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아들에게 사업 물려주려 했는데 빚덩이만 넘겨줄 판"
한국경제 | 2020-10-22 08:53:28
한국경제 | 2020-10-22 08:53:28
[ 노경목/민경진/구은서 기자 ] 월성 원자력발전소 1호기에 대한 감사원의 감
사 결과 발표를 누구보다 기다린 사람들이 있다. 4만 명에 이르는 원전 관련 산
업 종사자들이다. 감사원이 월성 1호기의 경제성 평가를 엄정하게 할 것으로 기
대되면서 탈(脫)원전 정책의 변화나 속도 조절을 바랐다. 하지만 감사원이 지난
20일 월성 1호기 폐쇄의 타당성에 대해서는 판단을 유보한 가운데 정부가 &ld
quo;탈원전 정책을 차질없이 추진해 나가겠다”고 공언하면서 마지막 희망
의 끈이 끊어졌다.
원전 관련 중견·중소기업 최고경영자(CEO) 중 사업 중단을 결심하는 CE
O가 속출하고 있다. 원전설비 업체인 A사 대표는 21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
에서 “이제는 정말 마지막인 것 같다”며 “올해 말 사업을 접
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경남의 원전 기자재업체인 B사는 다음달 구조조
정에 들어간다. B사 대표는 “어떻게든 버텨왔지만 이제 희망이 보이지 않
는다”고 했다. 감사원 및 정부 발표로 월성 1호기의 가동 재개,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 전망이 어두워진 데 따른 것이다.
대표적 원전업체인 두산중공업에서는 만 45세까지 구조조정 대상에 오르며 올해
에만 1000명 이상의 직원이 회사를 떠났다.
2018년 정부 연구용역에서는 탈원전 정책으로 3만8800명인 원전업계 종사자가
2030년 3만 명 미만으로 감소할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원전업계의 ‘일
자리절벽’은 더 빨리 현실화하고 있다. 윤한홍 국민의힘 국회의원에 따르
면 지난해 두산중공업에 원전 부품을 납품한 중소 협력업체는 219개로 2016년(
325개)의 3분의 2 수준으로 줄었다. 신규 계약 역시 같은 기간 2836건에서 110
5건으로 60% 감소했다.원전 업체 CEO들의 울분
"감사원이 脫원전 제동거나 했는데…공사 다 끊겨 올해가 정말 끝&
quot;
“사업을 아들에게 물려주려 했는데 이제 빚덩이만 넘겨줄 판입니다. 가슴
이 미어집니다. 제발 우리 좀 살려주세요.”
휴대폰 너머로 절박함이 묻어났다. 경남의 원자력발전소 기자재 업체 B사가 설
비 개선에 50억원을 투자한 것은 2015년이었다. 당시 정부는 원전이 미래 유망
업종이라며 투자 확대를 권유했고 실제로도 신규 원전이 계속 지어질 예정이었
다. 하지만 2017년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상황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신규 원
전 건설은 백지화하고 기존 원전도 조기 폐쇄해 올해 26기인 국내 원전 수는 2
034년 17기까지 줄어든다. B사의 지난해 매출은 7억원으로 투자비 회수는커녕
기업 존속도 어려운 지경에 내몰렸다.
한국경제신문과 21일 긴급 인터뷰를 한 B사 대표는 20년 이상 쌓은 원전 기자재
기술이 사장되게 된 것을 폐업 이상으로 안타까워했다. 그는 “정밀도와
강도가 높은 원전 기자재를 제조하려면 고도의 기술력이 필요하다”며 &
ldquo;50년간 금속 가공 분야에서 일하며 획득한 기술을 사용할 곳이 말년에 사
라질 줄은 몰랐다”고 토로했다.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원전 관련 일감이 이미 줄고 있지만 가장 큰 ‘일
자리절벽’은 올해 말부터 닥칠 전망이다. 신고리 5·6호기 건설이
2024년 마무리되지만 주요 공사는 올해 12월께 끝나기 때문이다. 이성배 금속
노동조합 두산중공업지회 지회장은 “이미 부도 또는 폐업에 들어간 협력
회사가 많다”며 “하지만 신고리 5·6호기의 주요 공사가 올
연말 끝나면 문을 닫는 중소협력업체가 대거 생겨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
경남에 있는 A사는 탈원전이 본격화된 2018년부터 적자전환했다. 탈원전으로 2
010년 100억원을 투자해 확충한 생산장비의 상당 부분은 멈춰 있다. 야근을 없
애고 직원들을 내보내는 등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올해까지가 한계다. A사 대표
는 “불경기에 업종 전환은 엄두도 못 낸다”며 “너무 막막하
고 직원들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원전 기자재 업체 C사 대표는 “탈원전 이후 매년 100억원씩 손실을 보고
있다”고 상황을 전했다. 회사 직원 수는 현 정부 출범 이전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그는 “정부 또는 여당 관계자들을 만나 보면 원전 관련 산업
을 소멸시켜야 한다는 생각이 확고한 것 같다”며 “돈을 쓸 줄만 알
지 어떻게 벌지 전혀 고민이 없는 정부를 보며 희망을 잃었다”고 비판했
다.
