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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곳은 '생지옥'이 아니라 '기회의 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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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679 2017/08/01 10:00
수정 2017/08/01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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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 6월 5일 자 동아일보에는 <長崎(장기=나가사키) 부근의 朝鮮村(조선촌)>이라는 특파원 보도가 있다. 특파원이 현지에서 생활하는 조선인 노동자들의 생활상을 소개한 글이다.

<닥쳐오는 생활의 곤란을 견디지 못하여 고국산천을 뒤로하고 사랑하는 형제를 작별하고 외국으로 나있는 우리 동포가 수백만 명이요 일본에 와 있는 조선인 노동자가 수만 명이나 된다 함은 이미 각 신문 잡지에 여러번 소개된 바이어니와 현재 나가사키에 와 있는 조선 노동자의 형편은 어떠한가>며 기자는 참담한 심정부터 서론으로 올렸다.

< 현재 나가사키에 와 있는 조선인이 이백명인데 그 대부분은 三菱(미쓰비시) 회사의 석탄 캐는 구덩이에 가서 일을 하고 그 외 70여 명은 현재 나가사키市에서 경영하는 수도 증설공사의 흙 파는 곳에서 일을 한다고 한다>는 설명이 이어지고 현지에 와 있는 조선인 노동자와의 인터뷰 내용을 실었다.

기자가 <이 곳의 대우는 어떠한가?>고 물었다. <대우요? 처음 왔을 때에는 조선사람이라고 매우 대접을 하여주었대요. 그런데 먼저 왔던 노동자 중애 괴악한 사람이 있어서 동리에 나가 사람도 치고 부녀자에게 술주정도 한 일이 있어서 지금은 일본 노동자들이 이 곳 청년회에 들어가지고 조선인이 꿈쩍만 하면 북을 울리니 어른 아이 수백 명씩 모여 가지고 승벽(기세를 부림)을 피움으로 조선 사람들은 죽어지내고 어른이라도 일본 어린아이에게도 쥐어 지냅니다. 남의 탓이야 무엇합니까. 그것이 모두 조선인의 잘못이지요. 잘못하니까 업신여기고 모르니까 학대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요.

없는 사람들에게는 돈 버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울 것이다. 몸뚱이 하나로 돈 벌겠다고 일본에까지 간 조선인 노동자들이 힘들었을 것은 불문가지다. 대부분 공장 잡부나 탄광 등지에서 일본인 하류층들과 어울려야 하는 형편이니 이래저래 어려울 것은 물을 필요가 없는 일이다. 비단 일본에서 뿐 아니라 해방 후에는 강원도 태백과 정선을 비롯 전국에 여러 탄광이 있었고 농토가 없는 소작인들이나 머슴들은 한몫 잡기 위해 탄광행을 결심했다가 죽어나오기가 부지기수였다. 일본인들이 와서 죽이고 간 게 아니다. 탄광이란 원래 그런 곳이다.

그래도 '고생은 한 시절이요 몫 돈만 쥔다면 까짓것 못 참을까!'라는 목숨까지도 걸어야 하는 굳은 결심을 하기까지에는 현실이 그 보다도 더욱 참담했고 미래가 안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 결심을 하고 갔으면 목표의식을 잃지 않고 이를 악물고 돈을 모았어야 했다. 실제 성공하여 돌아온 사람들도 많다. 그런데 목숨 걸고 번 돈으로 술을 먹고 고성방가를 하며 길 가는 현지인에게 시비를 걸고 부녀자를 희롱하면 그 인생이 온전할까. 현지인인들 가만히 두겠는가?
오죽하면 현지인들이 청년회까지 조직하여 대적해야 했을까?

현재 한국에 와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보면서 생각해 보자. 만약 파키스탄인들이 술 먹고 지나가는 사람에게 시비 걸고 여자들을 희롱하면 한국인들은 어떻게 할까? 일본에서 차별받은 사실이 그렇게도 억울해서 참지 못할 만큼 분노가 인다면 한국에 와 있는 외국인 근로자들에게 우리는 어떻게 하고 있는지 돌아보고 반성할 일이다. 일제 시대는 이미 지나갔고 한국에 와 있는 그들 외국인 근로자들의 손목이 잘리고 발목이 잘리고 더러는 죽어나가기까지 하는 것은 현실이다. 70년 뒤에 그들은 '시화공단'이란 영화를 만들까?

하늘도 보자. 세상에는 땅도 있지만 하늘도 있다. 고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자와 아들 이건희, 손자 이재용 모두 일본에서 대학을 다녔고 일본에서 사업 착안을 했다. 또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 이동찬 코오롱그룹 명예회장, 박태준 전 포스코 회장,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 이들 모두 일본에서 대학을 다녔고 그곳에서 사업에 대한 영감을 얻었다.

경남 울주가 고향인 신격호 회장의 경우 울산농림고를 나와 월급쟁이가 되었으나 박봉이 서러워 20대 초반에 일본으로 가서 신문과 우유 배달 등 닥치는 대로 잡일을 하며 대학을 마쳤다고 한다. 대학 졸업 무렵 껌 만드는 사업부터 시작하여 제과업으로 크게 성공한 케이스다. 당시 일본은 '생지옥'이 아니라 '기회의 땅'이었음은 이를 통해서도 충분히 알 수 있는 일이다.

(인터뷰에 응한 이가 아마도 경상도 출신으로 보인다. 경상도 사람들은 처지가 곤궁해도 대개 남의 탓을 안 하고 스스로를 탓하는 경향이 짙은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 그래서 경상도 사람들이 크게 성공한 사례가 많고 인기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세상(한국)은 많이도 변했다. 엎어져도 남의 탓, 자빠져도 남의 탓, 모든 게 남의 탓이다. 남의 탓을 해야 대접 받는 듯하다. 나라가 이상해져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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