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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의 실제 모습에 관해 가장 정확하게 분석한 글.txt 조회 : 2752
스톡king (222.233.***.150) 작성글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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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13 22:40
 




안철수(安哲秀)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은 부산고와 서울대 의대를 졸업했다. 서울의대에서 석·박사를 받았고, 단국대 의대 교수를 하다 군의관을 마치고 전역한 뒤 인생 진로를 송두리째 바꿨다. ‘안철수백신연구소’라는 컴퓨터 바이러스 연구소를 만들어 기업가로 변신했고, 카이스트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렀다. 2012년 9월 현재 그는 대한민국의 유력 대선(大選) 주자다. 



그가 걸어온 길은 여태껏 대통령 선거에 뛰어든 이들과 사뭇 다르다. 어찌보면 다르다고 단언할 수도 없다. 정확히 말하면 다른지 다르지 않은지조차 명확하지 않다. 성장과정과 걸어온 길에 대해 상세하게 알려진 게 없기 때문이다. 《안철수의 생각》이란 책을 냈지만 거기에는 그의 생각이라기보다는 ‘모범답안’ 성격의 담론이 실려 있다. 재벌관, 전세살이, 룸살롱 출입 등 상당 부분은 그의 실제 행적과 완전히 다르다. 때문에 정치권에서는 ‘안철수가 도대체 누구냐’는 의문이 끊이지 않는다.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의 경우는 정치권 입문 후와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 몇 차례 선거를 거치면서 검증이 사실상 끝났다. 정치적 반대자들이 촉발한 논란은 여전하지만 그가 어떤 성장과정을 거쳤고, 아버지 박정희의 공과(功過)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가 비교적 투명하게 드러나 있다. 


안철수 원장은 그러나 박근혜 후보와 비교하면 사실상 아무 것도 알려진 게 없다. 그저 ‘안랩’이란 컴퓨터 바이러스 연구소를 차려 이 분야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했고 몇년 전부터 청춘콘서트란 젊은이들 상대의 대화 프로그램에 멘토로 참여했다는 정도라고 해도 전혀 심한 표현이 아니다. 


대선을 100일도 남겨 놓지 않은 2012년 9월. 아이러니하게도 안 원장은 야권(野圈)의 가장 강력한 대선 주자다. 정치라곤 근처에 가 보지도 않은 컴퓨터 바이러스 전문가가 기라성 같은 정치인들을 압도하고 있는 현실은 분명 정상이 아니다. 그런데도 젊은 층을 중심으로 ‘안철수 현상’은 수그러들 기미가 없다. 기존 정치권에 실망한 유권자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는 안 원장이란 사람은 누구일까. 그의 오늘이 있기까지 그를 알 만한, 알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게 물었다. 당사자들이 가감없는 얘기를 위해서는 익명 처리를 해 달라고 요청한 경우 받아들였다. 
  


안철수 원장은 부산고 33회다. 33회는 이과반 8개, 문과반 2개 등 총 10개반으로 동창생은 600여 명 정도다. 


안철수 원장과 1학년 때 한반을 했던 K씨의 기억은 이렇다. K씨는 현재 자영업을 하고 있다.


“철수와 에피소드 자체가 없습니다. 철수는 친구들과 깊이 사귀는 스타일이 아니었고, 굉장히 차분했습니다. 우리가 학교 다녔던 1970년대는 <말죽거리잔혹사>(1970년대 후반 남자 고등학교를 다닌 학생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영화)랑 비슷했어요. 주먹질하고, 처해진 시대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혼돈기였지만 철수는 우리랑 생각 자체가 달라 보였습니다. 애늙은이 같다고 할까요. 학교 수업이 끝나면 집으로 바로 갔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다른 반 아이들은 철수를 모를 수밖에 없고, 같은 반이었어도 잘 안다고 말하기 뭣합니다. 한번은 동창생들이 모였을 때 ‘안철수연구소의 안철수가 부산고 동기야’라고 말하니까 ‘정말이냐?’고 놀라는 친구가 상당히 많았습니다.” 


안철수 원장과 2학년 때 같은 반을 했고, 동문회 일을 맡았던 S씨의 얘기는 이렇다. 동문회 일을 맡았다면 동기들을 가장 잘 알기 마련이다. 


“철수는 책 많이 읽고 모범적이고 공부 잘하고 얌전하고 조용한 친구였습니다. 크게 튀는 친구가 아니었죠. 철수가 공부는 꽤 잘했지만 잘 안다고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겁니다. 워낙에 조용하고 모범적이어서, 친구들이 신기하다고 여길 정도였습니다. 우리와 다른 세상을 사는 아이 같았습니다.” 


안철수 원장과 2년 동안 같은 반을 했던 K씨의 기억도 비슷하다. 


“놀기도 잘하고 공부를 잘했던 친구들은 기억이 나는데, 철수는 그냥 조용히 공부만 하는 아이였습니다. 쉬는 시간에 애들이 의자를 던지고 심한 장난을 쳐도 철수는 아랑곳하지 않고 책만 봤죠. 좀 특이했어요. 전혀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처음에 철수가 서울시장 선거에 나올지 모른다는 신문 보도를 보고 동기들이 정말 깜짝 놀랐다니까요.” 


이런 이유 때문인지 부산고 동문들 사이에서는 ‘안 원장이 정치에 몸담지 않았으면’ 하는 의견이 많다고 한다. 


동창생 K씨는 “학자로 남지, 왜 진흙탕 같은 정치권에 투신하려 하느냐는 말이 많다. 철수가 도와달라고 하면 모를까, 지금 같은 상황에서 ‘철수를 돕자’고 말하는 것도 이상한 것 아니냐”고 했다. 