원전 설비 D사 대표는 “작년까지는 어떻게든 버텼는데 이제는 정말 돈 나
올 구석이 없다”며 “과학적인 검증도 안 된 탈원전이라는 정치적
구호 하나로 수만 명의 원전 종사자들이 희생되고 있다”고 했다.
감사원 감사로 정부에 대한 실망은 더 커졌다. A사 대표는 “대통령 한마
디로 공무원들이 (월성 1호기 경제성 왜곡 등) 거짓말을 하는데 어떻게 믿고 세
금을 내겠느냐”며 “감사원 역시 외압이 있더라도 더 정확하게 실태
를 발표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B사 대표는 “주무부처인 산업통상
자원부가 원전산업에 대해서는 관심을 완전히 끊었다”며 “월성 1호
기 재가동이 어렵다면 신한울 3·4호기라도 건설을 재개해야 하지만 정부
움직임을 보면 어려울 것 같아 걱정”이라고 했다.
이성배 지회장은 “전문가 분석과 국민 의견 수렴보다 정해진 목표에 끼워
맞춘 것이 감사원 감사로 드러나지 않았느냐”며 “두산중공업 외에
다른 원전 관련 근로자들과 함께 대응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했다.
산업부 관계자는 “원전업계의 어려움을 알고 있다”며 “연구
개발(R&D), 금융 지원에 더해 수출 시장 개척 등 활로 개척을 위해 노력하고 있
다”고 말했다. 하지만 원전 관련 R&D 과제는 지난해 종료된 가운데 2022
년에야 재개될 예정이다. 이마저도 해체 및 안전 등 탈원전과 연관된 부문에만
지원된다. 금융 지원 역시 한국수력원자력을 통해 제한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노경목/민경진/구은서 기자 autonom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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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결과 발표를 누구보다 기다린 사람들이 있다. 4만 명에 이르는 원전 관련 산
업 종사자들이다. 감사원이 월성 1호기의 경제성 평가를 엄정하게 할 것으로 기
대되면서 탈(脫)원전 정책의 변화나 속도 조절을 바랐다. 하지만 감사원이 지난
20일 월성 1호기 폐쇄의 타당성에 대해서는 판단을 유보한 가운데 정부가 &ld
quo;탈원전 정책을 차질없이 추진해 나가겠다”고 공언하면서 마지막 희망
의 끈이 끊어졌다.
원전 관련 중견·중소기업 최고경영자(CEO) 중 사업 중단을 결심하는 CE
O가 속출하고 있다. 원전설비 업체인 A사 대표는 21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
에서 “이제는 정말 마지막인 것 같다”며 “올해 말 사업을 접
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경남의 원전 기자재업체인 B사는 다음달 구조조
정에 들어간다. B사 대표는 “어떻게든 버텨왔지만 이제 희망이 보이지 않
는다”고 했다. 감사원 및 정부 발표로 월성 1호기의 가동 재개,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 전망이 어두워진 데 따른 것이다.
대표적 원전업체인 두산중공업에서는 만 45세까지 구조조정 대상에 오르며 올해
에만 1000명 이상의 직원이 회사를 떠났다.
2018년 정부 연구용역에서는 탈원전 정책으로 3만8800명인 원전업계 종사자가
2030년 3만 명 미만으로 감소할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원전업계의 ‘일
자리절벽’은 더 빨리 현실화하고 있다. 윤한홍 국민의힘 국회의원에 따르
면 지난해 두산중공업에 원전 부품을 납품한 중소 협력업체는 219개로 2016년(
325개)의 3분의 2 수준으로 줄었다. 신규 계약 역시 같은 기간 2836건에서 110
5건으로 60% 감소했다.원전 업체 CEO들의 울분
"감사원이 脫원전 제동거나 했는데…공사 다 끊겨 올해가 정말 끝&
quot;
“사업을 아들에게 물려주려 했는데 이제 빚덩이만 넘겨줄 판입니다. 가슴
이 미어집니다. 제발 우리 좀 살려주세요.”
