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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서울대 민간인 고문 사건 피해자 "조국 옹호 유시민, 아직도 궤변으로 선동"
한국경제 | 2019-10-16 08:37:03
전기동 씨는 서울대 민간인 고문 사건 피해자다. 지난 1984년 서울대 일부 운동
권 학생들은 전 씨를 포함한 피해자 4명을 정보기관 프락치라고 오인해 불법 감
금하고 고문했다.

피해자들은 각각 22시간에서 최대 6일 간 감금된 상태로 고문을 당했다. 피해자
들 중 한명은 사건 후유증으로 정신분열증까지 앓고 있다.

해당 사건의 가해자 중 한명인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조국 사태가 터진
후 매 국면마다 등장했다. 조국 정국에서 조국 전 법무부장관 못지않게 주목을
받았다. 전 씨는 "유시민이 TV에 나올 때마다 그때 기억이 떠올라 괴로웠
다"고 했다.

유 이사장은 직접 피해자들을 폭행하진 않았지만 피해자 소지품을 뒤져 신분을
확인하는 등 프락치 색출작업에 동참했다.

유 이사장은 2006년 보건복지부 장관에 임명된 뒤 청문회에서 이 사건에 대해
"그 길이 내가 원했던 길도 아니고 걷고 싶던 길도 아니었다"며 &qu
ot;그 분들(피해자) 중 어떤 분은 굉장히 심하게 폭행을 당했다는데 당시 조사
를 받을 때에도 미안하다고 말했고 지금도 그 마음에 변함이 없다"고 소회
를 드러냈다.

유 이사장은 당시 사건으로 징역 1년 유죄를 선고받았다. 다음은 전 씨와의 일
문일답.

▷사건 이후 어떻게 지내나.

"폭행을 당한 후 대인기피증이 생겨 고시공부를 포기했다. 이후 구청 공무
원으로 일하다 퇴직한 후 보안원, 경비원 등으로 근무했다. 올해 만 64세인데
아직까지 결혼도 못했다. 다 그 사건 때문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인생에서 가
장 중요한 시기에 당한 일이라 후유증이 컸다. 사건 이후로도 제가 실제 프락치
라는 음해를 계속해서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었다. 나는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고 피해자 중에는 현재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는 사람까지 있다."

▷유 이사장이 조국 사태가 터진 후 매 국면마다 등장해 조 전 장관을 옹호했다
.

"유 이사장은 민간인을 프락치라고 오인해 감금 폭행하고도 민주화운동을
했다고 포장했다. 아직까지도 궤변으로 국민들을 선동하고 있구나 생각했다.&
quot;

▷가해자인 유시민 이사장이 지난 4월 한 방송에 나와 서울대 민간인 고문 사건
때 쓴 항소이유서에 대한 얘기를 나누던 중 "울분을 풀기 위해 쓴 글인데
아직도 회자된다. 문장이 길고, 고색창연한 글'이라고 자랑하듯 말했다.


"피해자들은 아직도 고통 받고 있는데 반성을 모르는 사람이다. 당시 사건
은 민주화운동과는 전혀 관련 없는 민간인 고문 사건이다. 유 이사장이 지난 2
003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하면서 선거 홍보물에 '이 사건 관련자들이
민주화 운동 유공자로 이미 명예회복을 하였다'고 적어 소송을 통해 바로
잡은 적도 있다. 유 이사장이 사건을 왜곡하는 발언을 할 때마다 고발이나 언
론중재위 제소 등을 통해 바로 잡으려고 노력했다. 유 이사장이 TV에 나오는 걸
볼 때마다 그때 기억이 떠오른다. 요새는 유 이사장이 자주 나와서 TV를 거의
안 보는데 주변에서 또 그런 말(사건을 왜곡하는 발언)을 했다고 알려주더라.
이제는 생업이 바빠서 일일이 바로 잡지도 못하고 있다."

▷당시 피해자들이 실제 프락치였다는 주장이 있다.

