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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샐러리맨 - 제11장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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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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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888 2018/10/19 18:23
수정 2018/10/19 18:24

게시글 내용


용문산을 내려온 서정과 왕위안은 양평군의 남쪽 근교에 자리한 정바이오텍 연구소를 찾아가기로 했다. 


그것은 화교 노인이 정바이오텍에 대해서 살펴봐 달라고 신신당부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서정은 무엇 때문에 양평군에 들어서자마자 즉시 정바이오텍 연구소를 찾아가지 않았을까?


원래 서정은 팔팔 끓는 물에서 국수 면발 건져 내듯 단번에 일을 해치우는 스타일이 아니라서 왕위안을 데리고 용문산 정상에 오르는 여유를 가졌던 것이다.  


서정과 왕위안은 정바이오텍 연구소의 정문에서 경비원을 만났다. 


"무슨 일로 방문하셨습니까?"


"정형우 박사를 만나러 왔습니다만."


"약속을 하셨습니까?"


"아닙니다."


"그렇다면 어떤 분이신지…"


"특별히 내세울 만한 것은 없습니다." 


경비원의 얼굴이 다소 굳어지는 듯했다. 


"미안합니다만 우리 연구소는 신원이 불확실한 사람은 들어올 수 없습니다." 


"아, 그런가요? 그런 문제라면… 화교협회의 주선으로 방문한다는 게 도움이 될지 모르겠군요."


경비원이 살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화교협회의 주선으로 방문했다고요? 진작 말씀을 하시지…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경비원이 어딘가로 전화를 걸고 이러쿵저러쿵 대화를 나누더니 환한 미소로 서정에게 말했다.


"환영합니다. 어서 들어가십시오."


서정과 왕위안이 정문을 지나서 연구소 입구에 이르자 젊은 사내의 안내로 정형우 박사를 만날 수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화교협회로부터 저를 도와 주실 거라고 들었습니다. 많은 도움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대뜸 도와 달라는 정 박사의 말에 서정과 왕위안은 동시에 놀라움을 드러냈다. 


"……"


두 사람 다 말이 없자 정 박사가 조용하게 말했다.


"저는 대표에 연연하지 않습니다만 배아줄기세포에 관한 연구만큼은 제 손으로 마무리하고 싶을 따름입니다. 그래서 임시 주주총회에서 공동대표직을 수락했지요."


서정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렇군요. 그동안 노심초사하셨을 테니 이제라도 연구에 매진하기를 바랍니다."


서정이 뭔가 말하려고 잠시 주저할 때 왕위안이 눈치도 없이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정 박사께서는 우리가 어떻게 도와 주기를 바라시나요?"


정형우 박사가 어색한 미소를 입가에 머금었다. 


"아무 걱정하지 말라던 회계법인이 갑자기 한정 의견을 내고 말았는데… 그게 아직도 마음에 걸립니다. 어떤 불순한 세력이 개입한 것은 아닌지 의심하고 있습니다." 


서정이 다시 질문을 던졌다. 


"그렇다면 그런 의심을 할 만한 구체적인 증거가 있습니까?"


"그런 게 있었다면 경찰이나 검찰에 고발했겠지요. 몇 개월 동안의 노력이 모두 물거품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이것만 생각하면 답답할 뿐입니다."


"그렇다면 제3의 세력이 개입했다는 구체적인 증거를 찾으면 되겠군요."


"그렇지요. 그렇게만 된다면 한정 의견을 뒤집거나 그게 안 된다고 하더라도 다음 번 회계연도에는 제대로 된 자료를 발표할 수 있게 될 겁니다."


"제3의 세력이 개입한 게 사실이라면, 우리가 그 증거를 찾으려고 애쓰지 않아도 그 증거가 스스로 우리를 찾아올 거라고 생각합니다."


"예? 그게 무슨 의미인지…"


"제3의 세력이 단순히 한정 의견을 내는 게 목적이 아니라고 봅니다. 그것은 하나의 수단이었을 것이고, 그렇다면 그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조만간 뭔가를 도발할 게 분명합니다. 바로 그 순간이 증거를 확보할 절호의 기회라고 봅니다."


"그렇게 간단한 것을 왜 진작 생각 못 했는지 후회가 되는군요." 


그러고는 상당히 오랫동안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침묵을 깬 것은 정 박사였다. 그가 비서에게 서정과 왕위안의 임시 거처를 마련하라는 지시를 내렸던 것이다. 


"이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마음 편히 지내시기를 바랍니다."


정 박사가 말을 끝나자 서정과 왕위안은 가볍게 인사하고 비서의 안내를 받아 임시 거처로 향했다. 


정바이오텍 연구소에는 방문객이 머물 수 있는 건물이 따로 마련되어 있었다. 장기간 묵어도 불편하지 않도록 정갈하게 꾸며진 숙소였다. 서정과 왕위아에게 각자의 방이 배정되었다. 


서정은 자신의 방에 들어가자 소파에 앉아 명상을 시작했다. 


몇 시간이 흐르자 어두컴컴한 밤이 되었다. 특별할 것도 없고, 기억되지도 않을 시간이 흘렀던 것이다.


서정은 신중하게 주위의 인기척을 살피다가 창문을 통해 조용히 밖으로 나갔다.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이다. 


