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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가 있는 노래] 청산리 벽계수야 - 임선혜 ⑩
프라임경제 | 2025-12-02 10:18:51
[프라임경제] 황진이가 가는 척 하려던 벽계수를 詩 한 수로 잡는다.

청산리 벽계수야 수이 감을 자랑마라
일도 창해하면 다시오기 어려우니
명월이 만공산할 때 쉬어간들 어떠리!

벽계수 뒹굴다

서유영(1801~1874)의 금계필담에 전해오는 얘기다. 송도 기생 황진이의 미모와 기예가 뛰어나다는 얘기를 들은 왕실 종친 벽계수 (호. 본명,이종숙(1508~). 세종의 서자인 영해군의 손자)가 황진이를 만나기 위해 그녀를 잘 아는 손곡 이달(1539~1612)을 찾았다.

이달은 벽계수에게 황진이는 풍류명사가 아니면 만나기 어려우니 거문고와 시 한수를 준비하라며, "그대가 황진이를 만나려면 내 말 대로 해야 하는데 따를 수 있겠는가"라고 물었고, 벽계수는 당연히 그렇게 하겠다고 답했다.

이달은 "그대가 하인으로 하여금 거문고를 들게 하고 황진이의 집 근처 누각에 올라 술을 마시며 거문고를 타고 있으면 황진이가 근처로 올 것이오. 그때 본체만체하고 일어나 재빨리 말을 타고 가면 황진이가 뒤를 따를 것이니, 취적교를 지날 때까지 뒤를 돌아보지 않으면 일은 성공한 것이오" 라고 일러 주었다.

벽계수가 그의 말을 따라 작은 나귀를 타고 소동(小童)으로 하여금 거문고를 들게 하여 누각에 올라 거문고를 타고 내려가니, 말 그대로 황진이가 뒤를 쫓았다. 취적교에 이르렀을 때 황진이가 소동에게 그가 누구인지를 묻고 뒤에서 시 한수를 읊었다.

청산리고개를 넘어가는 벽계수야 그렇게 쉽게 가는 걸 잘난 체 마라/
바다의 파도(일도창해)도 한 번 가면 다시 오기 어렵지 않느냐/
명월(황진이의 기생방이름)이 만공산(滿空山, 젊디 젊으니)하니 쉬어 가는 게 어떻겠는가.

황진이가 읊는 시조를 들은 벽계수가 감탄한 나머지 그냥 갈 수가 없어 뒤를 돌아보다, 그만 나귀에서 떨어져 바닥으로 뒹글고 말았다. 그 광경을 본 황진이는 깔깔깔 웃으며 "이 사람은 명사가 아니라 단지 풍류랑일 뿐"이라며 홀연히 가버렸다. 벽계수가 한없이 부끄럽고 한스러워 했다는 얘기다.

하버드대 교수도 읊은 벽계수야

이 시조는 2025년 10월말, 건국대에서 있었던 세계 시 엑스포에 참석한 미국 하바드대 명예교수인 데이비드 매캔 교수가 음율을 따라 낭송을 한 후 놀라운 시(amazing poem)라고 말하자 관객석에서 환호와 박수가 터졌다고 한다.

황진이는 기생으로 조선시대 가장 낮은 계급의 신분이었다. 이렇게 낮은 신분의 사람이 어찌하여 왕실 종친을 능욕하고, 당대 최고의 스승 서화담의 제자가 되었으며, 소쇄양 대제학과 30일을 살고, 천마산에서 10년을 면벽수행해 생불이라 불리던 지족선사를 파괴시켜 십년공부 도로아미타불이란 유행어를 만들어 내는 스캔들의 주인공이 되었을까.

오늘날에 와서는 전례없이 많은 영화, 뮤지컬, 드라마, 연극 등으로 과거사 인물 중 가장 유명한 셀럽이 되었을까.

또한 남존여비의 풍습을 도발하고, 이사종(1543~1634)과의 계약 연애로 시대 문화를 온전히 무시했으며, 인간 본성에 기반한 자유연애주자였고. 한학을 비롯 서기예에 능통한 삶을 산 유일한 여성자유 행동가란 칭송을 들을 수 있었을까.

