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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인석에 앉은 첫 현직 대법관…"사법농단 재판부 고생 많다고 생각" [남정민 기자의 서초동 일지]
한국경제 | 2020-08-12 06:00:05
'사법농단' 사건의 핵심인물로 불리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재
판은 임 전 차장이 기소된 2018년 11월부터 약 2년간 계속되고 있습니다. 사법
농단 사건의 수사기록만 20만쪽으로 알려졌고 증인은 80여명이 채택돼 현재 증
인신문 절차가 진행 중입니다.


지난 11일에는 조금 특별한 증인이 나왔습니다. 바로 이동원 대법관입니다. 현
직 대법관이 형사재판의 증인석에 앉은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이 대법관은
"대법관으로서 증인석에 앉는 게 유쾌한 일은 아니다"면서도 "
그렇지만 누구든지 제출된 서면의 공방이 있다면 나올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안다"고 말했습니다. 1심 각하로 '윗분들 화가 많이 난' 통진당
의원 사건
이 대법관이 법정에 나온 이유는 '통합진보당 위헌정당 해산 사건' 때
문이었습니다. 헌법재판소와 법원 사이의 오랜 권한분쟁이 이어져 오던 와중 2
014년 헌재는 통진당 해산 결정을 내립니다. 그러면서 당이 해산됐으니 통진당
소속 국회의원들도 의원직을 상실한다고 판단했습니다. 하지만 대법원 수뇌부
들은 "당 해산과는 별개로 의원들이 직을 상실하는지 여부를 결정하는 권
한은 법원에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실제로 2015년 1월 옛 통진당 의원들은 국회의원 지위확인 소송을 냈고, 1심 &
#39;각하', 2심 '기각' 판단이 나왔습니다. 해당 사건은 현재 대법
원에서 검토중입니다.


당시 1심 판결을 선고했던 판사에 따르면 결과가 '각하'로 나오자 
9;윗분들이 화가 많이 났다'고 합니다. '각하'는 소송이 절차적 요
건 등을 갖추지 못해 재판을 끝내는 것을 뜻합니다. 즉, 헌재가 내린 결정에 대
해 법원이 다시 심리할 수 없다는 뜻을 가진 판결이라는 겁니다. 이 소송을 통
해 헌재보다 위에 서고자 했던 법원 수뇌부들로서는 탐탁지 않았을 겁니다.

법원 안팎으로 이목이 쏠렸던 지위확인 행정소송은 2심에서 '기각'으로
판결났습니다. 기각은 재판부가 판단을 거쳐 '지위확인 청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선고한 것이기 때문에 애초에 심리조차 하지 않은 각하와는 다
른 판단입니다.

1심 재판장이었던 판사는 이미 임 전 차장 재판 증인으로 지난 7월 법정에 한차
례 왔다 갔습니다. 다음은 2심 재판장, 바로 당시 항소심(서울고법 행정6부) 재
판장을 맡았던 이 대법관의 증인신문 차례였습니다. "통진당 문건 받은건
맞지만 판결에 영향받지 않았다"
이날 증인신문의 쟁점은 '이 대법관이 법원 수뇌부들로부터 압박이나 영향
을 받고 2심 판결을 내린 것 아니냐' 였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이 대
법관은 딱 잘라 "그런 일 없다"고 말했습니다.

원래부터 친분이 있던 당시 이민걸 법원행정처 기조실장을 만나 통진당 행정소
송 사건과 관련된 10쪽 내외의 법원행정처 문건을 받긴 했으나 딱 거기까지일
뿐, 실제로 해당 문건이 판결에 영향을 미치거나 하지는 않았다는 겁니다.

