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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 칼럼] 손기정과 남승룡
한국경제 | 2017-05-27 00:10:12
1936년 8월9일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결승선. 숨죽인 12만 관중 앞에 깡마른 동
양 선수가 나타났다. 일본 식민지 조선의 손기정(孫基禎)이었다. 2시간29분19초
로 ‘마(魔)의 2시간30분대’를 깬 신기록. 뒤이어 미국의 하퍼와 또
다른 조선인 남승룡(南昇龍)이 들어왔다. 우리나라 최초의 올림픽 금·
동메달리스트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두 선수의 표정은 어두웠다. 시상대에서도 내내 고개를 떨궜다. 일장기
가 오르고 일본 국가가 연주되자 손기정은 월계수 화분으로 가슴의 일장기를 가
렸다. 월계수조차 없는 남승룡은 눈을 감아 버렸다. 그는 나중에 “히틀러
가 손기정에게 준 월계수가 부러웠다”고 했다. 그것으로 일장기를 가릴
수 있었으니까.

이들의 눈물겨운 쾌거는 일제하의 우리 국민에게 민족적 자부심을 일깨워줬다.
‘상록수’의 작가 심훈은 감격해서 신문 호외 뒷면에 ‘오오
, 조선의 남아여!’라는 즉흥시를 썼다. ‘오오, 나는 외치고 싶다!
/ 마이크를 쥐고 전 세계의 인류를 향해서 외치고 싶다!/ “인제도 인제도
너희들은 우리를 약한 족속이라고 부를 터이냐!”’

두 청년은 1912년생 동갑내기에 양정고 동문이다. 1년 후배인 손기정은 평북 신
의주에서 태어나 보통학교를 마친 뒤 중국 단둥(丹東)의 회사에 취직했다. 차비
가 없어서 압록강 철교를 건너 20여 리 길을 매일 마라톤으로 출퇴근하던 소년
. 스케이트 선수가 되고 싶었지만 가난해서 달리기밖에는 할 게 없었다고 한다
. 보통학교 졸업반 때 어른들을 제치고 우승한 뒤로 13차례 마라톤에서 10번이
나 1위를 차지했다. 광복 후에도 1950년 보스턴 마라톤 감독으로 참가해 우리
선수들을 1·2·3위에 올리며 화제를 모았다.

남승룡은 전남 순천 태생으로 친척 형이 운동회에서 일본 학생을 꺾는 모습에
반해 달리기를 시작했다. 마라톤에 일생을 걸기로 마음먹은 것은 보통학교 6학
년 때 2위에 입상한 뒤부터다. 양정고 재학 중 하루 80~100㎞씩 닷새를 달려 고
향에 간 적도 있다. 올림픽 대표 선발전에서 1위로 뽑혔으나 동메달에 그친 이
후에도 달리기를 멈추지 않았다. 35세 때 보스턴 마라톤에 후배 서윤복 선수의
페이스 메이커로 나서 그에게 금메달을 안겨주고 자신도 10위에 올랐다.

서울시가 중구 만리동 옛 양정고 자리의 손기정체육공원을 리모델링해 두 선수
를 함께 기리기로 했다. 선의의 경쟁자이자 훌륭한 조력자였던 ‘비운의
2인자’를 재조명하려는 의미라니 더욱 반갑다. 1등만 기억하는 시대, 우
리 주변의 숨은 ‘팀워크 영웅’들에게도 박수를 보내고 싶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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