스캔들 최고의 셀럽

그녀가 남긴 대표적인 시조들을 통해 그녀의 생각과 재주, 그리고 삶의 뒷단을 살펴보자.

당대 가장 노래를 잘 불렀다는 명창 이사종, 지금으로 치면 가수 나훈아 정도의 위상을 가졌다. 그와는 3년씩만 각각의 집에서 살기로 하고 그가 출장을 나가 보고플 때 이런 시조를 지었다고 한다.

동짓달 기나긴 밤에 한 허리를 베어 내어
춘풍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님오시는 밤에 굽이굽이 펴리라!

지족선사는 10년을 면벽으로 수양했으나 황진이에게 지조를 꺾였다. 화담(본명 서경덕,1489~1546)은 "여러 해를 가깝게 지냈으나 끝내 흐트러지지 않았으니 참으로 성인답다" 라며 이런 시를 썼다. 머리로는 멀리하였으나 가슴은 황진이를 품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화담의 시조 한 수도 같이보자.

내 언제 무신(無信)하여 임을 속였기에
월침삼경(月沈三更)에도 올 뜻이 전혀없네
추풍에 지는 잎 소리야 낸들 어이 하리오! (황진이)

마음이 어린 후이니 하는 일이 다 어리다
만중운산(萬重雲山)에 어느 님 오리오 마는
지는 잎 부는 바람에 행여 그 인가 하노라! (화담)

죽어도 그리는 이, 그 누구!

만나고 헤어지고 많은 남정내들과 사랑과 이별을 경험한 황진이. 풍류명사들과의 작별에 항상 자존심과 연정이 곁들려 자탄과 후회도 많았으리라. 그럴 때 낭송한 시조다.

어져 내 일이야 그릴 줄을 몰랐더냐
이시라 하면 가랴마는 제 구테야
보내고 그리는 정은 나도 몰라 하노라!

기생으로 평생을 살면서 사내는 사랑만 남기고, 또 그리움만 심어놓고 가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은 시도 있다. 기방의 경험을 철학적으로 발전시켜 인생무상이라는 보편적인 주제를 담은 시다.

산은 옛산이로되 물은 옛 물이 아니로다
주야로 흐르는데 옛 물이 있겠는가
인걸(人傑)도 물과 같아 가고는 오지 않더라!

황진이가 죽은 지 얼마되지 않아 성격이 호방하고 서예에 능통한 한 사람이 태어난다. 임제(본명 임백호, 1549~1587), 그가 서도병마사로 임명되어 부임길에 황진이의 무덤에서 시 한 편을 짖는다. 그러나 한 나라의 관리가 일개 기생의 무덤앞에서 슬퍼하며 지은 이 시조 때문에 부임 전에 왕 선조에게 파직 당하는 일도 있었다.

그는 죽을 때 유언으로 "모든 나라가 황제를 스스로 칭하는데, 유독 우리만 못하구 있구나! 그런 나라에 산 내가 죽는데 무슨 곡을 하겠냐"며, 눈물 흘리지 말고 곡소리도 내지 말라 했다고 하니, 그의 호방함을 알 수 있겠다.

청초 우거진 골에 자난다 누웠난다
홍안은 어디 두고 백골만 묻혔는가
잔 잡아 권할 이 없으니 그걸 슬퍼하노라

우리 조상들이 남긴 문학, 즉 고전문학이 남녀의 이야기로 꾸며지면 더더욱 흥미롭다. 그 당시 그 분들의 삶이 엿보이고, 정서와 감정의 뒷단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역사는 평면을 보여준다고 한다. 그러나 문학은 과거 그들의 삶을 입체적으로, 또 공간적으로 많은 감성과 상상거리를 안겨 준다 해도 과언이 아니기에 보존적 의미와 가치가 항존한다 하겠다.

이상철 위드컨설팅 회장/칼럼니스트·시인·대지문학동인/ 한국HR서비스산업협회 회장(前)/국회 환노위 정책자문위원/ 국회의원 보좌관(대구)/ 쌍용그룹 홍보실 근무


이상철 위드컨설팅 회장 press@newsprime.co.kr <저작권자(c)프라임경제(www.newsprime.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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