<실제 8월 11일 법정에서 이뤄진 증인신문 내용>
▶검사 : 증인(이동원 대법관)은 2016년 3월 이민걸 기조실장으로부터 통진당
행정소송 관련 문건을 전달받은 사항이 있나요?
▶증인 : 받은 건 있습니다.
▶검사 : 문건을 전달 받은 경위는 어떻게 되나요?
▶증인 : (이민걸과) 연수원때부터 친한 사이였고, 이민걸 기조실장이 식사나
같이 하자고 해서 식사한 뒤 '한번 읽어봐라' 하면서 줬던 겁니다.
▶검사 : 당시 이민걸과 어떤 얘기 나눴나요?
▶증인 : 워낙 친하다 보니까 애들 얘기도 하고 서로 일상적인 얘기도 하고 다
른 얘기 많이 하다가 그 얘기가 하나 나왔습니다. "소속 의원들에 대해 판
단하는 것은 법원이 알아서 할 일인데 법원에 그와 같은 권한이 없다는 건 좀
이상하지 않아?" 하는 그런 뉘앙스였습니다.

그러면서 행정처 차원에서 재판부에 문건 등을 전달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의견
을 밝혔습니다.

<실제 8월 11일 법정에서 이뤄진 증인신문 내용>
▶검사 : 이민걸의 말에 대해 증인은 뭐라고 답했나요?
▶증인 : 판사는 일단 (자신이 맡고 있는) 사건에 제3자가 접근해오면 긴장하고
그 사건에 대해 침묵하게 됩니다. 만약 얘기했더라도 '잘 검토해볼게요&#
39; 정도였을 겁니다.
▶검사 : 행정처 기조실장이 직접 증인에게 문건 전달하고 얘기하는 게 어땠나
요?
▶증인 : 기분이 나빴습니다. 재판 사항인데 이런 말 하기 조심스럽고 재판부
입장에선 불쾌했습니다.
▶검사 : 행정처가 재판에 관해 재판부에 문건을 전달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는 취지로 말씀하셨는데….
▶증인 : 재판은 아무도 외부에서는 접근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하고 특히
행정처는 오해받을 소지가 많습니다. 재판부가 행정처에 '혹시 관련된 검
토자료 있어요?'라고 물을 수는 있어도 거꾸로 행정처가 하는 것은 아니에
요. 모든 것은 재판부 의도에 의해 움직여야 하는 것이지 외부에서 재판부에 접
근하는 것은 절대 반대입니다.

이어 이 대법관은 재판 기일을 지정한 것도 이민걸 당시 기조실장과의 만남과는
전혀 상관이 없으며 통진당 사건이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과 관련이 있다는 것
도 법원 자체 조사가 시작된 뒤에야 알았다고 말했습니다. 임 전 차장의 변호인
이 "재판거래가 아니라는 소신이 지금도 동일하냐"고 묻자 이 대법관
은 "그렇다"고 답하기도 했습니다. "재판부가 고생 많겠다 생각
"
이 대법관은 증인신문을 마치고 법정을 나서면서 그간의 소회를 밝혔습니다. 그
러면서 '재판부가 많이 고생하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습니다.

임 전 처장의 재판을 맡고 있는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6부의 윤종섭 부장판사
는 사법연수원 26기 판사입니다. 임 전 차장은 사법연수원 16기이기 때문에 10
년 선배의 형사재판을 맡고 있는 셈입니다. 이 대법관은 사법연수원 17기로 임
전 차장보다 한 기수 후배입니다.

재판부께서 중요한 사건을 하시고 고생 많으시다고 생각합니다. 대법관으로서
증인석에 앉는 게 유쾌한 일은 아니겠죠. 그렇지만 재판은 필요한 일이고 형사
재판을 해본 사람 입장에서는 누구든지 증거로 제출된 서면의 공방 있으면 나올
수밖에 없다는 것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나와서 재판 증인석에 서
서 이 사건의 무게 가운데 재판부가 많이 고생하시겠구나 생각했습니다. 건강
유념들 하시고 잘 마무리해서 좋은 재판으로 기억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이상입니다.
-이동원 대법관의 마지막 법정 발언


이달 말에는 노정희 대법관도 임 전 차장의 재판 증인으로 나오게 됩니다. 주
3회까지도 진행되는 임 전 차장의 다음 재판 기일은 오는 18일로 예정돼 있습니
다.

남정민 기자 peux@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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