"벌써 35년 전 일인데 여전히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건 발생
후 각 대학에 피해자들이 오히려 잘못한 것처럼 대자보가 붙더라. 당시 저는 방
송통신대 법학과 3학년에 다니며 사법고시를 준비하고 있었다. 방송통신대 학생
들은 서울대 법대에서 수업을 받기도 했다. 레포트 작성을 위해 서울대 모 교수
님에게 책을 빌리러 갔다가 붙잡혔다. 가해자들에게 그 교수님에게 확인해보라
고 했다. 교수님이 내 신분을 확인해줬는데도 믿지 않고 폭행을 계속했다.&quo
t;

▷당시 상황을 자세히 설명해 달라.

"가해자들이 잠깐 이야기 좀 하자고 해서 따라갔다. 내가 프락치라고 몰아
세웠다. 계속 아니라고 하니까 교련복으로 갈아입히고 눈을 가렸다. 그때부터
폭행이 시작됐다. 돌아가면서 몇 시간 씩 나를 폭행했다. 가해자들은 우발적인
사건이었다고 하는데 나를 감금한 장소 창문을 미리 신문지로 다 가려놨더라.
물이 담긴 세면대에 머리를 쳐 박거나, 바닥에 눕히고 주전자로 얼굴에 물을
붓는 등 물고문도 했다. 이 과정에서 치아가 부러지고 전치 8주 부상을 입었다
. 고문에 못 이겨 내 군대시절 상관이 시켜서 왔다고 아무렇게나 말했다. 고문
도중 실신해 2일 만에 풀려났다. 이틀간 식사도 못했다. 풀려나기 직전에야 빵
을 주더라. 당연히 먹지도 못했다. 병원에서도 한동안 혼자 일어서지도 못할 정
도로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유 이사장은 피해자를 위해 구급차를 부르는 등 사태를 수습하려고 했다고 주
장했다.

"그런 말도 너무 화가 난다. 내가 잘못되면 자기들이 피해를 입을까봐 그
런 거지 나를 위해 한 행동인가."

▷유 이사장은 폭행을 지시하거나 가담한 사실이 없다고 한다.

"나는 당시 누가 누구인지도 몰랐고, 눈을 가린 채 폭행을 당했기 때문에
사건의 전말을 몰랐다. 판결문에 따르면 유 이사장은 피해자 소지품을 뒤져 신
분을 확인하는 등 직접 프락치 색출작업을 했다. 유 이사장은 피해자들을 신문
하면서 '계속 다른 말을 하면 나중에 두고 보자'는 등 협박성 발언도
했다. 가해자들은 유 이사장 앞에서 피해자들을 폭행했다. 유 이사장은 당시 서
울대 복학생협의회 집행위원장으로 이들을 말릴 수 있는 위치에 있었지만 그러
지 않았다."

▷피해자 4명 중 가장 심하게 폭행을 당했다.

"당시 운동권 사람들이 전두환을 미워하지 않았나. 내가 전두환과 같은 전
씨라고 심하게 폭행했다. 정말 미개한 사고방식이었다."

▷지난 2006년 유시민 당시 보건복지부장관 후보자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하려
했지만 열린우리당(현 민주당) 반대로 증인 채택이 불발됐다. 증인으로 출석하
면 무슨 말을 하고 싶었나.

"그냥 저런 인간이 장관 되면 안 된다고 말하고 싶었다."

▷사건 이후 유 이사장이 사과한 적이 있나.

"지난 1997년 유 이사장이 자기 책에서 '서울대 프락치 사건'이라
는 명칭을 써서 소송을 걸었다. 피해자들은 프락치가 아니라 민간인들이었다.
'서울대 프락치 사건'이 아니라 '서울대 민간인 고문 사건'이
다. 판사가 합의를 권유하면서 유 이사장에게 사과하라고 하더라. 그때 처음이
자 마지막으로 유 이사장이 제게 사과했다. 진심어린 사과가 아니었다. 그 이후
로도 소송 때문에 유 이사장을 만난 적이 있는데 사과는 커녕 아는 체도 안하더
라."

▷지금이라도 유 이사장이 사과한다면 용서할 생각은 있나.

"35년 간 피해자들을 음해하다가 이제 와서 사과한다? 또 자기가 불리해지
니까 사과하는 거지. 용서하기 싫다."

김명일 한경닷컴 기자 mi737@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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