안철수 원장과 부산고 동창이며, 같은 이과반이었던 K씨는 “철수에 대해 잘 안다고 하는 동기생을 찾기 어려울 것”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그냥 엄청 부잣집 아들이죠, 뭐. 그때까지만 해도 아빠가 의사인 애들이 몇 안됐거든요. 의료보험이 없던 시절이어서 병원집 아들이라고 하면 굉장히 부유한 사람이죠. 철수는 학교에서 눈에 띄지 않는 얌전한 학생인데, 친구들과 교류가 없었습니다. 당시 학교에서 전교 1~30등 정도의 학생들을 위해서 독서실을 마련해 줬습니다. 그런데 철수는 학교 독서실에서 공부를 안 하고, 수업 끝나면 곧장 집으로 갔습니다. 당시에야 과외 광풍이 불던 시절이었으니까, 과외를 많이 하는 학생들은 학교 독서실에 잘 남지 않았죠. ‘내 친구 철수’라고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겁니다.” 


취재를 하느라 부산고 33회 동창생들을 여럿 만났지만, 다들 하는 얘기가 비슷했다. 그래도 ‘서울의대’를 갈 정도였으면, 적어도 공부로는 꽤 이름을 날리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에 대해 부산고 33회의 또 다른 K씨는 이렇게 말했다. 


“줄곧 전교 1, 2등을 했다면 기억하겠죠. 부산고 30회부터 소위 말하는 ‘뺑뺑이 세대’였어요. 33회에서 서울대에 진학한 사람은 19명뿐이었죠. 당시에 문과반 톱은 현재 판사로 있는 홍 모였고, 이과반 톱은 의사를 하는 김 모였습니다. 제가 알기로 고등학교 3학년 때 딱 한 번 전교 톱을 한 것 같기는 한데, 철수는 공부로도 눈에 띄는 학생이 아니었죠.” 


안철수 원장의 부산고 한 동기생은 “요즘처럼 이과에서 전교 1등을 하면 무조건 서울의대에 진학하던 때가 아니었다. 서울대 물리학과 등 순수 이과로도 많이 진학했다. 철수는 연세대 의대 특차 모집에 지원했다가 떨어졌고, 이후 정규 모집에서 서울의대에 지원해 붙었다”고 말했다. 


비슷비슷한 이야기를 듣던 와중 안 원장이 고등학교 1학년 때 고액과외를 받았다는 증언이 나왔다. 부산고 동기는 아니었지만 안 원장에 대해 굉장히 자세히 알고 있는 이였다. 


그의 이야기다. 


“안 원장이 고등학교 1학년 때 7개월 동안 고액과외를 받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성문종합영어를 월요일 부터 토요일까지 2시간씩 자신의 집에서 배웠습니다. 비용이 한달에 100만원 정도였는데 지금 시세로 치면 1000만원 정도 하는 고액이었습니다. 과외는 아버님이 원하셔서 하게 된 것 같더라고요. 안 원장이 만화책 읽는 것을 좋아했는데 안영모씨가 과외선생님에게 제발 만화를 끊게 해달라며 과외를 부탁했다고 하더라고요.” 


안철수 원장의 부친인 안영모씨와 교분이 두터운 사람들도 그 아들인 안 원장에 대한 기억이 많지 않았다. 지난 9월 5일 찾아간 범천의원(안철수 부친이 운영하는 병원)은 영업을 중단한 상태였다. 철제 셔터가 내려져 있었고, 그 사이로 ‘49년간 범천의원을 내원해 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라고 쓰인 안내문이 보였다. 


안영모씨가 범천의원을 정리하게 된 계기는 부산 《국제신문》과의 인터뷰가 발단이 됐다고 한다. 안영모씨는 인터뷰에서 “(연말 대권구도는) 안철수 대(對) 박근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보도 직후 안철수 원장은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 “쓸데없는 인터뷰 마시고 병원을 접으시라”고 역정을 냈다고 한다. 



병원 안팎의 사람들은 안영모씨와 친분이 두터운 이들로 병원 근처에서 대양약국을 운영하는 김만규씨와 대양부동산의 박정옥씨를 언급했다. 이들은 안영모씨의 술친구라고 했다. 



김만규씨는 1964년에 부산 범천동으로 이사왔을 때부터 50년 가까이 안영모씨와 알고 지냈다고 한다. 그는 “안철수에 대해 잘 듣지 못했다. 당시 엄청 좋은 사립초등학교인 동성초등학교를 다녔고,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는 것, 성격이 온순했다는 것 정도”라고 했다. 



“어렸을 때 공부한다고 바빠서 친구 아들이지만 얘기는 많이 못해 봤습니다. 초등학교 때 밖으로 놀러 나오지도 않았으니까. 안영모 원장을 통해 착실하게 크고 있다는 정도는 얘기 들었지요.” 



‘대양부동산’의 박정옥씨는 안영모씨가 최근 병원 문을 닫은 이후에도 두세 차례 안영모씨를 만나 얘기를 나눴다고 했다. 



“철수가 유치원부터 고등학교를 부산에서 다녔지만 이웃사람들이 걔를 거의 못 봤어요. 공부하러 학원 가느라 집에 있는 시간이 거의 없었거든. 공부는 잘했는데 상당히 내성적이었어요. 말이 없고, 여자 A형(소심하다는 뜻)이라고 보면 딱 맞을 겁니다. 아버지를 닮았나 봐. 안영모 원장이 딱 그렇거든. 학교에서도 많이 맞았다고 하더라고요. 예전에 안영모 원장이 술 먹으면서 얘기를 하더라고. 하여튼 박력이 없었어요. 그러니까 어렸을 때 때리면 맞고만 있었지.” 


