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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애플 CEO 승계가 증명한 ‘거버넌스 설계’의 힘
한국경제 | 2026-04-23 10:36:23
팀 쿡이 애플 CEO직에서 물러난다고 지난 4월 20일 발표했다. 시가총액 4조 달
러, 세계 최고 가치 기업의 수장이 바뀌는 대전환이다. 화제성은 폭발적이었으
나 시장의 반응은 차분했다. 주가는 시간 외 거래에서 소폭 하락하는 데 그쳤다
. 세계 최대 기업의 리더십 교체치고는 이례적인 평온함이었다. 이 ‘주가
의 평온’은 우연이 아니다. 29년에 걸쳐 정교하게 설계된 거버넌스의 산
물이다.


후임자 존 터너스는 외부 영입이 아니다. 2001년 입사 후 25년간 애플 하드웨어
의 진화를 이끌어온 엔지니어다. 2021년 하드웨어 엔지니어링 수석부사장으로
승진했고, 2025년 말에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디자인팀 전체의 감독권을 넘
겨받았다. 블룸버그는 이를 ‘사실상의 후계자 확정 신호’로 보도했
다. 시장은 이미 알고 있었다. 4월 20일은 발표가 아니라 확인이었다.


이 과정에서 애플 이사회의 역할은 결정적이었다. 애플 이사회는 8명 중 팀 쿡
을 제외한 7명이 독립이사다. 승계 안건은 정기 이사회 때마다 상시 논의됐다고
프록시 스테이트먼트에 명시되어 있다. ‘이사회의 만장일치 승인(unani
mously approved)’이라는 문구는 그 어떤 IR 자료보다 강력한 신뢰의 언
어로 작용했다.


전환의 설계도 치밀하다. 발표와 취임 사이 4개월의 오버랩 기간을 뒀다. 팀 쿡
은 8월 31일까지 CEO로 남고, 퇴임 후에는 경영이사회 의장(Executive Chairma
n)으로서 글로벌 정책 당국과의 관계를 전담한다. 지정학적 리스크가 고조되는
시기에 쿡의 외교적 자산을 ‘실질적 기능’으로 재배치한 것이다.
15년간 이사회 의장을 맡아온 아트 레빈슨은 수석독립이사(Lead Independent
Director)로 전환한다. 두 명의 전직 리더가 각자 명확한 역할을 갖고 공식 감
독 구조에 남는 것이다. 존 터너스가 비운 하드웨어 수장 자리는 두 명의 내부
임원이 즉시 분할 승계했다. 단순한 공백 메우기가 아니라 치밀하게 계산된 연
쇄적 리더십 이전이다.


이 설계의 뿌리는 199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스티브 잡스는 복귀 직후 제품
라인업보다 이사회부터 재편했다. 분열된 이사회로는 혁신을 지속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당시 구축된 이사회 구조는 잡스-쿡, 쿡-터너스로 이어지는 두
번의 성공적 승계를 뒷받침하는 뼈대가 됐다. ‘누가 경영하느냐’
보다 ‘누가 감독하느냐’를 먼저 설계한 결과다.


한국 기업들에게 CEO 승계는 여전히 불확실성의 도화선이다. 준비 과정, 발표,
전환 기간 등 많은 부분이 애플과 상반되어 있다. 이사회가 승계를 상시 의제
로 다루거나 후보군을 장기 육성하는 시스템도 드물다. 결과적으로 시장은 CEO
교체를 ‘시스템의 진화’가 아닌 ‘개별적 리스크’로
인식한다.


애플의 승계 사례에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인물이 아닌 구조다. 4개월의 오버랩
은 단순한 배려가 아니라 시장이 리스크를 소화할 시간을 벌어주는 정교한 장치
다. 전임자의 역할 재설계는 권력의 유지가 아닌 조직 안정화를 위한 완충장치
다. 거버넌스는 위기가 터진 뒤의 방어가 아니라 위기 자체가 발생하지 않도록
만드는 선제적 설계다. 그리고 그 설계의 가치는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시장에
전달될 때 비로소 완성된다. 4월 20일 애플이 보여준 주가의 평온은 수년간 쌓
아온 구조적 신뢰가 자본시장에서 어떻게 가치로 환산되는지를 증명하고 있다.



글: 양왕 와이즈파트너즈 공동 창립 파트너
정리: 김성혜 한경닷컴 기자 shkimm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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