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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정부 '세차례 압박'에…KOTRA 결국 "알바 112명 채용"
한국경제 | 2018-10-23 00:41:28
[ 박종필 기자 ] 기획재정부 정책총괄과는 지난 4일 오후 8시 각 부처 산하 공
공기관과 공기업에 긴급하게 공문을 발송했다. 공문은 “늦은 시간에 연락
을 드려서 죄송하다”는 공손한 문장으로 시작했지만 내용은 “연내
단기 일자리 확대방안을 작성해 내일 오전 11시까지 보고하라”는 압박
문구로 채워졌다. ‘3개월 내. 10~12월 내 채용’이라는 구체적인 지
침도 담겼다. 산하기관 수가 가장 많은 산업통상자원부와 국토교통부가 기재부
의 ‘타깃’이 됐다. 공기업 평가를 담당하는 기재부의 지시를 받은
공공기관들은 한밤중에 채용계획을 급조해 기재부에 보고했고, 그대로 정부 목
표가 됐다.


공기업에 ‘더 채용하라’ 팔 비틀기

22일 박맹우 자유한국당 의원에 따르면 산업부 산하 공기업·공공기관 4
1곳 중 14곳이 정부의 요구에 응했다. 기술보증기금은 정부 요청이 오자 기대에
맞추기 위해 550명 규모의 ‘청년기술평가 체험단’을 꾸리겠다는
계획안을 곧바로 기재부에 재출했다. 정규직 직원 1337명의 40%에 달하는 인력
을 2개월짜리 아르바이트로 채용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공문을 보낸 기재부조
차 “체험단의 실제 활동기간이 10일 미만에 그치는 등 실효성이 없다&rd
quo;고 판단해 기보의 사업계획 자체를 취소해버렸다. 산하기관조차 무리한 정
부 지침에 현실성이 부족한 사업계획안으로 답한 셈이다.

한국전력공사 계열사로 전력·산업 설비 관리를 주로 하는 한전KPS는 두
번째로 많은 239명을 채용하기로 했다. 이미 9월까지 1500명 이상을 채용한 바
있지만 기재부 압박에 숫자를 더 늘린 것이다. 단기 채용자들은 주로 정비공사
현장지원 인력으로 투입될 예정이다. 3분기 화력·원전부문 발전 정비
수요 감소로 실적 악화가 우려되는 가운데 무리하게 채용을 늘렸다는 비판이 제
기된다.

채용계획이 없다고 밝힌 공기업을 ‘쥐어짠’ 의혹도 제기됐다. 박
의원은 이날 국정감사장에서 “채용계획이 없다고 밝힌 KOTRA를 압박한 정
황이 있다”고 주장했다. KOTRA는 지난달 17일에도 단기 일자리 채용계획
을 보내달라는 기재부의 공문을 받았다. KOTRA는 다음날 채용계획을 ‘0명
’이라고 밝혀 사실상 정부 요구를 거절했다. 하지만 9일 뒤인 지난달 28
일 기재부로부터 재차 채용계획을 늘려달라는 공문을 받고 채용계획을 ‘
10명’이라고 수정해 보냈다. 기재부로부터 ‘성에 차지 않는&rsquo
; 숫자라는 질책이 뒤따랐다. 지난 4일 세 번째 공문을 받고 채용계획을 10배로
늘려 112명으로 보고했다.

권평오 KOTRA 사장은 박 의원 지적에 대해 “기재부의 독촉에 억지로 없던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제출한 것은 아니다”며 “정부가 처음 공문을
보낸 당시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해 인력수요 조사를 충분히 하지 못한 것일 뿐
”이라고 답했다.

새로 생긴 일자리 대부분 단순 직무

LH(한국토지주택공사)·한국도로공사·코레일(한국철도공사) 등 국
토교통부 산하 23개 공공기관도 올해 말까지 380여억원을 들여 1만2500명의 단
기 채용을 하기 위해 준비 중이다. 이들 인력 역시 대부분 도로 청소, 고객 안
내, 홍보물 배포 등 단순업무를 맡는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이 최근
국정감사에서 “청년 취업자의 경력 관리와 자기계발 차원에서 일자리를
제공하겠다는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새로 마련한 일자리 대부분은 단순
직무였다.

산업부 산하기관의 단기 일자리 확충 사업 역시 ‘단순노무’라는 점
에서 사정이 다르지 않다. 177명을 채용하겠다고 밝힌 중소기업진흥공단은 2개
월간 월급 146만원을 준다. 서류 전산화, 서류 수령 분류 등이 주 업무다. 64명
을 채용하겠다고 한 한국가스공사는 3개월 동안 월 173만원을 주고 행정업무 지
원, 설비 안전점검 보조 등의 업무에 투입한다. 한국석유공사는 고령층을 대상
으로 사옥 제초작업 및 식당 업무보조 일을 맡길 예정이다.

박 의원은 “기재부 독촉으로 쥐어짜낸 공공기관 단기 일자리는 세금 지원
이 끊어지면 없어지는 가짜 일자리”라며 “고용과 통계 조작을 위한
의도가 숨어 있다”고 비판했다.

박종필 기자 j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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