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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영식의 논점과 관점] 남북 정상회담 조급증
한국경제 | 2017-06-28 01:10:16
산 정상을 뜻하는 ‘서밋(summit)’을 ‘정상회담’이란
외교 용어로 처음 사용한 사람은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총리다. 1950년 소련의
스탈린에게 회담을 제의할 때였다. 암울한 냉전 상황을 타파하기 위해 ‘
최후 담판’을 짓자는 의도에서 그런 말을 썼다는 게 정설이다.

‘서밋’이란 단어엔 긴박감이 묻어난다.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곳
에서 정상들은 나라의 운명을 걸어야 한다. 그 결과가 정상들을 나락으로 떨어
뜨릴 수 있으나, 결정적인 전환점이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많은
지도자가 ‘정상회담 리스크’를 감수하려는 이유다.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들이 남북 정상회담을 희망한 것도 이런 차원일 것이다.
잘하면 남북통일의 기초를 닦은 위대한 대통령으로 남을 수 있다. 김대중&midd
ot;노무현 전 대통령은 평양 땅을 밟았고, 김영삼·이명박 전 대통령은
시도했으나 수포로 돌아갔다. 문재인 대통령도 최근 남북 정상회담에 대한 의지
를 여러 차례 드러냈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 후보자도 “필요하다면 남북
정상회담을 추진해 나갈 수 있다”고 밝혔다.

남한에 "돈 내라" 청구서 내밀어

관건은 북한을 믿을 수 있느냐다. 북한이 배신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김대
중 전 대통령은 2000년 6월 정상회담 뒤 “이제 한반도에 전쟁은 없다&rd
quo;고 단언했다. 2년도 안 돼 북한은 연평도 앞바다에서 도발을 감행한 데 이
어 2차 북핵 위기를 일으켰다. 노 전 대통령은 2007년 10월 김정일과 회담했지
만 돌아온 것은 북한의 핵 실험과 탄도미사일 시험발사였다. 1994년 제네바 합
의, 2005년 9·19 비핵화 공동성명 때 북한은 핵 동결 선언을 해놓고 파
기했다.

북한은 지금 와서 6·15와 10·4 선언을 지키라고 남측에 요구하고
있다. 그 의도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정상회담 결과로 나온 두 선언문엔 개
성공단을 비롯한 남북 경협 사업이 빼곡하게 목록에 올라 있다. 전부 남측이 돈
을 대야 하는 사업이다. 북한이 이 두 선언 이행을 촉구하는 것은 청구서를 들
이미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러면서도 “핵은 협상 대상이 아니다”고 못을 박았다. 핵은 미국
과 협상 대상이라는 점을 명확히 한 것이다. 핵 개발에 성공하고 미사일 위협
수위를 한껏 끌어올려 판돈을 키운 뒤 미국과 마주 앉아 많이 받아내겠다는 속
셈이다. 미국과 평화협정을 맺어 체제 보장을 약속받고, 궁극적으로 주한미군을
철수시키고 한·미 동맹을 파기하는 게 북한의 목표다. 남측으로부터는
챙길 것만 챙기겠다는 것이다. 평화를 거래의 관점에서 봐 온 그들의 일관된
수법이다.

핵포기 의사 전혀 없는 북한

이런데도 남측이 남북 정상회담에 매달리는 모습을 보이는 게 타당한가라는 의
문이 나올 수밖에 없다. 물론 북한과 대화는 해야 한다. 다만 때가 있는 법이다
. 남북 문제는 남북한만의 문제가 아니다. 남북한이 합의한다고 해서 평화가 쉽
게 찾아오지 않는다. 좋든 싫든 동맹국 미국과 호흡을 맞춰 나가야 하는 게 냉
엄한 현실이다.

한·미 새 정부는 아직 대북정책 그림을 다 그리지 않았고, 정상회담도
앞두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의 패만 자꾸 내보이는 것은 협상 측면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남북 정상회담에 대한 환상은 버려야 한다. 지난 두 차례 정
상회담에선 핵 문제가 빠졌고, 결과적으로 만남을 위한 만남에 그쳤다. 정상회
담이 이뤄지려면 무엇보다 핵·미사일에 대한 북한의 태도 변화가 전제돼
야 한다. 북한이 핵·미사일을 포기할 의사가 전혀 없고, 국제사회가 제
재에 온 힘을 기울이는데 우리만 조급해 보이는 것 같다.

홍영식 논설위원 ysho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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