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與, 외환위기 때 내놨던 무기명 채권 도입 검토
한국경제 | 2020-04-01 02:09:04
한국경제 | 2020-04-01 02:09:04
[ 김우섭 기자 ] 더불어민주당이 1998년 이후 22년 만에 무기명 채권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풍부한 시중 유동자금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 대응에 필요한 재원으로 쓰기 위해서다. 채권자 이름이 적혀 있지 않은 무기
명 채권은 상속·증여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어 자산가를 중심으로 수요
가 적지 않을 것이라는 게 금융투자업계의 관측이다.
원내대표단, 무기명 채권 도입 논의
31일 여권에 따르면 민주당 최운열 금융안정태스크포스(TF)단장과 손금주 의원
등 일부 의원은 최근 원내대표단 회의에서 한시적인 무기명 채권 발행을 제안
했다. 최 단장은 “사상 최저 수준의 금리로 인해 급증한 유동자금을 코로
나19 극복을 위해 쓸 수 있는 방안”이라며 “금리를 제로(0)나 마이
너스로 발행하면 정부의 채무 부담도 덜 수 있다”고 말했다. 회의에 참석
했던 한 의원은 “‘당 성향을 떠나 비상시국에 쓸 수 있는 방안은
다 써야 한다’는 긍정적 반응이 나왔다”고 전했다.
무기명 채권의 발행 주체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국가가 직접 발행하거나 공
공기관 등이 발행할 수도 있다. 특정 기간에 한시적으로 발행하고, 조성 자금은
회사채 매입이나 중소기업·자영업 지원 등에 한정하는 방안이 유력하다
. 채권 이자율은 제로(0) 금리 또는 마이너스 금리로 정해질 전망이다.
정부가 가장 최근 무기명 채권을 발행한 건 외환위기 때인 1998년이다. 5년 만
기에 이자율도 당시로선 낮은 연 6% 안팎에 그쳤지만 3조8744억원이나 발행했다
. 마련된 자금은 △실업자 지원 △중소기업 지원 △증권시장 안정 등 제한적 용
도로 쓰였다.
여권은 무기명 채권 발행으로 상당한 재원을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 경제 규모를 감안하면 1998년보다 두 배 이상은 조달할 수 있을 것이란 설명
이다. 이렇게 마련된 자금은 코로나19로 어려워진 기업의 회사채 매입과 중소기
업·자영업 지원 등에 쓰여질 전망이다. 손 의원은 “코로나19로 직
격탄을 맞은 회사들을 살릴 자금을 마련하는 데 무기명 채권 발행은 좋은 수단
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올 상반기 만기를 맞는 회사채·기업어음
(CP) 물량은 약 78조원 규모다. 이 중 비우량 채권(신용등급 A 이하)과 CP(A2-
이하)가 28조4595억원에 달한다. 정부가 채권시장안정펀드 등을 통해 회사채
매입을 지원하고 있지만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충분한 ‘실탄’을 마
련해둬야 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야당 동의 관건
무기명 채권을 발행하기 위해서는 야당 동의와 여론이 중요하다. 야당은 국민을
대상으로 한 채권 발행엔 동의하고 있다. 미래통합당은 코로나19 위기 대응 차
원에서 ‘코로나 국민채권’ 발행을 제안한 바 있다. 정부가 공공기
관을 통해 액면가 100만원짜리 채권을 총 40조원 규모로 발행해 일반 국민이 금
융회사에서 살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민주당 관계자는 “일부 계층에
혜택이 집중된다는 측면에서 논란이 불가피하다”며 “먼저 국민의
동의를 얻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채권 전문가들은 무기명 채권이 나온다면 낮은 이자율에도 자산가를 중심으로
상당한 수요가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무기명 채권을 자식들에게 물려주면 최대
50%에 달하는 상속·증여세를 내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1998년에도
부유층의 상속·증여 수단 등으로 인기가 높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
강남의 한 프라이빗뱅커(PB)는 “무기명 채권은 서울 ‘강남 부자&
rsquo;들의 절세 상품으로 떠오를 것”이라며 “1인당 매입 금액을
제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세수 감소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작년 한 해 걷힌 상속·증여세는 1조1012억원 수준이다.
