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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정부가 해야 할 일, 하지 말아야 할 일
한국경제 | 2017-05-26 06:57:00
취임 보름여를 맞은 문재인 대통령이 국정과제 수행에 강한 의욕을 보이고 있다
. 취임하자마자 업무지시 1호로 일자리위원회 구성을 지시한 데 이어 국정교과
서 폐지, 석탄화력발전소 가동 중단, 4대강 사업 정책감사 등 선거 공약을 중심
으로 굵직한 현안을 직접 챙기는 모습이다.

문 대통령의 ‘업무지시’에 대해서는 야권을 중심으로 비판적인 시
각도 없지 않다. 형식이나 절차가 법적 근거가 없거나 관련법을 위반했다고 볼
수 있는 것도 섞여 있다는 것이다. 청와대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판
단되는 국정 현안에 대해서 국민 눈에 쏙쏙 들어오게 전달하려는 의미”라
며 정부 진용이 갖춰지면 업무지시도 줄어들 것이라고 설명한다. 야권의 지적에
도 일리는 있다. 다만 집권 초기라는 점을 감안하면 청와대 측 입장 역시 수긍
할 수 있는 측면도 없지 않다.

형식이나 절차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따로 있다. 어떤 내용의 국정을 펼치느냐
하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집권 초기 밀어붙이고 있는 정책 중에는 의욕 과
잉 논란을 빚는 것들이 적지 않다. 새 정부가 최우선 과제로 설정한 일자리 정
책이 대표적 예다. 문 대통령은 대선 공약대로 그제 집무실에 ‘일자리 상
황판’을 설치했다. 공기업은 물론 민간 기업들의 일자리 현황도 포함시켰
다. 문 대통령은 “재벌 그룹의 일자리 동향을 기업별로 파악할 수 있게
하고 비정규직을 많이 사용하는 기업들의 추이가 드러나게끔 했다”고 밝
혔다. 공공부문에서도 비정규직이 많은 분야는 비정규직이 어떻게 개선되는지를
월 단위로 파악할 수 있다고 한다.

일자리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대통령이 집무실에 직접 상
황판을 설치한 데서 절박함이 느껴진다. 그러나 ‘비정규직 제로(0)&rsqu
o;를 선언한 대통령이 매일 일자리 상황판을 챙기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걱정하
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공무원들이 상황판 속 일자리 지표의 숫자에 매달려 큰
흐름을 놓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고용노동부가 어제 업무보고에서
“비정규직 비중이 높은 민간 기업의 정부 조달사업 참여를 제한하겠다&r
dquo;고 밝힌 것만 봐도 그렇다. 압박을 느낀 기업들이 일자리의 질적 향상보다
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비정규직 숫자 줄이기에 내몰릴 공산이 크다.

군사작전을 방불케 하는 이런 비정규직 해법은 결국 ‘고용 할당제&rsquo
;처럼 운영될 수밖에 없다. 대기업이나 공공기관이 비정규직을 반(半)강제적으
로 떠안는 식이다. 사실상의 고용 할당제가 ‘반짝 일자리’는 몰라
도 장기적으로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어낼 것으로 믿는 사람은 아마도 거의 없을
것이다. 김영배 한국경영자총협회 부회장이 “현 정부의 비정규직 정책은
결과적으로 중소기업 몰락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경고한 것도 그런
맥락이다.

문 대통령은 ‘일자리가 마련된 성장동력이 넘치는 대한민국’을 경
제 공약으로 내걸고 당선됐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부가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명확하게 구분하는 게 중요하다. 경제민주화와 분배의 요구가 그 어느 때
보다 빗발치는 요즘이다. 하지만 기업의 자율과 시장경제의 근간을 흔드는 정책
은 일자리 창출은 물론 지속가능 성장도 어렵게 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
다. 좋은 일자리는 일자리 상황판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기업이 만든다. 정부가
할 일은 기업이 활발한 투자를 통해 일자리를 만들 수 있도록, 규제를 풀어 기
업하기 좋은 여건을 조성하는 것이다. 대통령 집무실에서 일자리 상황판보다 규
제 상황판을 보고 싶은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새 정부는 사회적 기업을 집중 육성한다는 계획도 내놨다. 벤처기업인증위원회
를 설치해 벤처 인증을 맡게 하겠다고도 한다. 모두 시장 자율보다는 정부 개입
을 늘리겠다는 것이다.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취임 9일 만에 노조와 1 대 1
면담에 나섰다. 노동 유연성을 높이는 노동개혁을 통해 일자리를 늘리기 위해서
라고 한다. 한국과 프랑스 새 정부의 행보를 보면서 정부가 해야 할 일과 해서
는 안 될 일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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