요즘 동창생들 사이에서 안철수 원장의 대변인 역할을 도맡고 있다는 한의사 전창선씨는 안 원장의 얘기를 묻자, 한숨을 쉬더니 “지금은 민감한 시기여서 아무 얘기도 하기 어렵다”고 했다. 



실제로 부산고 33회 동창생들은 때아닌 ‘안철수 효과’를 톡톡히 누리고 있는 듯했다. 부산고 33회 동문회 일을 보고 있는 사업가 K씨는 “내가 철수랑 친했다, 아니다 누구랑 더 친했다는 등 갑자기 여러 말들이 나온다. 하지만 그들 중에서 누가 정말 친했는지 요즘 연락을 하는지조차 알 수 없다. 그래서 부산고 동문회 차원에서는 일절 철수 얘기를 하지 않도록 했다”고 했다. 


주식시장에서 ‘안철수 테마주’로 분류된 우성사료라는 회사가 있다. 안철수 원장의 부산고 동기인 오동원씨가 이사로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8월 주당 1200원대였던 회사의 주식은 반 년 만에 6100원대로 급등했다. 하지만 오동원씨는 “안철수 원장과 친분이 없다”고 했다. 그는 “안철수 원장과 3년 동안 같은 반을 한 적이 없고 개인적인 친분이 없다. 안 원장이 학급 임원이 아니어서 다른 반 임원 학생들과도 교류가 없고 그냥 얌전한데, 부산고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테마주로 분류돼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안철수 원장이 부산 출신이고 부산고를 졸업했지만, 대학에 입학한 이후로는 부산과 거의 교류가 없다는 것이 지인들의 증언이다. 안 원장은 심지어 동문회 모임에도 거의 나오지 않았다. 부산고 출신들은 “졸업 30주년 행사장에 참석한 것이 유일했다”고 기억했다. 



안철수 원장의 동기는 “2010년 11월 27일에 30주년 행사가 있었는데 그때 30분 머물다가 곧장 서울로 돌아갔다. 원래는 참석하지 않을 생각이었는데 친구들이 ‘너무한 것 아니냐. 이번에는 참석해라’고 해서 잠시 왔다 갔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안철수 원장의 부친 술친구들의 얘기도 비슷했다. 



김만규씨와 박정옥씨는 “대학 진학 후에 부산에서 본 적이 거의 없고, 가끔 와도 잠깐 있다가 갔기 때문에 (안철수가) 성인이 된 이후에는 대화를 나눠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안철수 원장은 1980년 서울의대에 합격하면서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왔다. ‘서울의 봄’으로 인해 대학가가 한참 들끓던 시기였다. 당시 서울의대 정원은 160명. 원래 경쟁률이 1 대 1.8 정도로 예상됐으나, 실제 시험에 응시한 이로 환산하면 경쟁률은 1 대 1.3 정도였다는 것이 서울의대 동기생들의 증언이다. 



안철수 원장의 서울의대 한 동기생은 “예비고사(340점 만점)와 본고사를 치렀는데, 본고사가 어려워 국·영·수 300점 중 100점 정도만 맞으면 합격이라는 얘기가 나돌았다. 안철수 원장은 예비고사에선 300점대 초반을 받았다”고 말했다. 



당시 서울의대 예과 2년은 관악 캠퍼스에서, 본과 4년은 혜화동 연건 캠퍼스에서 수업을 들었다. 안철수 원장은 관악 캠퍼스에서 ‘독방 하숙’으로 서울생활을 시작했다. 그의 서울의대 동기 얘기다. 



“의대 예과생(豫科生)들은 기숙사나 하숙 생활을 했습니다. 철수는 부잣집 아들답게 예과 1학년 때부터 독방 하숙을 했습니다. 당시에는 돈 없이 서울로 유학 온 학생들이 많았던 터라 하숙을 해도 2명 또는 여러 명이 한방을 쓰는 것이 많았거든. 그때 독방 하숙을 한다는 건 집에 돈푼깨나 있는 아이들한테나 해당되는 얘기였는데 철수는 처음부터 혼자 지냈죠.” 



시대가 수상했던 터인지라, 학생들은 제대로 된 공부를 하지 못했다. 안철수 원장이 입학했던 1980년은 이른바 ‘서울의 봄’ 시절로 5·18 이후 학교가 100일간 휴교를 하기도 했다. 안 원장 역시 휴교령이 내려졌을 때에는 고향으로 돌아갔다. 



서울의대 예과 2년 시절은 뒤숭숭한 사회적 분위기, 또 석차를 매기지 않고 학생들에게 ‘패스 또는 탈락’을 주는 학점 제도였기 때문에 치열히 공부하지는 않는 분위기였다. 안철수 원장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서울의대 동기생들 대부분은 안철수 원장과 대학시절 술잔을 기울인 사이가 여럿이었다. 대부분은 안 원장이 두주불사(斗酒不辭)였다고 기억했다. 



고등학교 때 얌전했던 안 원장의 대인관계가 변한 것은 어머니의 배려에 보답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상황을 잘 기억하는 안 원장의 지인은 “고등학교 때 조용했던 철수가 대학에 입학하면서 변하기 시작하더라고요. 왜 그럴까 궁금했는데 그때 이런 이야기를 철수 주변에서 들었어요. 한번은 대학 공부가 너무 힘들어서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울었는데, 어머니가 다음 날 올라와 철수를 부산에 데려갔다는 거예요. 부산에서 철수가 낚시를 하면서 한 일주일 쉬었는데 당시에 많은 생각을 했었나 봐요. 그때부터 친구를 사귀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하더라고요.” 