숙소의 주변을 이곳저곳 배회하다가 유별난 기세를 뿜어내는 사람이 있음을 발견했다. 


(이런 고수가 여기에 묵고 있을 줄이야! 정 박사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 걸 보면 정체를 감춘 게 분명해. 그렇다면 혹시… 으음!)


서정이 두 눈을 가늘게 좁히며 그 기운이 감지되는 곳을 주시하다가 저 사람에 대해서 확인해야겠다고 마음을 정한 후에 자신의 거처로 돌아갔다. 


*****


날이 밝자 서정은 실례인 줄 알면서 곧바로 정형우 박사를 찾아갔다. 


"이렇게 이른 아침부터 무슨 일입니까?"


"다름이 아니라 확인할 게 있어서…"


"그게 뭡니까?"


"그러니까 제 거처 가까운 곳에 특이한 사람이 묵고 있지 않나요?"


정 박사는 다소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특이한 사람이라고요? 어떤 점에서 그런 생각을 했나요?"


"상당히 강한 기운을 내뿜는 것으로 봐서 50대 이상의 나이 지긋한 사람으로 추정됩니다만."


"아하, 공동대표가 추천한 그 노인을 가리키는 것 같군요."


정 박사는 이번에 새로 취임한 공동대표가 연구소 보안을 위해서 특별히 추천한 경호 전문가라고 설명을 했다. 


서정은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역시 그런 사연을 지녔군요."


"혹시 그분을 의심하는 건 아니지요?"


"아직은 어떤 것도 말할 단계가 아닙니다."


서정이 서둘러 자리를 떠나자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정 박사의 마음은 썩 유쾌하지 못했다. 서정의 의심만으로 그 노인을 의심할 수 없다고 정 박사는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방금 전에 서정이 했던 말을 뇌리에서 지워 버리기로 결심했다. 의외로 쉽게 결정하자 정 박사는 다시 상쾌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역시 사람을 함부로 의심하면 안 되는 법이야.)


그 순간, 정 박사를 만난 서정은 그 노인에 대한 조사가 쉽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정 박사부터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정 박사는 주변의 사람을 전혀 의심하지 않는군. 바로 그것 때문에 자신이 송두리째 무너질 수도 있다는 것을 왜 모를까? 합리적 의심이야말로 발전의 원동력이 되는데 여태 그걸 깨닫지 못하다니 참으로 안타깝군. 쯧쯧!) 

   

서정은 속으로 혀를 찼다. 


"선배님, 아침부터 왜 그런 이상한 표정을 짓고 있습니까?"


숙소 입구에서 만난 왕위안이 고개를 갸웃하면서 서정에게 질문했다. 


서정이 흠칫 놀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닐세. 이것저것 생각을 깊게 하다 보니까…"


서정이 자신도 모르게 말꼬리를 흐렸다. 


어색한 분위기를 감지한 왕위안이 서정에게 돌연 제안을 했다. 


"같이 산책이나 하시죠. 날씨도 좋잖아요."


"그럼 그럴까?"


"네."


두 사람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숙소 주변을 걸었다. 


"누군가 의심스러운 사람을 발견하더라도 당분간 전혀 내색하지 말게."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뭐 별것은 아니네. 타초경사(打草驚蛇)의 우를 범하지 말자는 것이니까."


"그 말씀은 선배님께서 이미 누군가 의심스러운 자를 찾아냈다는 의미가 아닙니까?"


"이 사람 참… 눈치 하나는 빨라서 좋군. 하하하!"


서정이 가볍게 웃자 왕위안이 멋쩍은지 싱겁게 피식 웃었다.


기실, 서정에게 의심이란 언제나 느긋하고 허전한 상태에서 합리적으로 추론한 결과물이었다. 때론 귀하고 소중한 것이므로 항상 마음속 깊이 간직하고 이따금 꺼내는 것이 바로 의심이었다. 그래서 너무 뻔질나게 곱씹는 것을 가장 피해야 한다는 철칙을 세우고, 지금껏 한 번도 그것을 어긴 적이 없었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따지고 보면 서정에게 의심은 그의 자존심과 관련된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어쩌면 의심하는 마음을 오랫동안 묵히면서 다독거리는 그 자체를 즐겼는지도 모른다. 아무도 모르게 한껏 숨겨 둔 채로 고심하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불쑥 꺼냄으로써 상대방으로 하여금 절대로 반박할 수 없게 만들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서정이 돌연 정색하더니 단호한 어조로 왕위안에게 말했다. 


"사실대로 말하겠네. 내가 의심하는 그 자는 결코 자네가 감당할 수 있는 자가 아니니까 행여 호승지심(好勝之心)에 경거망동을 하지 말게. 이것은 당부가 아니라 선배로서 자네에게 내리는 명령이니까 꼭 명심하게. 알겠는가?" 


"어제 꿈자리가 뒤숭숭하더니 이런 말씀을 들으려고 그랬나 봅니다."


"뭐야?"


"아닙니다. 그냥 해 본 말입니다. 크크큭!"


서정은 고개를 살짝 흔들며 눈앞에 보이는 돌맹이를 걷어찼다. 그 돌맹이가 기묘하게 회전을 하면서 멀리 날아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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