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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숟가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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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1,436 2017/10/19 12:34
수정 2017/10/19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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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숟가락


   우리 집에는 가보로 오래된 숟가락이 두 개가 있었다. 숟가락 크기는 지금 쓰고 있는 숟가락의 배 가까운 크기다. 길이도 5cm 나 더 길었다. 숟가락 날은 칼날만큼이나 날카로워 칼의 직선 자름에 비해 굽이 파내듯 과일의 맛 나는 살을 알뜰히 떼어낼 때도 필요한 숟가락이다. 여러 방법의 쓰임새가 아직도 요긴한 곳이 있는 생활 용기다. 우리 가정대대로 대물림한 숟가락이라 귀하게 보관했다. 평시 사용에 편리함이 아쉬워 보물처럼 모셔두지 못하고 늘 사용하고 있었다. 보기에는 너무 커서 사용하기 불편할 것 같아도 편리한 쓰임새 때문에 그냥 놀리지 않고 일상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그래서 숟가락 잎이 조금 닳아서 끝쪽 잎이 넓고 날카롭다. 그냥 진열장에 소중히 보관하고 둘 형편은 아니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게 놋쇠인지 황금인지는 감정해 보지 않아서 재질이 정확히 뭔가는 의문이다.


   내가 어릴 때의 기억으로 할머니가 치아가 없으셔서 이 숟가락에 의존하고 있었음을 기억한다. 다른 놋숟가락보다 날이 날카로워 과일 속살을 보드랍게 긁어내는 일은 이보다 더 편리한 기구가 없다. 참외는 칼로 반을 잘라서 숟가락으로 긁어먹으면 금방 즙액으로 먹을 수 있다. 성한 치아를 가진 사람도 참외를 깎아 먹으면 할머니의 긁는 속도에 따라가지 못했다. 참외를 씹는 속도가 숟가락 긁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다. 지금 같으면 믹서기로 참외를 보드랍게 갈면 되지만, 그때는 믹서기가 없어도 숟가락이 믹서기 대신하여 먹기 좋게 갈아주었다. 믹서기는 참외조각을 갈 때 물이 있어야 하지만 숟가락은 그냥 쉽게 갈아낸다.


   할머니는 애지중지로 아끼며 사용하고 있어 숟가락 하나는 언제나 할머니 차지다. 다른 하나는 수시로 감자 껍질을 벗기기나 호박 껍질을 벗길 때 사용했다. 이런 쓰임새는 이보다 더 편리한 기구가 없었다는 이야기다. 당시 호박이나 박 속살을 파내는 일은 어떤 도구도 이 숟가락 긁기를 못 따라갔다. 나중에는 호박글귀가 나왔지만 당시는 없었다. 그래서 호박떡을 굽는 데는 이 숟가락이 큰 역할을 했다. 무 껍질 벗기기나 생무를 깎아 먹을 때도 숟가락의 효용 가치는 알아주어야 했다. 지금 스테인리스 숟가락은 날카로운 날이 없어 긁을 도리가 없다. 어떨 때는 그 시절 그 숟가락 생각이 간절하기도 할 때가 더러 있다. 숟가락의 효용 가치가 밥을 떠먹는 일 외에도 쓰임새가 많았던 시절이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숟가락 하나가 없어졌다. 가보를 잃어버린 일처럼 숟가락을 찾으려는 소동이 났다. 가장 아쉬워할 할머니가 조용히 계시어 의아스러웠다. 한참 시간이 지나자 할머니는 참고 계셨던 덕담으로 한 말씀 하셨다. 정중한 말씀에 무게를 느끼게 하는 음성으로 마당에 저 우물을 조사해라 하셨다. 우물이 깊어서 들여다보아도 바닥이 보이지 않았다. 장정들을 불러와 장시간 우물을 퍼냈다. 그 결과 거기서 잃어버린 숟가락이 나왔다. 내 동생이 할머니 숟가락을 평상에서 가지고 놀다가 던져 버리니 우물에 들어간 것이다. 할머니는 당초 아쉬워하지도 숟가락 없어졌다고 흥분하시지도 않았다. 엄마가 할머니께 그 연유를 공손히 여쭈워보았다.