그 후 안 원장은 의료봉사활동 동아리에 가입해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술도 마시고 수다도 떨었다. 술에 잘 취하지 않았지만 일부러 취하려고 노력도 했다. 이때 사람들에게 긴장을 풀고 마음을 여는 법을 배웠다고 한다. 



서울의대 동기생의 얘기다. 
“철수랑 술도 많이 마시고, 당구도 쳤습니다. 당구는 150 정도를 놓고 쳤었고, 술은 관악 앞에 있던 소줏집 정도였습니다. 철수가 술에 취한 모습을 본 기억이 없어요. 또 술은 마셨지만 다른 애들하고는 사뭇 달랐죠. 20대 초반인 데다 세상이 수상하다 보니 늘 동기생들과 술을 마시면 친구네 하숙집에 가서 한잔 더 하고, 같이 자고 그러잖습니까. 철수는 그런 적이 없었어요. 분위기 띄워서 술을 한참 먹다가도 시간이 되면 딱 일어나서 자기 하숙집으로 갔어요. 철수랑 한방에서 잠을 잔 동기는 아마 없을 겁니다.” 



안철수 원장과 서울의대 동기로 현재 국립대 교수를 하고 있는 K씨는 “신입생 환영회 때 선배들 두셋이 철수랑 술내기를 했는데 선배들이 모두 쓰러지고 철수는 멀쩡했을 정도로 주량이 무한정이었다”고 기억했다. 



안철수 원장은 그 시대가 처한 상황에는 상당히 방관자적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1980~1981년, 예과시절에 그와 종종 술을 마셨던 서울의대 동기는 “휴교령(休校令)이 내려졌을 정도로 어수선한 시대였지만 철수와 이런 시대상황에 대해 토론을 했던 적은 전혀 없다”고 전했다. 



호남이 고향인 서울의대 동기생 중 한 명은 안철수 원장과 교분이 두텁지 않았던 것에 대해 이 점을 지적했다. 이 동기생은 “철수는 부산 출신이라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시대가 처한 상황이나 학생들의 운동 등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며 “이름이 ‘가나다’ 순으로 철수와 가까워 친해질 수 있었음에도 덜 친해진 이유 중 하나가 나와 관심사가 달라서였던 것 같다”고 전했다. 



안철수 원장이 졸업한 부산고 선배들은 안 원장을 꽤 챙겼다고 한다. 안 원장과 부산고, 서울대에 같이 진학한 한 친구의 얘기다. 


“철수가 부산고 선배들한테 유난히 예쁨을 받았다고 들었습니다. 부산고 출신 중에 서울의대에 간 사람이 별로 없었는데, 철수 졸업 기수에 있었대요. 부산고-서울의대 출신의 노교수부터 레지던트까지 전부 모여서 종로에 있는 요정에 갔었다고 합니다. 평상 마루가 있는 옛날식 요정에서 신입생 환영회를 한 거죠. 철수가 예의가 바른 데다 얌전하고 조곤조곤 말하는 편이어서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선배들한테 귀여움을 받았다고 들었습니다.” 



안철수 원장은 부산고 친구는 아니지만, 부친이 의사여서 어린 시절부터 부산에서 함께 지내다가 서울의대 동기가 된 친구들과는 제법 어울렸다. 



서울의대 동기는 “철수는 말투나 스타일이 얌전하고 여자 같았다. 지나칠 정도로 샤이(shy·얌전한)했다. 대중 앞에서 강연하는 모습을 보면 저 친구가 과거에 내가 봐 왔던 친구가 맞나 싶을 정도로 놀랍다”고 말했다. 



서울의대 예과를 졸업한 이후에 안 원장은 동급생과 같이 혜화동 연건 캠퍼스에서 수업을 받았다. 안철수 원장은 서울에 올라와서 줄곧 ‘독방 하숙생’으로 지내다가 본과 2학년 때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의 이름을 따서 만든 서울대 기숙사인 ‘정영사(正英舍)’에서 생활을 시작했다. 3인 1실이었다. 



안철수 원장이 이제는 ‘서울의대 80학번’ 사이에서 가장 유명인사가 됐지만, 당시에는 그의 존재를 잘 모르는 동기생이 많았다. 이유 중 하나가 한 해 후배인 현재의 부인 김미경씨와 일찌감치부터 캠퍼스커플이었기 때문이다. 서울의대 81학번은 사상 유례없이 정원미달이 있었던 때로, 총 240여명이 입학했다. 안철수 원장과 달리 부인 김미경씨는 꽤 활달한 성격으로 전해진다. 



성이 ‘김’씨여서 김미경씨와 한조로 예과 수업을 받았던 서울의대 안철수 원장 1년 후배의 얘기다. 



“안철수 선배는 동기생들이랑 지내기보다 늘 미경이랑 같이 지냈습니다. 둘 다 얼굴이 꽤 동안이어서 주위에서 ‘저기 유치원생 둘이 간다’는 농담을 자주 했습니다. 두 사람이 도서관에 앉아서 공부하는 모습이 제가 기억하는 안철수 선배의 전부라도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다른 동기생들과 어울리지 않았고, 늘 미경이랑 둘이서만 붙어 다녔습니다. 하지만 다른 의대커플들이 많아서 유독 눈에 띄는 커플은 아니었습니다.” 



안철수 원장이 서울의대 시절에 유일하게 가입했던 ‘가톨릭학생회’도 김미경씨가 먼저 모임에 가입했기 때문으로 전해진다. 이 학생회의 멤버로 안철수 원장과 생활한 서울의대 출신 L 교수는 “종교가 가톨릭인 학생들 위주로 만들어졌는데 주말에 의료봉사를 하는 봉사서클이었다”며 “전문의도 따지 않은 학생들의 모임이었던 만큼 이렇다 할 봉사활동을 한 기억은 없다”고 전했다.
  


