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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깊이만큼 품위가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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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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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262 2017/08/13 15:09
수정 2017/09/07 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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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깊이만큼 품위가



   물은 자신을 낮추며 본분을 다하고 사람은 자신을 낮추며 위대한 흔적을 남긴다. 귀한 곡식이 익을수록 고개가 숙어지듯 사람도 품위가 높아질수록 마음의 무게가 느껴진다. 식물이 오래 비가 내리지 않으면 죽을 것만 같아도 살아남는 이치도 이와 같다. 항암물질이 풍부한 와송도 기왓장 위에서 살아남는 일은 자기를 낮추는 체온의 영향이다. 가뭄에 수분기라고는 전혀 없는 메마른 기왓장에서 살아남는 와송이 신기하다. 식물은 수분이 생명유지의 근본인데 무얼 먹고 생명을 유지 하는지 매우 궁금하다. 그 속내를 자세히 보면 별로 다르지 않았다. 식물체가 자신의 체온을 낮추어 귀하디귀한 수분을 스스로 공급받는 행위를 한다. 야간에 특히 새벽 시간 기온이 최저점을 이룰 때 와송은 자기 체온을 낮춤으로써 공기 중에 수증기가 자기 몸에 밀착 포옹하여 물방울을 생기게 한다. 식물과 환경의 아름다운 포옹이다. 식물체도 왕고집으로 자기 체온보호를 위해 고고한 위세 자랑만 한다면 이룰 수 없는 일이다. 이것이 바로 생명을 유지하는 이슬이다. 와송 잎마다 물방울이 굵어지면 뿌리 쪽으로 자연스럽게 흘러서 모이게 되어 있다. 모든 잎들이 힘차게 하늘을 향해 활개를 벌이고 있어서 이슬방울은 와송의 뿌리 쪽으로 모이게 되어 있는 모형이다. 물론 잎 자체로도 수분이 저장되지만 커진 물방울은 굴러떨어져 한 방울도 낭비 없이 뿌리가 모두 흡수한다.


   고산지대의 농작물이 물을 주지 않아도 잘 자라서 풍작을 안겨준다. 특히 고랭지 채소가 평지 같으면 물이 부족하여 재배에 실패할 일이지만, 기온이 제대로 따라주면 이슬을 먹고도 잘 자란다. 식물체가 이슬을 만들도록 기온이 도와주면 되는 일이다. 관수 시설이 없는 고랭지에 여름 채소가 잘 자라는 이치는 자신을 낮추는 원리에서 기인한다. 들판에도 새벽마다 이슬이 내린다. 그러나 구름이 덮인 밤하늘 아래서는 이슬이 맺히지 않는다. 왜 그럴까? 구름에 의한 야간 기온의 보온효과로 새벽 기온이 이슬점까지 내리지 않아 그렇다. 구름의 짓궂은 보온현상으로 식물의 자기 온도를 낮추는 기회를 박탈했기 때문이다. 이런 날은 이슬이 맺히지 않는 날이다. 오랜 가뭄으로 인하여 말라비틀어지는 식물이 죽지 않고 살아남는 신기함은 바로 자기를 낮추는 기능이다. 우리 민족이 7년 대한 기나긴 가뭄 속에서도 죽지 않고 살아남은 끈기는 오직 검소하고 자기를 주장하기 전에 자기가 할 일을 먼저 생각해 왔기에 살아남았다. 가뭄과 전쟁이 겹치는 상황도 수없이 겪으며 견뎌온 겨레 정신이다. 자존심 높여 목에 힘주고 불평만 외쳤다면 마치 식물처럼 자기 체온을 낮추지 못해 굶어 죽었을 것이다. 양반 체면 유지가 어디 밥 먹여 주나란 말이 생각난다.


   물은 언제나 낮은 곳으로 몸을 낮추고 인간의 품성도 수준이 높으면 품위를 낮은 곳으로 고이게 한다. 첨단의 위험스러운 고고한 자태가 아니다. 모난 돌이 정을 맞는다는 속담처럼 고고한 정신 상태는 늘 상황이 가만두지 않는다. 수탉의 목소리가 너무 크면 그 시끄러움으로 빨리 죽는다. 하늘을 찌를 듯한 첨탑의 위용도 낮은 호수에서 잉태한 수증기가 더 높이 올라가 안개로 덮어 버리거나 소나기로 그 오만함을 세탁하는 이치다. 낮은 데서 올라간 물의 무지개가 첨탑의 위용보다 더 아름답다. 아름답게 보인다는 대상은 늘 자기를 낮추는 모습에서 찾아진다. 국회 청문회에서 나타난 학위나 품위를 얻기 위해 표절 시비도 모난 돌의 호기가 넘치기 때문에 일어난다. 모난 돌이 그렇게도 되고 싶어 하는 심정인가보다. 유명작품의 표절도 자기만의 내공이 부실하여 베껴 배운 습관으로 고공만 주시하다가 인품에 치명타를 당하곤 했다. 모난 돌로 명성을 얻고 싶어 안달하는 심상이다. 인간의 욕망은 어디까지가 끝이 되는지 몰라서 멈춰야 할 기회를 상실하기 쉽다. 자기의 진실을 속이는 버릇이 넘치면 세상 또한 바르게 불 수가 없다. 마음이 굽은 상태에서 바르게 지나가는 명쾌한 빛은 보이지 않는다. 욕망의 그늘이 굽어진 마음의 눈을 가리기 때문이다.


   인성의 너그럽고 아름다운 모습은 어디서 찾아야 하나? 생명의 이슬이 맺히는 기회는 수도 모르게 다가오고 있지만 내 마음의 깊이가 담아질 호수는 나를 기다리고 있으리라. 급할 것도 없고 내 키가 옆 사람보다 더 커야 할 이유도 없다. 그래서 남의 어깨를 딛고 올라서서 봐야 할 일도 없다. 더욱이 남의 키를 잘라내어 내 키를 높게 보이게 할 필요도 없는 세상이다. 선거 때마다 상대 후보 비방은 도가 지나쳐 원수로 변한 지 오래다. 정적은 죽이지 않으면 자기가 죽는다는 심보가 아직도 세상 변한 줄 모른다. 물증도 없는 공소장 만들기에 혈안이고 상대를 해치려 뉴스보도 자체가 오보인 줄 알면서 만들고 있는 현실이다. 뉴스보도는 있는 그대로를 정확히 전하면 된다. 자기의 예측까지 포함해서 자기 낯 나타내기 위함이 너무 지나치다. 그런 욕심 때문에 오보의 내용이 더 커져서 낭패를 만들어 낸다. 시끄럽도록 민주사회를 외치고 있지만, 진정한 민주사회는 물과 같다. 모두에게 배려함은 물의 특성이다. 균등의 권리는 물이 먼저 교훈으로 알려 주었다. 소수의 의견을 존중하되 다수의 의견에 따르는 원칙은 강처럼 물처럼 늘 변함없다. ( 박용 2017.08.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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