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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증시 60돌]②`나는 개인투자자다`
edaily | 2016-03-01 14:27:00
- 개인투자자를 통해 본 자본시장 역사

[이데일리 박형수 임성영 기자] “여의도 증권가에서는 지나가는 개도 주둥이에 10만원짜리 수표를 물고 다닌다더니만 주식이 미쳐브렀어.”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 주인공의 아버지로 등장한 은행원 성동일이 툭 던진 한 마디에 피식 웃는다. 그런 시절이 있었던가 싶다. 나는 개인투자자(개미)다. 증권사를 다니다 전업 투자자로 나선 지 어느덧 20년이 돼간다.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내가 사는 곳과 내가 타는 차를 보며 부러워한다. 하지만 주변에서 전업 투자자로 나서겠다는 사람을 보면 말리고 싶다. 투자를 시작한 뒤로 마음 편하게 잔 날이 언제인가 싶다. 새벽에 일어나 뉴욕 장 마감 상황을 확인하고 경제뉴스를 스크린 하고 나면 나오는 건 한숨뿐이다. 장중에는 6개나 되는 모니터를 보다 보면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도 모른다. 중국 증시 동향은 물론이고 요즘에는 일본 증시도 확인하지 않으면 안 된다. 실시간으로 들어오는 메신저에도 적당히 대답하지 않으면 정보 네트워크가 끊길 수 있다. 예전에는 3시 정규 장이 끝나면 한숨 돌릴 수 있는 데 요즘엔 시간외 거래도 10분 단위로 체결되니 신경을 안쓸 수 없다.

개인투자자 A씨는 증권사에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아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를 겪었다. 경쟁 증권사가 부도나고 잘 알고 지내던 업계 선배들이 짐을 싸서 여의도를 떠나는 모습을 보고 전업 투자자를 꿈꿨다. 증권사가 안정적인 직장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던 탓이다. 제도권에서 나오니 상장사 정보를 얻기가 쉽지 않아 초기에는 손실도 많이 봤다. 부모님께 받은 돈이랑 친구들이 불려 달라며 맡긴 돈도 바닥을 드러냈다. 다행히 외환위기를 극복하면서 정부가 벤처 투자를 장려했고 주식시장에서도 IT 버블이 일어나면서 원금을 회복하고 수익도 냈다. 코스닥시장에서 닷컴이라고 이름 붙은 주식을 서로 사려고 증권사 객장이 문을 열기 전부터 줄을 섰다. 1999년 LG반도체 지분을 인수한 현대반도체(현 SK하이닉스)가 잘 될 것 같아서 사서 재미를 봤다. 그해 7월부터 9월까지 3개월 동안 주가가 3배 가까이 올랐다. 반도체 업계 구조조정으로 형편이 좀 나아질 것 같다는 예상이 맞아떨어졌다.

점점 자신이 붙어 투자 규모를 늘려갈 때 9·11테러가 일어났다. 하루만에 종합주가지수가 10% 이상 급락했다. 손 쓸 틈도 없었다. 열흘 사이 계좌는 반토막 났다. 원금을 회복하는 데 1년 넘게 걸렸다. 50% 손실을 회복하려면 남은 금액의 100% 수익을 내야 하는 게 주식시장이다. 원금을 회복하고 난 뒤 전업 투자를 접을까도 고민했다. 그만큼 마음고생이 심한 탓이엇다. 치킨집이라도 내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황우석 박사가 연일 화제가 됐다. 바이오 주식이 불을 뿜었다. 만년 적자 상태였던 바이오 업체 주가가 일주일 사이에 2배씩 올랐다. 이때 자산이 불었다. 손실과 회복만 반복하다 제대로 자산이 늘어난 시기다.

2007년까지는 말 그대로 대세 상승장이었다. IMF 때 구조조정을 겪은 우리 기업들이 해외에서 잘 나간 덕분이다. 삼성전자, 현대차 등 대형주가 쉼 없이 올랐다. 증권사에 있던 선배의 조언을 듣고 미래에셋증권이랑 몇몇 증권주를 샀다. 2007년 코스피가 2000선을 돌파할 때는 정말 축배를 들었다. 선배에게 제대로 한턱냈다. 지금 돌이켜보면 당시에 조선주를 샀다면 더 벌 수도 있었을 텐데 아깝기도 하다.

그래도 이젠 정말 노후가 안정적이라 생각했다. 무리하게 투자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차도 바꿨다. 하지만 달콤한 시절은 1년도 안 돼 산산조각이 났다. 미국에서 리먼 브러더스가 파산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미국에 있는 증권사 하나 망했다고 큰일이 있을까 싶었다. 2008년 10월 코스피는 890선까지 떨어졌다. 1년 만에 2000포인트에서 900포인트로 하락하는 데 개별 종목은 말할 것도 없었다. 코스피 2000시대를 이끈 조선주는 그야말로 박살이 났다. 55만까지 올랐던 현대중공업은 10만원까지 빠졌다. 20만원을 웃돌던 미래에셋증권도 5만원 밑으로 떨어졌다. 함께 투자했던 개미들이 하나둘 사라졌고, 모니터만 멍하니 쳐다보는 것 외엔 할 게 없었다.

다행히 국내 증시로 외국인이 몰려 들었다. 미국에서 경기 회복을 위해 막대하게 달러를 찍어냈고 이자부담 없는 투자자는 달러를 빌려 전세계 싼 주식을 사기 시작했다. 2007년 펀드 시대가 열릴 때 이름을 날렸던 유명 매니저가 독립하면서 자문사를 차린 것도 증시 회복에 도움이 됐다. 투자의 대가라 불리던 매니저가 자문사를 개업하니 강남의 부자들이 현금을 싸들고 찾아왔다.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자금이 몰린 자문사는 공격적으로 투자했다. 운용사처럼 수백개 종목에 분산투자하지 않고 일부 종목을 집중적으로 사들였다. 기아차, 하이닉스, 제일모직, LG화학, 삼성SDI, 삼성테크윈, 삼성전기 등 ‘자문사 7공주’가 날아올랐다. K5 디자인이 괜찮다 생각했던 터라 기아차 투자로 재미를 봤다.

당시 정부는 경기 회복을 위해 ‘한국형 녹색 뉴딜’ 정책을 밀어붙였다. 태양광 발전의 선두주자 ‘동철이’ OCI와 4대강 따라 자전거 길을 타고 달린 삼천리자전거 등이 급등했다. 삼천리자전거는 정말 무서울 정도로 빨리 올랐다. 아마 이때 개인 투자자들이 정말 많이 늘어난 것 같다. 커피숍이건 식당이건 옆에서 들리는 소리는 전부 주식 투자였다. 최근 2~3년 사이에 애널리스트와 펀드 매니저 출신 전문가가 전업 투자자로 나서면서 주가가 오르고 내리는 속도가 과거에 비할 바가 아니다. 조금씩 투자 트렌드에 뒤처지는 걸 실감한다. 조만간 은퇴해야 할 것 같다. 대박주와 쪽박주를 모두 경험했다. 운이 좋아 아직 주식투자를 하지만 주변에서 깡통 계좌와 함께 사라진 개인 투자자가 부지기수다.

*이 기사는 취재를 바탕으로 1인칭 시점에서 스토리텔링 방식으로 재구성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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