안철수 원장의 부산고 동기들이 그를 잘 기억하지 못하는 것에 비하면, 서울의대 동기들은 그의 존재 자체에 대해서는 기억하는 편이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동기생들은 “안철수는 의대 내에서 철저히 비주류(非主流)였다”고 했다. 



그의 행동패턴이 그러했고, 그가 전공한 생리학이라는 기초의학 역시 그러했다. 의대 내에서 생리학·미생물학·생화학·병리학 등은 기초의학 분야다. 내과·외과·산부인과·소아과 등이 흔히 말하는 임상(臨床)의학이다. 안철수 원장의 동기생으로 모 국립대학에서 교수를 지내고 있는 K씨의 얘기다. 


“철수는 친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친구들과 다니지 않고, 캠퍼스커플이어서인지 늘 둘이 다녔습니다. 예의 바른 사람이었죠. 엄밀히 말하면 예의가 너무 발라서 주위에 사람이 가까이하기 어려웠습니다. 인기도 없고, 외톨이는 아니지만 스스로 먼저 친구들과 교류하려 손을 내미는 법이 없었죠. 더구나 기초의학을 전공하면서 임상의 동기들과 멀어졌죠.” 


― 기초의학을 선택하는 이가 적은 모양이군요. 

“1년에 몇 명 하지 않았습니다. 철수가 다녔던 해가 최고로 많아서 5~6명이 한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후에 1년에 1~2명, 전국적으로도 몇 명 되지 않았죠.” 



― 의대 내에서는 비주류겠군요. 

“그렇죠. 안철수랑 어울린다는 생각도 듭니다. 재미없고, 개인생활에 충실한 사람의 입장에서는 환자와 대면하는 것보다는 혼자 실험하고 연구하는 편이 나았을 겁니다. 그냥 의사인 아버지 밑에서 부잣집 착한 아들로 컸다는 것으로만 기억합니다.” 


안철수 원장이 기초의학을 전공한 이유를 두고 동기생들은 여러 얘기를 했다. 안 원장의 서울의대 동기이자, 기초의학 전공으로 12년을 같이 지냈던 동기생의 증언이다. 


“철수한테 ‘왜 생리학을 했느냐’고 물었던 적이 있습니다. 철수 말이 ‘생리학 점수만 B인가를 받았다’고 해요. 철수, 서울의대 성적이 꽤 좋았거든요. 그런데 다른 과목은 대부분 A를 받았는데 생리학을 B 받고 오기 비슷한 것이 생겼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게다가 철수가 워낙 내성적이어서 환자를 만나서 얘기하는 것을 유독 불편해했던 것 같습니다.” 


안철수 원장의 또 다른 의대생 동기 한 명은 이런 얘기를 했다. 


“본과 3학년 때 임상실습을 합니다. ‘내외산소(내과·외과·산부인과·소아과)’는 필수이고, 이비인후과·비뇨기과 등 마이너 과(科)들 중에는 선별해서 실습을 돕니다. 환자들에게서 채혈하고, 골수검사 같은 것을 하는 과정입니다. 예과를 거쳐 공부만 한 학생들에게 환자를 직접 대면시키는 과정이죠. 


여기서 환자를 대하는 법 등을 배우는데, 철수가 이 과목을 유독 힘들어했다고 합니다. 환자들과 제대로 커뮤니케이션하기 어려울 정도로 내성적인 편이었다는 겁니다. 같은 조(組)에 소속된 동기생들끼리 이 과목을 이수하는데, 철수가 다른 과목에 비해 유독 환자 만나는 임상실습 과정을 어려워했다고 들었습니다. 의대가 적성에 맞지 않는 사람이었던 거죠,” 

이즈음 안철수 원장은 컴퓨터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 


서울의대 동기들은 안 원장이 본과(本科) 2학년이었을 때, 벌써 컴퓨터를 갖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했다. 당시 컴퓨터는 고가(高價)의 기계로, 소유한 학생이 거의 없었다. 


안철수 원장의 서울의대 동기는 “인턴 월급이 27만원, 조교 월급이 50만원인 시절이었는데, 당시 애플컴퓨터(초기 도스모델)는 200만원 정도였을 만큼 고가였다. 철수는 본과 2학년 때 본인 컴퓨터를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 안 원장이 정영사에서 기숙 생활을 할 때 그의 방을 종종 찾아갔던 동기생의 얘기다. 


“기숙사에 가 보면 도스(Dos) 명령어 짜고, 컴퓨터 갖고 놀고 있었습니다. ‘넌 참 별걸 다 한다’고 얘기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의대생 중에서 스트레스를 술로 푸는 친구도 있고 농구나 족구 같은 운동으로 푸는 친구가 있는데, 철수는 어느 쪽도 아니었죠. 혼자 앉아서 노는 것이 가장 편한 학생이었으니 친구가 있기 어려울 겁니다.” 


기초의학을 전공했고, 안철수 원장과 12년 동안 의대를 다닌 K씨의 증언이 이를 뒷받침했다. 


“철수는 운동 못하고요, 엄밀히 말하면 몸을 움직이는 것을 싫어하죠.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도 싫어하고, 혼자 하는 일을 좋아했어요. 철수가 하도 컴퓨터를 좋아하니까 부친이 사 줬다고 들었는데, 당시 컴퓨터 용어인 ‘베이직프로그램’ ‘파스칼’ ‘C랭귀지’ 등도 모두 책으로 배웠습니다. 요즘 말로 하면 자기주도 학습의 귀재(鬼才)라고 할까요. 