   옛이야기에 황금 대접을 잃어버려 식모가 훔쳐갔다고 점쟁이에게 점을 쳤더니 도둑이 집 안에 있다고 했다. 식모가 도둑질하고 바른말을 하지 않고 숨긴다고 저주방법의 무서운 조치수단을 점쟁이 말대로 했다. 점쟁이 말로 이런 저주를 받으면 살아남지 못한다고 했단다. 그랬더니 식모는 아무 일 없고 돌연히 세 살 먹은 귀여운 손자가 죽었단다. 그래도 식모가 하도 괘씸하고 미워서 쫓아내어 버렸다. 식모는 억울하다고 수 없는 변명을 해도 소용이 없었다. 그런 일이 있고 얼마가 지나서 마당에 우물을 청소했는데 거기서 황금 대접이 나왔다는 이야기다. 우리처럼 평상에 놀던 손자가 할머니 사용하던 황금 대접을 쥐고 흔들며 놀다 우물에 던진 일이었다. 죄 없는 식모가 탄핵을 당한 꼴이다.


   이제 할머니도 돌아가시고 그 숟가락 쓰일 일도 없어지는가 싶더니 그 숟가락을 모두 잃어버리는 일이 일어났다. 마을에는 하룻밤에 이집 저집 가리지 않고 모든 가정에 도둑이 몰래 다녀갔다. 송도 말년의 불가사리가 다시 나타났던 일이다. 그 도둑은 놋쇠란 놋쇠그릇은 모조리 훔쳐갔다. 온 마을이 놋쇠그릇 도둑을 맞은 일이다. 소중히 여긴 제사 지낼 때 쓰는 유기그릇도 다 가져갔다. 그래도 용케 우리 집에는 그 숟가락 하나가 남아 있음을 뒤늦게 알았다. 내가 할머니 흉내를 내면서 그 숟가락으로 참외를 긁어먹다가 책꽂이에 얹어 둔 것이 떨어져서 책상 뒤편으로 넘어가 버린 일이다. 나중에 책상 들어낼 때 꺼내야지 하고 넘겼다. 돌아가신 할머니 생각에 나도 참외를 긁어먹으니 맛도 있고 먹기도 좋았던 일이 숟가락을 지킨 일이다.


   6?25전쟁도 겪고 피난도 갔다가 왔지만, 그 숟가락은 온전히 보존되고 있었다. 나는 돌아가신 할머니 생각만 나면 어릴 때 할머니 젖 빨던 생각으로 그 숟가락을 만지곤 했다. 내가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고 매일 출근하게 되어 숟가락 만질 일도 없어졌다. 그 숟가락은 찬장에 고이 보관하고 있었으므로 늘 거기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어머니 회갑 잔치를 치르고 난 뒤 그 숟가락이 온데 간데 모르게 없어졌다.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았다. 누가 이 숟가락을 보물이라 여기지도 않을 때다. 오직 나만 우리 가족의 역사와 함께 같이해온 간절함이 묻어있다고 생각할 따름이다. 가문의 지나온 일과 정겨움 때문에 오래 보관한 일이다.


   어머니는 애비야 그만 잊어버려라 하셨다. 누군지는 몰라도 우리 가정이 탐이 나서 우리 가정을 흠모한 분이 아마도 있었던 모양이라고 하셨다. 옛말에 고귀한 가정의 고귀하게 된 사람의 숟가락을 훔쳐가서 사용하면 그 집처럼 탐나는 가정이 된다는 이야기가 있단다. 미신을 믿고 가난과 불행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그 마음을 이해하는 어머니다. 얼마나 행복해지고 싶어서 소원이 되었으면 숟가락 도둑질을 했을까? 우리는 그런 사람의 막무가내 하는 아쉬움을 행복하게 채워주어야 했다. 주위의 행복이 바로 나의 행복이라는 생각은 진리다. 이웃이 행복해야 내가 행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박용 2017.10.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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