일각에선 하락 추세로 접어든 서울 아파트값이 더 떨어질지 모른다는 전망도 나
온다. 상속·증여세를 내고 아파트를 물려주는 대신 아파트를 판 자금으
로 무기명 채권을 사는 게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김우섭 기자 dut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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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토하고 있다. 풍부한 시중 유동자금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 대응에 필요한 재원으로 쓰기 위해서다. 채권자 이름이 적혀 있지 않은 무기
명 채권은 상속·증여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어 자산가를 중심으로 수요
가 적지 않을 것이라는 게 금융투자업계의 관측이다.
원내대표단, 무기명 채권 도입 논의
31일 여권에 따르면 민주당 최운열 금융안정태스크포스(TF)단장과 손금주 의원
등 일부 의원은 최근 원내대표단 회의에서 한시적인 무기명 채권 발행을 제안
했다. 최 단장은 “사상 최저 수준의 금리로 인해 급증한 유동자금을 코로
나19 극복을 위해 쓸 수 있는 방안”이라며 “금리를 제로(0)나 마이
너스로 발행하면 정부의 채무 부담도 덜 수 있다”고 말했다. 회의에 참석
했던 한 의원은 “‘당 성향을 떠나 비상시국에 쓸 수 있는 방안은
다 써야 한다’는 긍정적 반응이 나왔다”고 전했다.
무기명 채권의 발행 주체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국가가 직접 발행하거나 공
공기관 등이 발행할 수도 있다. 특정 기간에 한시적으로 발행하고, 조성 자금은
회사채 매입이나 중소기업·자영업 지원 등에 한정하는 방안이 유력하다
. 채권 이자율은 제로(0) 금리 또는 마이너스 금리로 정해질 전망이다.
정부가 가장 최근 무기명 채권을 발행한 건 외환위기 때인 1998년이다. 5년 만
기에 이자율도 당시로선 낮은 연 6% 안팎에 그쳤지만 3조8744억원이나 발행했다
. 마련된 자금은 △실업자 지원 △중소기업 지원 △증권시장 안정 등 제한적 용
도로 쓰였다.
여권은 무기명 채권 발행으로 상당한 재원을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 경제 규모를 감안하면 1998년보다 두 배 이상은 조달할 수 있을 것이란 설명
이다. 이렇게 마련된 자금은 코로나19로 어려워진 기업의 회사채 매입과 중소기
업·자영업 지원 등에 쓰여질 전망이다. 손 의원은 “코로나19로 직
격탄을 맞은 회사들을 살릴 자금을 마련하는 데 무기명 채권 발행은 좋은 수단
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올 상반기 만기를 맞는 회사채·기업어음
(CP) 물량은 약 78조원 규모다. 이 중 비우량 채권(신용등급 A 이하)과 CP(A2-
이하)가 28조4595억원에 달한다. 정부가 채권시장안정펀드 등을 통해 회사채
매입을 지원하고 있지만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충분한 ‘실탄’을 마
련해둬야 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야당 동의 관건
무기명 채권을 발행하기 위해서는 야당 동의와 여론이 중요하다. 야당은 국민을
대상으로 한 채권 발행엔 동의하고 있다. 미래통합당은 코로나19 위기 대응 차
원에서 ‘코로나 국민채권’ 발행을 제안한 바 있다. 정부가 공공기
관을 통해 액면가 100만원짜리 채권을 총 40조원 규모로 발행해 일반 국민이 금
융회사에서 살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민주당 관계자는 “일부 계층에
혜택이 집중된다는 측면에서 논란이 불가피하다”며 “먼저 국민의
동의를 얻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채권 전문가들은 무기명 채권이 나온다면 낮은 이자율에도 자산가를 중심으로
상당한 수요가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무기명 채권을 자식들에게 물려주면 최대
50%에 달하는 상속·증여세를 내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1998년에도
부유층의 상속·증여 수단 등으로 인기가 높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
강남의 한 프라이빗뱅커(PB)는 “무기명 채권은 서울 ‘강남 부자&
rsquo;들의 절세 상품으로 떠오를 것”이라며 “1인당 매입 금액을
제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세수 감소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작년 한 해 걷힌 상속·증여세는 1조1012억원 수준이다.
일각에선 하락 추세로 접어든 서울 아파트값이 더 떨어질지 모른다는 전망도 나
온다. 상속·증여세를 내고 아파트를 물려주는 대신 아파트를 판 자금으
로 무기명 채권을 사는 게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김우섭 기자 dut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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