바둑을 전혀 못 뒀던 철수가 어느 해인가 방학이 끝난 다음에 바둑을 뒀는데, ‘누군한테 배웠느냐’고 하니까 책 보고 혼자 했대요. 사교(社交)랑은 담을 쌓았죠. 그래서 지도교수한테는 별로 예쁨을 못 받았어요.” 


― 얌전하고 공부 잘하는데, 왜요. 


“철수가 학습능력은 뛰어나요. 전혀 모르던 일도 단기간에 배워서 자기 것으로 소화시키는 능력이 뛰어나니까, 교수님이 어떤 일을 시키면 다른 애들보다 금세 합니다. 그러고 나서 자기가 좋아하는 컴퓨터책 보고 있었죠. 내성적이라 교수님을 모신다거나 살갑게 다가가는 스타일도 아니고요. 어떤 교수가 그런 학생이 예쁘겠습니까?” 


안철수 원장은 당시 ‘롤플레잉(role playing)’이라는 컴퓨터 게임도 즐겨 했다고 한다. 또 몇 군데의 PC잡지로부터 게임 사용설명서를 한국어로 번역하는 아르바이트를 종종 했다는 것이 동기들의 얘기다. 


안철수 원장이 이런 성격이다 보니, 기초의학을 함께 전공한 동기들 사이에서도 존재감이 별로 없었다고 한다. 


서울의대 기초학문 교실은 한 달에 한 번씩 조교모임을 가졌다. 안철수 원장은 이 모임에 이따금 얼굴을 내비쳤다. 늘 남의 말을 듣는 편이었다. 기초모임에서 안 원장을 만난 한 의대 동기에게 어느 날 하루는 잊지 못할 기억이 있다. 그의 얘기다. 


“진아춘이라는 중국집에서 조교들이 자주 모였어요. 실험이 바쁘면 불참했지만 대부분 많이 모였죠. 안철수는 늘 조용한 편이었는데, 하루는 작심을 했는지 노래를 준비했다고 했습니다. 정태춘·박은옥이 부른 ‘그대 고운 목소리’는 듀엣곡이었는데, 안철수가 남자·여자 목소리를 옥타브를 바꿔 가면서 불러서 친구들이 박장대소했습니다. 반주 없이 노래를 했는데 그날 최고의 히트였습니다. 조교 시절 안철수에 대해 떠올리면 그 기억이 유일합니다. 그때 ‘이 친구는 놀 때에도 마음먹고 준비해서 노는 스타일이구나’ 생각했던 적이 있습니다.” 


안철수 원장과 같이 기초의학을 전공한 동기생들은 대부분 대학 교수로 활동 중이었다. 기초의학이 개업을 할 수 있는 전공도 아니고, 사실상 취업할 수 있는 길은 대학에 남는 길뿐이라는 것이 전공자들의 얘기다. 안철수 원장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그는 서울의대에서 생리학 석·박사를 한 뒤 곧장 단국대학교 교수직을 맡았다. 현재 국립대학 교수로 재직 중인 기초의학 관계자의 말이다. 


“대학 졸업 무렵인 1980년대 후반에 전국에 의대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났습니다. ‘서울의대 출신’은 어디든 본인이 원하는 곳에 취업할 수 있었죠. 서울대에 남는 것은 집안에 의사가 있거나, 교수 출신 아버지를 두지 않고서야 사실상 불가능했습니다. 서울대에 남는 건 ‘신(神)이 점지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였죠. 하지만 신설 대학에서는 서울의대 출신을 모셔 가는 분위기였고, 군(軍)복무도 하지 않았지만 철수는 단국대 교수직으로 갔죠.” 



◈ 再임용 탈락 후 다른 병원 취직 시도 

안철수 원장은 1988년에 의대 1년 후배인 김미경씨와 결혼을 했고, 1989년부터 1991년까지 1년 반 동안 단국대에서 지냈다. 그리고 1991년부터 1994년까지 그는 군의관으로 복무했다. 


군의관을 마치고 전역한 뒤 그는 인생 진로를 전면 수정했다. 1995년에 안철수바이러스연구소를 설립해 경영자의 길을 걷기 시작한 것이다. 취재에 응한 서울의대 동기들은 “철수의 인생을 볼 때 1994년 군의관 제대 이후가 최대 고비였던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안철수 원장은 그동안 몇몇 인터뷰에서 “의사는 내가 아닌 사람들이 할 수 있지만 바이러스연구소는 나 아니면 안될 것 같아서 시작했다”고 말했다. 또 외부에는 안 원장이 ‘단국대 학과장을 내던지고’ 1995년에 연구소를 세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취재 결과 이는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린 얘기였다. 


서울의대 동기들은 “철수가 단국대 교수 재(再)임용 심사에서 탈락해 더 이상 기초학 교수를 하기 힘든 처지였다”고 증언했다. C대 K교수의 증언이다. 


“아마 철수 인생에 제일 힘든 시기가 아니었나 싶어요. 당시에 의대들이 왕창 생기면서 교수를 하다가 군의관으로 가는 애들이 종종 있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은 ‘휴직’을 하고 군의관에 갔는데, 단국대의 경우는 사실상 ‘재임용’을 전제로 퇴사(退社)를 하고 군의관으로 떠났다고 합니다. 


철수 입장에서야 군에서 제대하면 당연히 단국대로 돌아가면 되는 거죠. 그런데 1년 반 동안 단국대 의대에 있어 봤으니까 재임용 심사를 할 때 이런저런 얘기를 한 모양입니다. 학교측의 장비지원이나 금전지원 등등요. 결국 철수는 재임용이 되지 않았어요. 그 이후에 곧장 연구소를 만들면서 의사 길을 접었죠. 기초의학 분야가 빤해서 금세 소문도 나고 하거든요.” 


