 전국에 10만 회원을 자랑하는 농림수산정보센터(APIS)라는 이름의 인터넷 활용에 대대적인 혁신운동으로 발전했다. 나는 전국 사과사랑동호회 5천 명이 넘는 회원과 더불어 초대 회장을 맡았다. 당시 김성훈 농림부 장관님이 경북 칠곡에 이동장관실을 마련하며 초청장을 보내왔다. 동호회 회장들의 소개를 듣고 싶다는 것이다. 김성훈 농림부 장관님은 동행한 기자들에게 독학으로 인터넷을 활용하는 컴퓨터 전문가라고 나를 과분하게 소개했다. 사회를 맡은 국장이 브리핑 시간을 줄여달라고 당부했지만 나는 준비한 내용을 모두 설명한 일이 장관님의 호감을 얻었기에 다행이다. 농사와 인터넷이 화합하는 첫 단추가 뀌어지는 중요한 시기였다.

    차츰 마누라의 성화도 누그러지기 시작하고 힘을 모아 열심히 도와주었다. 사과농사로 얻은 수익금은 마누라 통장으로 고스란히 입금시켰다. 연금도 받고 있었지만, 그것은 애들 학비에도 모자라는 돈이다. 사과밭에 리어커를 끄는 작업과 트럭을 몰며 농사에 흥미로운 재미를 느꼈다. 본디 글을 쓰려는 마음이었지만 농사일에 더 신이 났다. 전국의 곳곳에 흩어져 사과농사를 하는 회원들의 농사경험 글을 모아 "사과사랑 이야기" 책을 출판했다. 초대 회장에서 연이어 연임을 맡으며 인터넷 대화창에서 농사기술 나누기에 재미를 느꼈다. 봄. 가을 전국모임에는 많은 회원들이 한자리하는 기회로 서로 인정을 나누기도 했다. 사과사랑동호회 홈페이지에 올린 글을 간추리니 또 책이 한 권 되었다. 나의 첫 에세이집 "인터넷 세상"을 출판한 것이다. 지금도 나의 홈페이지에 다른 책들과 함께 공개되어 있다. 사과나무에서 발견한 좋은 생각들이 홈페이지 게시판을 통해 가슴으로 전해지는 이야기는 언제나 가슴설레게 아름다웠다.

    마누라는 내가 자유로운 몸으로 자기와 함께 자가용차로 전국을 누비며 좋은 곳만 보게 되니 명예퇴직의 불만도 없어졌다. 공무원 사무에 매여 사는 건조한 생활과는 또 다른 정서가 생겨났다. 근무 당시 총리실에 노인 무임승차권보다는 경로수당 지급과 바른생활 통장 갖기 제안을 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시키는 일만 하는 환경보다는 만들어서 하는 일이 보람 있고 즐거웠다. 농약을 덜 사용하는 껍질째 먹는 사과의 생산에 인기도 있고 보람도 컸다. 이제 애들도 대학졸업을 마치고 결혼하여 모두 자기 자리로 찾아갔다. 20년을 농사일로 보낸 지금은 글 쓰는 일이 주업이 되었다. "우리사랑 별과 함께" 두 번째 에세이집을 내고 나의 홈페이지에는 6권의 책이 편집되었다. 사과농사 힘 드는 일은 젊은 사람에게 맡기고 전체 경영만 한다. 나의 컴퓨터에는 시조집 한 권과 시집 두 권 그리고 제3 에세이집이 편집되어 있다.

    대구문인협회에 회원으로 글을 자주 쓰게 되니 시만 쓰지 말고 소설도 써보라고 한다. 원로 소설가 송일호 선생님이 개인적으로 만난 적도 없지만, 게시판의 글을 보고 소설의 소질이 발견된다고 했다. 그래서 소설집도 한 권 갖고 싶어졌다. 지난 6월에는 자식들이 나의 생일을 위하여 무주리조트에서 가족이 모여 숙식을 같이하고 며칠 놀았다. 덕유산 명산의 정취를 느끼고 역시 무주리조트는 명당자리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인지는 몰라도 6월과 7월에 단편소설 4편을 내리썼다. 그때 쓴 소설 "종부"는 하루에 다 쓴 소설이다. 암만 봐도 덕유산 무주리조트는 명당자리를 차지했다고 느껴진다. 새벽에 일어나 무주리조트를 산책해보니 좋은 환경이었다. 명당지경을 감동하는 마음으로 대하니 바로 나의 소유로 변하는가 보다. 언젠가는 다시 가고 싶어지는 곳이다.

    인터넷으로 마누라 예탁계좌를 열어보니 1억 5천만 원의 유가증권이 빙글거리며 미소를 보내고 있다. 내가 현금으로 찾아다 줄까? 밤새워가며 세는 재미를 느낄래 했더니 마누라 얼굴이 소녀처럼 주홍색을 띤다. 내가 먼저 죽더라도 마누라가 자식들에게 위엄을 보일 힘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제 나이 70을 넘었으니 매월 받는 연금만 해도 살아가지만 만일을 위해서는 이 정도는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누구의 글을 보니 나는 1억 원을 만져본 여자야! 는 글이 생각난다. 5만 원권 다발을 온 방에 펼쳐놓고 세는 재미도 느낄 만한 일일 것이다. 자식들이 만날 때마다 주는 수십만 원씩 용돈 받아 챙기는 마누라 얼굴의 미소를 훔쳐보게 된다. 다 먹고 가지 못할 돈이 그렇게도 좋은가 싶다. 내가 먼저 죽더라도 내 연금의 70% 유족연금은 자동지급될 것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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