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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분가사(史)에 ‘형제의 난’은 없다
비즈니스워치 | 2018-05-23 10:05:59

[비즈니스워치] 윤도진 기자 spoon504@bizwatch.co.kr

LG는 ‘손(孫)’이 많은 집안이다. 창업 1세대를 이은 2세대만 해도 47명에 달한다. 5대(代)까지 뻗어 내려간 범LG의 가계도를 A4용지 한 장에 그려 넣기는 어림도 없다. 형제간 불협화음이 끊이지 않을 법 하지만 적어도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는 말은 LG에는 통하지 않는다.

유교 집안 LG는 가풍이 엄격하다. 아들만이 경영에 참여할 수 있고 장자(長子)만이 경영권을 대물림할 수 있다. 딸은 철저하게 배제한다. 며느리도 예외일 수 없다. ‘반(半)자식’이라는 사위들도 그룹 경영과는 무관하다. ‘사위가 그룹에서 맡을 일은 없다’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위계질서가 확고한 까닭에 일가들은 따랐다. 그렇다고 마냥 순응을 강요하지는 않았다. 방대한 일가 인맥을 이리저리 쪼개 섭섭지 않게 딴살림을 내줬다. 재산배분을 둘러싸고 ‘집안싸움’이 벌어지는 게 예사지만 유독 LG에서 만큼은 섭섭함을 토로하는 목소리가 밖으로 새나오는 법이 없었다.

한 집안이 경영해도 분란이 끊이지 않는 대그룹을 구(具)-허(許)씨 두 집안이 3대까지 공동 경영하고, LS·GS 등으로 분리하면서도 서로 얼굴을 붉히는 일이 없었다. 현대·롯데·두산·효성·금호 등이 보여줬던 ‘형제의 난’을 LG의 71년 사사(社史)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LG 기업 문화의 밑바탕에 깔린 유교적 가풍과 인화(人和) 정신. 이런 힘이 LG의 오늘을 있게 했다는 믿음은 일종의 신화처럼 굳었다.

 


LG가의 재산분할은 장자 승계를 원칙으로 한 후계구도와 깊게 맞물려 있다. 1969년 구인회 창업주 타계한 이후 장남 구자경 명예회장이 경영권을 승계했고, 이어 1995년 장손인 고(故) 구본무 회장이 물려받았다. 즉, 구 회장의 동생인 구본준 ㈜LG 부회장을 놔두고 외아들 구광모 LG전자 상무를  ‘경영 대권’ 계승자로 낙점한 것은 이런 원칙을 재확인 것에 다름 아니다. 

구-허씨 가족경영이 활발했던 LG가 본격적으로 재산분할에 나섰던 시기는 구자경 명예회장이 구 회장에게 경영권을 이양한 무렵이다. 장남으로 자신의 후계구도를 확실히 못박고 재산분할의 첫걸음을 뗐던 것이다.

아들 4형제 중 둘째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을 분가시킨 게 1995년이다. 막내 구본식 희성그룹 부회장과 함께 였다. 현재 LG에 남아있는 3세 중 구본준 부회장이 유일한 것은 이 때문이다.

LG의 ‘3세 경영 시대’을 신호탄으로 2세대인 구 명예회장의 남동생들도 차례로 분가해 나갔다. 2000년 3월 셋째 구자두씨의 LG벤처투자(현 LB인베스트먼트)가 계열 분리됐다. 같은 해 9월에는 둘째 구자학씨가 아워홈을 가지고 형의 우산에서 벗어났다. 이어 2007년 12월에는 첫째동생 고(故) 구자승 전 반도상사(LG상사) 사장 일가 몫의 LG패션(현 LF)이 독립했다.

다만 일찌감치 LG에서 나와 직접 기업체를 차려 ‘마이웨이(My way)’를 가는 형제도 있는데 넷째 구자일 일양화학 회장이다. LG그룹 부회장을 지낸 뒤 1987년 3월 설립한 곳이 화학업체 일양안티몬(현 일양화학)이다.

막내 구자극씨의 경우도 LG상사 미주법인 회장으로 활동하다가 2014년 대주주로 있던 예림인터내셔널을 통해 전자부품업체 이림테크(현 엑사이엔씨)를 인수, 독자적인 경영자의 길을 가고 있다.

 

▲ 고(故) 구본무 LG그룹 회장. 구광모 LG전자 상무.


창업주를 비롯한 ‘회(會)’자 항렬의 이른바 ‘인·철·정·태·평·두’ 1세대 창업 형제들도 연쇄적으로 계열분리에 들어갔다. 창업주가 LG를 일구는 과정에서 함께 헌신했던 공신들이었다.

1999년 11월 창업회장의 첫재동생 고 구철회 LG 창업고문의 LG화재해상보험(LIG손해보험→현 KB손해보험)이 계열분리됐다. 구 고문의 장남 구자원 명예회장이 LIG그룹을 일으키는 데 모체가 됐던 계열사다.  

2003년 11월에는 LG 창업 형제들 중 ‘태·평·두’ 3형제가 LG에서 전선·도시가스 분야를 가지고 분가하면서 LS그룹이 태통했다. 고 구태회 LS전선 명예회장, 고 구평회 E1 명예회장, 고 구두회 예스코 명예회장이 창업 주역이다.

2004년 7월에는 허씨 집안과 이별의 악수도 나눴다. GS는 허창수 회장의 조부 허만정 LG 공동창업주와 구인회 LG 창업주가 동업으로 1947년 1월 락희화학공업사(현 LG화학)를 공동창업한 데 뿌리를 두고 있다. 57년 ‘동행’을 끝내고 정유·유통·홈쇼핑·건설부문 등을 가지고 LG에서 독립했다.

LG는 2012년 12월 19개사를 친족분리했다. LG그룹 계열사의 30%가 넘는 규모였다. 방대함에도 불구하고 당시 친족분리는 그다지 세간의 주목을 받지 않았다. LG에 편입돼 있지 않았던 이유도 있었겠지만 현 제도상 일찌감치 분리됐어야 할 회사들을 뒤늦게 떼어낸 것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긴 사사에도 불구하고 베일에 가려져 있던 낯선 기업들이어서 더 그러했는지도 모른다. 형제간에 돌림자를 쓰듯 하나같이 ‘성(星)’자를 사명에 담고 있는 고 구본무 회장의 외갓집 ‘오성(午星)’· ‘성철(星鐵)’·‘코멧(COMET)’ 등 이른바 ‘3성(星)’ 그룹은 조용히 LG의 울타리를 벗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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