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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역할이 소중한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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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1,354 2017/03/24 21:47
수정 2017/03/28 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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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역할이 소중한 까닭


   세상의 많은 동물 가운데 엄마의 역할이 소중한 이유는 어릴 때의 생명에 대한 안위가 일생 중 가장 어려움을 겪고 이겨야 하는 시기로 인함이다. 뻐꾸기처럼 새끼는 구경도 하지 않고 알만 달랑 남의 집에 낳아 버리고는 잊어버리는 동물도 있다. 뻐꾸기가 새끼를 키운다는 일은 없고 알은 낳지만 새끼는 키우지 않는 일로 다른 새에게 의탁해 온 조류다. 모정이란 것도 아예 없다는 이야기다. 그러니 뻐꾸기 새끼는 의탁된 어미 멧새나 개개비를 어미로 잘못 알고 살아야 하는 운명을 타고난 셈이다. 그래서 뻐꾸기 새끼는 순전히 자기 힘으로 자기의 운명을 개척해야 하는 절체절명의 노력에 기대야만 했다. 필자가 첫돌을 지날 때쯤 아버지 돌아가셔서 순전히 엄마의 힘으로 자란 일보다도 더 불행한 뻐꾸기다. 뻐꾸기 어미는 비둘기보다 몸집이 조금 작으나 멧새에 비해 어지간한 비둘기만큼은 큰 체구다.


   뻐꾸기는 알이 부화할 때가 가까워 의식이 형성되면서 의탁 엄마 멧새의 태교부터 알아차리고 비상대치로 준비하는 것 같다. 친어미가 아님을 알고 유모에게 잘 보이는 일과 자기 모습을 감쪽같이 페인팅할 기술 익히기에 전념한다. 먼 조상 새부터 익혀진 자기 모양새 속이는 기술의식이 DNA로 전달받아 종족 진화에 사용되고 있었다. 바로 적자생존법칙을 지키는 확률로 살아남았던 조류의 하나다. 자기가 부화되는 즉시 여타 알이나 멧새 새끼는 없애야 자기가 살아날 수 있다는 신념이다. 털도 돋아나지 않은 알몸으로 아직 눈도 감은 상태에서 멧새와 개개비 새끼나 알을 온몸으로 밀어내 둥지 밖으로 떨어드리는 작용은 악착같았다. 그렇게 힘든 일을 누가 시킨 일이라도 저렇게 작용하기란 상상을 초월할 어려운 일이다.


   뻐꾸기에 비해 개구리는 알을 산란하고 천적으로부터 새끼를 보호하는 일정한 기간이 있다. 물뱀이나 큰 물고기가 위협하면 시선을 끌도록 유인하여 따돌리기도 하고 작은 동물은 공격하여 쫓아 버리기도 한다. 알을 감싸고 있는 점액 성분은 독성이 강하여 천적이 피하도록 되어 있다. 알에서 부화한 올챙이는 물속에서 자라는 잠자리 새끼의 밥이 되기도 한다. 개구리가 어미 잠자리를 잡아먹는 천적인 데 대한 일종의 보복행위라고 할 수 있다. 세월은 돌고 도는 이치로 개구리는 잠자리를 잡아먹고 잠자리의 새끼는 물속에서 어린 올챙이를 잡아먹는다. 서로 천적인 사이로 천적관계 뒤바꿈의 생태를 유지하는 속성이다. 개구리의 의식은 뻐꾸기 새끼보다 훨씬 둔하다. 예상하는 눈썰미나 대처하는 행동에서 도저히 뻐꾸기 새끼를 따라가지 못한다.


   개구리는 올챙이가 큰 물고기에게 잡아먹히지 않도록 물고기가 두려워 나오지 않는 얕은 발자국 물웅덩이에 새끼를 키운다. 물은 항상 줄어들어서 올챙이 서식처를 위협하는 가뭄이 자주 온다. 이렇게 가뭄으로 인하여 물이 말라 올챙이 서식처인 발자국 웅덩이가 마르면 올챙이는 치명적인 상태가 된다. 흙탕물에 올챙이가 서로 몸을 의지하고 피부를 비비고 견디면 이때가 되어서야 어미 개구리가 자구책을 쓴다. 발자국 웅덩이 위치와 큰물 사이가 서로 물이 말라서 연결이 단절되어 큰일 났다. 그때야 비로소 개구리는 큰물과 올챙이 사이를 오가며 물길 틔우기 공사 측량을 한다. 개구리는 엉덩이로 문질러서 운하를 만드는 공사를 하게 되는 것이다. 개구리 엉덩이가 닳아 상처가 날 지경에서야 운하공사가 완성된다. 비로소 올챙이는 큰물과 연결된 운하를 통해 구사일생으로 죽음에서 살아난다. 뻐꾸기처럼 예감하는 감각이 너무 늦다.


   사람도 영특한 엄마와 둔한 엄마의 비교가 엄청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여기에는 학력의 고저와 관계없이 생활의 습관이 더 중요하게 작용한다. 어떤 엄마는 결과만 중요시하고 병원 의사만 믿으며 아이의 생활에 대한 간섭은 등한시한다. 이에 비해 저학력으로 학위는 비록 낮다 해도 늘 세심한 관찰과 노력으로 육아 정보에 남다른 실력을 키워서 예상되는 일들을 미리미리 챙기는 습관이 몸에 밴 엄마도 있다. 이런 엄마는 예방주사 접종을 위한 병원방문 외에는 병원에 가는 일이 드물다. 이에 반하여 아이가 자기 숟가락질로 밥을 먹을 때까지는 병원 신세만 기다리고 사는 엄마가 있다. 겉으로 보기엔 엄마의 책임이 아닌 아기의 선천적인 결함으로 받아넘겨 버린다. 사소한 일이라도 그냥 넘겨 노력하지 않은 원인은 쉽게 망각한다. 그래서 소소한 손 씻는 일부터 위생생활습관을 키우지 않으면 낭패를 당하는 일이 많다.


    결과론만 본다면 적극적인 보호를 받은 어린이보다 방관 된 어린이가 어른이 된 후에는 인체의 면역력이 강하다. 초기의 생명에 대한 위험성을 간과한다면 말이다. 마치 뻐꾸기 새끼처럼 자기 힘으로 페인팅하는 일과 경쟁할 상대를 이기는 능력에서는 점수를 받을 수 있다. 사람이 사는 사회는 경쟁력만 가지고 자기 행복을 누린다는 일은 옳지 않다. 아이를 키움에 있어서 너무 방관하면 뻐꾸기처럼 사악한 심성의 두뇌를 만들게 되고 너무 적극적인 관여를 하면 개구리처럼 극한상황까지 위험에 몰릴 수도 있다. 마치 대통령탄핵 같은 일을 당한다는 억울함도 예상되는 일이다. 그러나 사회조직의 공통된 행복은 후자에 더 좋은 점수를 주게 된다. 인간의 행복은 반드시 꼭 이겨야만 획득한다는 결론은 위험하기 짝이 없다. 너그러운 심성에서만 좋은 생각이 항시 떠오르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신사임당의 아들인 율곡 선생 같은 유명한 학자가 나오는 역사를 우리는 믿기 마련이다.( 글 : 박용 2017.03.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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