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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정신? 애초에 그런 것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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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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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850 2017/06/15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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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을 '민중 항쟁'이라는 데까지는 이해하겠다. 어찌 되었든 군인들이 우악스럽게 대하니 반발할 빌미를 준 것은 사실이니까. 그러나 '5·18'이 독재에 항거했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고, '민중 혁명'으로 이어져 성공한 것도 아니다. 일과성 사건으로 끝난 문제다. 그런데 이를 이용하려는 세력들이 마치 '5·16 군사혁명'과 같은 정권을 창출한 성격으로 착각 내지는 강변하려 들고 있다. '5·18 정신' 따위는 애초에 없었다.

지금 민주당이 집권하게 된 것은 '5·18'에 의해서가 아니라 (구)새누리당 한량들의 무능과 박근혜의 방심을 틈 탄 절묘한 공격이 성공을 한 것이다.(나는 개인적으로 이를 성공한 모략으로 본다) 여기에서 느닷없이 왜  '5·18 정신'이 나오게 된 것인가? 이는 화합도 포용도 무엇도 아닌 "대한민국은 '5·18' 앞에 꿇으라"는 뜻 아닌가? 어째튼 '5·18'은 대한민국이 포용하는 것으로 그쳐야지 '5·18'이 대한민국을 집어삼키려는 것은 용납할 수가 없다. 무리수를 두다가는 무슨 사달이 날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총선 지원차 광주 '오월의 집'을 방문했을 때 "저도 광주 유공자 자격이 있는 사람입니다."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이 자리에서 "저는 5·17 계엄 포고령위반으로 구속됐다. 그날 포고령 위반으로 구속된 사람들은 다 광주특별법에 의해서 유공자 자격이 있다"라고 말했다.(뉴시스)

실제 '5·18'이 일어나기 직전 경희대 운동권 핵심이었던 문재인은 계엄포고령 위반으로 연행됐고, 군사재판에 즉결 회부되어 20여 일간 구금됐다고 한다. 이로서 ''5·18 민주유공자' 자격이 갖춰졌다는 것이다. 이는 민주유공자가 무려 5700명이나 양산된 이유이기도 하다.

그는 이때 경찰 유치장에서 사법시험 2차 합격 소식을 들었다고 한다. 경찰서장은 축하차 면회를 온 학생처장과 법대 동창회장을 유치장 안으로 들여보내 조촐한 소주 파티를 열 수 있게 해 주었다고 한다. 아주 낭만적이기까지 한 이야기다.

그런데 이들은 '민주화 운동'이란 게 무슨 무시무시한 독재에 맞선 것처럼 스스로 공치사를 하고들 있지만 그렇지 않았다. 본분인 공부에 매진한 학생들은 잡아갈 리 만무하고, 설사 혈기에 길거리에 나섰다가 잡혀도 대부분 훈방하고 그 정도가 좀 심하다 싶은 학생들은 철들어 나오라고 군에 보내곤 했다. 독재라고 하려면 저 북한의 사정쯤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나 '이한열 최루탄에 의한 사망 사건'의 경우는 어쩌다 일어난 우발적인 사건이나 사고라고 보는 게 옳을 것이다.

물론 폭력을 행사하고 김일성 사상을 추종하는 등 죄질이 나쁘거나 도피하여 나타나지 않는 학생들은 잡아 족쳐 실형을 살게 하고 학교에서 제적도 시켰다. 그렇게 제적당했던 학생들도 반성하는 경우 훗날 복권의 기회를 줬고 취업에도 큰 제약이 없었다. 내 주변에도 美문화원 점거-도피-학교 제적-복권 복학-졸업과 동시에 신문기자를 거쳐 지금은 고위공직에 있는 사람이 있다. 문재인은 대통령까지 되었지 않은가?

그런데 한 술 더 떠 '민주화 유공자'입네 하면서 상대적으로 법을 준수하며 선량하게 살아온 국민들을 업신여기려 들고 심지어 적폐 세력으로 몰아가겠다면 반드시 역풍을 맞을 것이다. 거듭 강조하건대 '5·18'은 대한민국이 포용해야 할 역사이지 '5·18'이 대한민국을 삼키려 들면 안 된다. (이러다 전라도에 아부하지 않으면 숨이나 제대로 쉬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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