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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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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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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9,807 2020/04/04 17:35
수정 2020/04/04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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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따라 울퉁불퉁 신작로 길을 달리는 버스를 타고 큰집에 가는 길은 언제나 고역이었다. 

차멀미를 못 견뎌 차창 문에 고개를 떨구고 토하고 또 토하고 산고개가 나올 즈음이면 이제 몸속에서 나올 것이 없으면 도착한 곳이 큰집이었다.

외딴 집이라 버스가 서면 큰집에 오는 손님인 줄 알고 큰아버지가 소달구지를 끌고 신작로로 마중 나오기도 했지만 바쁜 농사철이면 산으로 들로 나갔는지 빈집일 때도 있었다.

흙먼지를 달고 가는 시내 버스에서 내려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아버지 뒤를 따라가다 만나는 사촌 오빠들은 대개가 소꼴을 베고 있거나 산에서 나무를 하여 제 키보다 높은 등짐을 지고 나타난 모습을 마주하고는 했다.

숫기가 없던 나는 마루 끝에 앉아 말도 하지 않고 큰엄마가 떠준 냉수나 우물물에 담가진 수박으로 속을 가라앉히고는 했다.

산에서 내려온 사촌 오빠들은 우물가에서 윗옷을 벗고 등물을 끼얹으며 아우~ 시원하다고 어른 같은 소리를 했다.

새신랑이었던 큰 사촌 오빠와 나보다 2학년 상급생이였던 고삐리 둘째 사촌 오빠는 노래를 곧잘 불렀는데 그 노래라는게 주로 나훈아 김상진 남진 노래였다.

나는 그때 되지 못하게 DJ가 있는 음악감상실에 가서 뜻도 모르는 팝송을 즐겨 듣던(?)때 였으므로 유행가를 부르는 사촌 오빠들이 너무도 싫었다. ㅠㅠ

사촌 오빠들이 말을 붙여도 대답도 잘 안 하고 아버지한테 얼른 집에 가자고 했고 큰엄마 옆만 졸졸 쫓아다녔다.

지금 생각해도 바보 같은 짓이었다.

청주에 있는 우리 집에 오면 사촌 오빠는 교모를 삐딱하게 눌러 쓰고 바지는 나팔바지를 만들어 땅에 질질 끌고 다녔고 양쪽 주머니에 손을 꽂고 최무룡의 외나무다리를 부르고는 했는데 그럴 때마다 오빠와 둘째 언니는 손뼉을 치며 너, 가수해라 너무 잘한다. 하며 웃어재꼈다.

기타를 치며 '바빌론 강가에서' '나자리노'를 치는 뒷집 오빠가 천배 만배는 더 멋있어 보였고 근사해보였던 철모르던 시절이었다.  

 

결혼을 하고 어려운 날을 지나오던 어느날 둘째 사촌 오빠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큰어머니가 돌아가시고 (그때 나는 부도가 나서 큰아버님 댁에도 못가고 떠돌아다니던 시절이었다.)  

사촌오빠가 집을 나갔다고 했다. 

왜?

언니는 '너 몰랐구나, 큰엄마가 둘째 입양했잖아,'

..............그래?

걔가 그래서 맨날 노래만 부르고 다녔잖어. 맘이 허해서 그랬을 거야. 노래를 얼마나 불렀으면 큰엄마가 너 목 닳아 말 못 하면 어떡할라고 그렇게 노래를 부르냐 했단다.

이번에 이혼했다는구나, 혼자 원룸 얻어 나왔다는데 한 번 찾아가 봐야 될 텐데....

하니 옆에 있던 오빠가 '밥을 같이 먹는데 밥이 안 넘어가 혼났네. 잘 살아야 할 텐데.. 맘이 아프다.'했다.

.................... 

 

얼마전 우연찮게 tv에서 미스터 트롯을 보게 되었다.

후로 그걸 보기 위해 일주일을 기다렸다.

일주일을 기다렸을 뿐 아니라 새벽 한 시 반까지 목을 빼고 봤다.

마치 그걸 보기 위해 사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거기다 그만 13살 정동원 팬이 되어 팬카페 가입하려고 문 앞에서 고민하다 여기까지만 하고, 컴퓨터를 꺼버렸다.

가게 오가는 길에 블루투스 이어폰을 끼고 오래 전 사촌 오빠가 부르던 '누가 울어'를 듣기도 하고 외나무 다리를 따라부르기도 한다.

그러면 삐딱다리를 하고 건들거리던 모습과는 다르게 눈빛이 항상 젖어있던 사촌오빠의 모습이 떠오르기도 하고 유독 오빠한테 다정히 대하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그리워졌다


언젠부터인가 옛가요가 좋아졌다.

나이가 들어가는지 주변의 사람들이 돌아봐진다.

그래도 살아야하니 정신없이 들썩거리던 한 주였다. 

어서 빨리 통장의 잔고가 불어나 사랑하는 이들을 찾아가 따뜻한 밥 한그릇 함께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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