S병원에 몸담고 있는 한 관계자는 “철수가 단국대 교수 재임용에 실패하면서 다른 병원 기초의학병동에 취업하고자 인터뷰도 했다”며 “이때까지만 해도 의사의 길을 갈 생각이 있었는데, 곧장 접고 평소 취미처럼 했던 컴퓨터 회사를 열었다”고 했다. 안철수 원장에게 1995년 초기에 투자한 이는 당시 ‘한글과 컴퓨터’의 영업을 맡았던 박상현 사장이었다. 


취재를 하면서 만난 서울의대 동기들에게서 다소 특이한 점을 발견했다. 안철수 원장과 여태까지 연락을 주고받는다고 말한 이가 전혀 없다는 점이었다. 안 원장과 12년 동안 동고동락한 K교수는 “연구소를 만든 이후에 연락을 한 번도 한 적이 없다”고 했다. 실제로 서울의대 80학번 동기 주소록에 안철수 원장의 연락처는 공란이다. 


80학번 동기회 일을 맡고 있는 김모씨는 “철수는 연락처가 없다. 5~6년 전까지만 해도 동기 모임에 간간이 나오더니 발길이 뚝 끊어졌다”며 “들리는 말로는 메일로 연락을 하면 철수가 본인이 파악해서 필요하면 답을 한다는데, 동기 사이에 메일로까지 주고받아야 할 일이 뭐가 있나. 그냥 동기들이 본인이 연락처 알려주지 않으면 공란으로 두자고 해서 철수 이름 옆에는 연락처가 없다”고 말했다. 


부산고 동기생들 중에서 “내가 철수와 친하다”는 이는 몇 명 있지만, ‘최근 언제 연락했느냐’는 물음에 ‘5~6년 전쯤’이라고 말한 이가 고작이었다. 


안철수-김미경 부부를 대학 시절에 함께 봤다는 한 개업의사는 이렇게 말했다. 


“안철수 선배가 가장 뜬 이유가 뭡니까. 바로 서울의대 출신이라는 거잖아요. 서울의대 출신이 의사 안 하고 회사 만들어서 어려운 길 걸었다는 게 히트친 이유인데요. 사실 의사로서 안철수 선배가 한 건 없습니다. 박사학위 논문도 의학계에 공헌할 정도로 의미있는 것도 아니었고요. 서울의대 모임에도 안 나오는데요, 뭐. 요즘 의사들이 만나면 그래요. ‘서울의대 너무 팔고 다니는 거 아니냐’고요.” 



◈ “개인 안철수를 아는 건 부인밖에 없을 것” 

  
안철수 원장의 이런 지극히 개인주의적이며, 혼자 지내는 것이 가장 편한 행보는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전혀 달라지지 않은 듯 보인다. 

안 원장과 같은 시기에 IT 벤처회사를 운영했던 C씨의 얘기는 이렇다.

“안 원장은 조용한 사람이지만 사회성이 아주 부족한 사람입니다. 협회 송년회 모임에는 나왔지만, IT업계 발전을 위해 정치권이나 관계부처 사람들을 만날 때에는 동참하지 않았어요. 당시 IT업계에서는 협회 차원에서 애로사항을 관계부처에 호소하곤 했거든요. 안 원장이야 송년 모임에서나 잠깐 볼 수 있는 사람이었죠. 지난번 ‘힐링캠프’라는 토크쇼 프로그램에서 ‘결산을 했는데 30원이 맞지 않아서 밤새도록 계산기를 두들겼다’는 내용이 나오더라고요. 좋게 볼 수도 있지만 상식적으로 정신이 이상한 것 아닙니까. 안철수 원장이 벤처기업의 트레이드마크로 인식되고 있는데, 엄밀히 말해 그는 벤처업계의 아웃사이더입니다. 안철수 원장을 보면서 일반인들은 ‘인간미’를 떠올리는데, 그는 치밀하게 계산하는 사람이라고 봅니다. 행동하기 전에 머리로 먼저 생각하고 움직이는 사람이죠.” 


IT 벤처기업인인 L씨는 안철수 원장의 ‘지인’으로 거론된다. 같은 시기에 사업을 했고, 두 사람이 개인적으로 적잖이 얽혀 있어서다. 때문에 요즘도 언론에서 ‘안철수의 지인’이라고 할 때, L씨의 이름이 오른다. L씨의 얘기다. 


“안철수 대표가 대통령 후보로 거론된다니까 주위에서 저를 두고 ‘나중에 정보통신부 장관하는 것 아니냐’는 우스갯소리를 합니다. 전혀 사실이 아니죠. 알고 지낸 세월은 20년이 넘지만, 정작 그를 만난 건 10번 정도일 겁니다.” 

― 꽤 친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나이와 프로필로 보면 겹치는 부분이 있어서 그렇게 추측을 하는데 전혀 사실이 아니죠. 2~3년에 한 번씩 업계 모임에서 만나는 정도가 다였습니다. 개인적으로 친하다고 말할 수 있는 스타일이 아닙니다, 안 대표는요. 안철수 대표가 30분 얘기를 할 때 그 말을 하나하나 받아 적어 보면 토씨 하나 틀리지 않는 스타일이에요. 말하기에 앞서서 생각하고, 또 그걸 스스로 정리한 후에야 입을 떼는 스타일입니다. 제 생각에 안 대표의 넌오피셜(non official·공적이지 않은)한 모습을 본 사람은 부인 외에 없을 겁니다.” 