휴대폰 너머로 절박함이 묻어났다. 경남의 원자력발전소 기자재 업체 B사가 설
비 개선에 50억원을 투자한 것은 2015년이었다. 당시 정부는 원전이 미래 유망
업종이라며 투자 확대를 권유했고 실제로도 신규 원전이 계속 지어질 예정이었
다. 하지만 2017년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상황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신규 원
전 건설은 백지화하고 기존 원전도 조기 폐쇄해 올해 26기인 국내 원전 수는 2
034년 17기까지 줄어든다. B사의 지난해 매출은 7억원으로 투자비 회수는커녕
기업 존속도 어려운 지경에 내몰렸다.
한국경제신문과 21일 긴급 인터뷰를 한 B사 대표는 20년 이상 쌓은 원전 기자재
기술이 사장되게 된 것을 폐업 이상으로 안타까워했다. 그는 “정밀도와
강도가 높은 원전 기자재를 제조하려면 고도의 기술력이 필요하다”며 &
ldquo;50년간 금속 가공 분야에서 일하며 획득한 기술을 사용할 곳이 말년에 사
라질 줄은 몰랐다”고 토로했다.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원전 관련 일감이 이미 줄고 있지만 가장 큰 ‘일
자리절벽’은 올해 말부터 닥칠 전망이다. 신고리 5·6호기 건설이
2024년 마무리되지만 주요 공사는 올해 12월께 끝나기 때문이다. 이성배 금속
노동조합 두산중공업지회 지회장은 “이미 부도 또는 폐업에 들어간 협력
회사가 많다”며 “하지만 신고리 5·6호기의 주요 공사가 올
연말 끝나면 문을 닫는 중소협력업체가 대거 생겨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
경남에 있는 A사는 탈원전이 본격화된 2018년부터 적자전환했다. 탈원전으로 2
010년 100억원을 투자해 확충한 생산장비의 상당 부분은 멈춰 있다. 야근을 없
애고 직원들을 내보내는 등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올해까지가 한계다. A사 대표
는 “불경기에 업종 전환은 엄두도 못 낸다”며 “너무 막막하
고 직원들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원전 기자재 업체 C사 대표는 “탈원전 이후 매년 100억원씩 손실을 보고
있다”고 상황을 전했다. 회사 직원 수는 현 정부 출범 이전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그는 “정부 또는 여당 관계자들을 만나 보면 원전 관련 산업
을 소멸시켜야 한다는 생각이 확고한 것 같다”며 “돈을 쓸 줄만 알
지 어떻게 벌지 전혀 고민이 없는 정부를 보며 희망을 잃었다”고 비판했
다.
원전 설비 D사 대표는 “작년까지는 어떻게든 버텼는데 이제는 정말 돈 나
올 구석이 없다”며 “과학적인 검증도 안 된 탈원전이라는 정치적
구호 하나로 수만 명의 원전 종사자들이 희생되고 있다”고 했다.
감사원 감사로 정부에 대한 실망은 더 커졌다. A사 대표는 “대통령 한마
디로 공무원들이 (월성 1호기 경제성 왜곡 등) 거짓말을 하는데 어떻게 믿고 세
금을 내겠느냐”며 “감사원 역시 외압이 있더라도 더 정확하게 실태
를 발표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B사 대표는 “주무부처인 산업통상
자원부가 원전산업에 대해서는 관심을 완전히 끊었다”며 “월성 1호
기 재가동이 어렵다면 신한울 3·4호기라도 건설을 재개해야 하지만 정부
움직임을 보면 어려울 것 같아 걱정”이라고 했다.
이성배 지회장은 “전문가 분석과 국민 의견 수렴보다 정해진 목표에 끼워
맞춘 것이 감사원 감사로 드러나지 않았느냐”며 “두산중공업 외에
다른 원전 관련 근로자들과 함께 대응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했다.
산업부 관계자는 “원전업계의 어려움을 알고 있다”며 “연구
개발(R&D), 금융 지원에 더해 수출 시장 개척 등 활로 개척을 위해 노력하고 있
다”고 말했다. 하지만 원전 관련 R&D 과제는 지난해 종료된 가운데 2022
년에야 재개될 예정이다. 이마저도 해체 및 안전 등 탈원전과 연관된 부문에만
지원된다. 금융 지원 역시 한국수력원자력을 통해 제한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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