안 원장과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카이스트의 P교수에게 연락을 했더니 “나는 안 원장과 밥 한 번 먹어 본 적이 없는 사이다. 얘기를 나눈 적도 물론 없다”고 했다. 안철수재단의 이사이자 안철수연구소 사외이사를 지낸 윤연수 카이스트 교수는 “안 원장과 내 사이에는 에피소드라고 할 만한 것이 전혀 없다”는 말만 반복했다. 

안철수 원장의 현재 직장인 서울대 융복합과학기술대학원 사람들은 요즘 안 원장의 유명세를 톡톡히 간접 경험하고 있다. 개강파티나 종강파티 차원에서 회식이라도 갈 때면, 안 원장 주위를 둘러싼 일반인들 때문에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할 정도란다. 또 지난해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할 것으로 얘기될 때부터 서울대 기술대학원에 들어가는 사람들을 통제하는 경비가 생겼다. 


지난 7월에는 강릉 경포대로 1박2일 워크숍을 갔었는데 안 원장에게 사인을 받기 위해 줄지어 선 사람들의 공세에 시달려야 했다. 서울대 기술대학원의 한 교수에게 ‘안 원장과 친분이 각별한 사람이 누구냐’고 했더니 이렇게 말했다. 


“친한 사람이 없을 겁니다. 안 원장이 디렉터(director)로서 학교 일을 관장하는 역할을 하지만 정말 공적인 얘기만 하거든요. 처음에 원장으로 왔을 때부터 연구소 부서를 어떻게 합칠까, 또 전공은 누구를 뽑을까 하는 학교 운영에 관한 얘기를 했습니다. 포멀(formal)한 관계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요즘도 그 모습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는데, 뭐랄까요, 정치색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의식적으로 학교 얘기를 많이 한다는 느낌입니다. 학교에 민폐 끼치지 않으려 그러는 것 같기도 하고, 갑자기 본인이 드라마틱하게 대권 후보가 돼서인지 디렉터와 교수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 이외에는 일절 말하지 않습니다.” 


또 다른 서울대 기술대학원 관계자의 얘기다. 


“좀 민망할 정도로 깍듯하다고 할까요. 한번은 회식 자리에서 ‘저는 술을 하지 않습니다’라고 했어요. 그런데 우리나라 술자리라는 것이 ‘잔만 받으세요’라는 식의 얘기들이 오가잖습니까. 굳이 술을 마시라는 것이 아니라 같이 분위기 좋게 건배만 하라는 식으로요. 그런 자리에서도 안 원장은, 왜 유도리가 없다고 해야 하나, 그런 식입니다. 좋게 보면 자신의 소신을 지키는 것이고, 나쁘게 보면 주위의 분위기와 상관없이 자기가 생각하는 바를 밀어붙이는 식이죠.” 


서울대 대학원 관계자에 따르면, 요즘도 통상 일주일에 1~2번씩은 학교 운영회의가 열린다고 한다. 점심 식사를 겸한 회의가 대부분인데, 안 원장은 주로 이 자리에서 타인의 말을 듣는 편이라고 한다. 


안철수 원장의 ‘듣는 습관’은 대학시절부터 오늘까지 죽 이어 온 습관 같아 보인다. V소사이어티에서 안 원장을 자주 봐 온 재벌 3세 K씨가 기억하는 안 원장은 이렇다. 


“안 박사는 말을 못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누가 시키기 전에는 안할 뿐입니다. V소사이어티 세미나에서도 ‘안 박사도 한 말씀 하시지요’라고 하면 청산유수로 말을 했습니다. 대신에 자신이 먼저 화제를 꺼내거나, 좌중을 아우르며 대화를 끌어가지 않는 편이지요.” 


안철수 원장의 부산고, 서울의대 시절에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의 행적을 보면 대체적으로 일치하는 얘기가 있다. 안 원장은 어렸을 때부터 매우 소심하고 여성스러웠으며, 부잣집 아들로 여유롭게 컸고, 예의 발랐으며, 학습능력이 뛰어났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렇다 할 친구가 없는 사람이 안철수 원장이다. 


안철수 원장과 부산에서 함께 지냈고 동료였으며 현재 교수인 사람의 얘기다. 


“철수가 쓴 《안철수의 생각》이라는 책을 보면서 여러 생각이 들데요. 철수가 자기 자신을 너무 포장했다는 마음에 씁쓸했죠. 그냥 철수가 걸어온 길을 담담하게 그대로 써도 충분히 사회적으로 존경받을 만한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꼭 전세 살아 봐서 전세 설움을 안다, 없이 사는 사람들의 고통을 이해한다고 말하지 않더라도요. 생각해 보세요. 단국대 교수 재임용에서 떨어져 당장 먹고살 것이 없을 정도로 가난한 집 아들이었다면 의사 길 때려치우고 취미였던 컴퓨터 사업 한다고 나설 수 있었겠습니까. 원래 부자 아버지를 둔 덕분에, 돈 걱정은 안 하고 산 덕분에 철수가 할 수 있었던 것이 분명 있어요. 이제는 그런 것들이 뒤섞여 모든 것이 철수의 고매한 생각에서 시작된 양 포장됐지만요.” 



안철수 원장의 부산고, 서울의대 시절에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의 행적을 보면 대체적으로 일치하는 얘기가 있다. 안 원장은 어렸을 때부터 매우 소심하고 여성스러웠으며, 부잣집 아들로 여유롭게 컸고, 예의 발랐으며, 학습능력이 뛰어났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렇다 할 친구가 없는 사람이 안철수 원장이다. 


출처 - 불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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