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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뱅크 보고서 "사전검열" 미스터리
프라임경제 | 2017-08-20 14:11:33

[프라임경제] 유명업체의 마케팅리서치 계열사인 A사는 지난 10일 카카오뱅크 이용자 현황 분석보고서를 냈지만 발표 세 시간여 만에 폐기해야 했다.

회사가 작성한 금융소비자리포트에는 카카오뱅크 설치건수부터 주요 고객층의 연령 및 성별, 월수입 등 관련 통계가 다섯 페이지 분량으로 실렸다. 발단은 카카오뱅크 이용자의 기존 주거래은행을 언급한 대목이었다.

◆주거래은행 실명 직접 공개한 죄?

주요은행의 모바일앱과 카카오뱅크를 비교 분석한 것으로 은행들의 실명이 드러나 있다. 이를 반대로 해석하면 카카오뱅크에 가장 많은 주거래고객을 '뺏긴' 은행이 어디인지 짐작할 수 있는 탓에 은행들로서는 불편한 통계다.

회사 측은 은행들이 카카오뱅크와의 직접적인 비교에 극도로 예민한 반응을 보여 부득이하게 게시를 철회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조사 방식은 문제없었지만 은행들의 항의가 빗발치는 통에 다 만든 보고서를 '없던 셈' 쳤다는 얘기다.

A사 관계자는 "과거에도 은행별 모바일앱을 비교한 자료를 발간한 적이 있는데 유독 올해 더 민감한 반응을 보인 게 사실"이라며 "앞으로는 시장점유율 같은 예민한 지표는 자제하고 더 의미 있는 방향으로 리서치를 계속 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흥미로운 것은 시중 주요은행들 중에서 A사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곳이 단 한 곳도 없다는 것이다.

주요은행들은 하나같이 해당 보고서의 존재조차 몰랐거나, A사에 항의나 의견을 전한 적도 없다며 손사래를 쳤다. 아예 리서치업체의 설명이 잘못된 게 아니냐고 되묻거나 '우리는 아닌데 다른 은행에서 벌인 일인가 했다'는 반응도 나왔다.

카카오뱅크 지분 10%를 보유하고 있는 KB국민은행의 경우 '이런 자료가 나왔구나' 정도로 넘겼을 뿐이라고 밝혔다.

은행 관계자는 "우리도 주주로 참여했는데 부정적이거나 심각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없지 않느냐"며 "카카오뱅크도 하나의 경쟁 사업자이고 지분도 일부 갖고 있으니 직원들마다 파악하는 차원에서 직접 계좌를 개설한 적은 있지만 다른 업체를 언급하거나 압박한 적은 없다"고 말했다.

케이뱅크 대주주(10%)인 우리은행은 비교대상이 된 것조차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처음부터 모바일 풀뱅킹(카드론, 채권 등 투자상품까지 취급하는 은행)으로 탄생한 카카오뱅크와는 주력사업이 겹치지 않는데다 무엇보다 체급에서 차이가 난다는 얘기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카카오뱅크가 내세우는 장점은 극히 제한적인 몇 가지로 한정돼 있는데 우리와 비교대상이 될 수 없다"며 "보고서 한 건에 그렇게 격렬하게 반응할 이유도 없고 관심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

신한은행과 NH농협은행 역시 압박설을 강하게 부인했다. 비슷한 이야기가 돌기에 내부적으로 확인했지만 전혀 근거가 없는 얘기라는 것이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시중은행이 도대체 어디냐"라고 되물으면서 "이야기가 돌기에 내부적으로 계속 확인은 했는데 전혀 아는 사람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NH농협은행 측 역시 "관련이 있어 보이는 부서마다 확인했지만 정말 모르는 얘기"라며 "인터넷전문은행들도 하나의 사업자이고 공생하는 관계인데 제삼자를 압박하면서까지 대응해야 할 이유가 없다"고 손을 저었다.

즉 리서치업체는 쏟아지는 항의를 받았고, 보고서를 폐기했다고 주장한 반면, 원인을 제공한 주체는 존재조차 불분명한 셈이다.

◆"주어는 없지만…" 갑의 영향력이 정보왜곡으로?

그러나 업계에서는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상황으로 보는 분위기다. 카카오뱅크를 견제하려는 시중은행들이 평판관리 차원에서 벌어진 소동이지만 대놓고 말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무엇보다 A사가 마땅한 해명 없이 공개했던 리포트를 서둘러 폐기한 것은 사업상 '갑(甲)'인 은행권의 비위를 맞춘 것이라는 뒷말이 적지 않다.

2015년 은행법 개정 이후 지난 4월 케이뱅크은행(케이뱅크)에 이어 지난달 출범한 카카오뱅크는 '찻잔 속 돌풍' 이상의 실적을 쌓고 있다. 기존 은행권을 위협할 정도로 국내 인터넷전문은행들은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급성장세를 보였다.

그중에서도 카카오뱅크는 다음 달 유상증자를 앞두고 지난 11일 기준 신규계좌 228만개를 확보했다. 8월 들어서는 6000억원 가까이 대출실적을 늘려 19개 시중은행 중 1위에 올랐다.

이런 상황에서 기존 은행들이 시장영향력을 이용해 사실상 자료·여론검열을 한 정황이 포착된 것은 문제의 소지가 크다. 특히 문재인 정부가 금융소비자보호를 강조하고 있고, 피해 원인으로 정보의 비대칭성을 꼽았다는 점에서다.

만약 시장을 주도해온 주요 금융사들이 소비자에게 제공될 정보를 필요에 따라 가공하거나 없애버린 것이 사실이라면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이기욱 금융소비자연맹 사무국장은 "인터넷전문은행 출범으로 소비자들의 금융비용 부담이 줄어드는 것은 물론 자연스러운 시장경쟁구도가 구축되는 분위기"라며 "어떤 산업이든 소비자가 얼마나 풍부한 정보를 투명하게 접할 수 있는지가 피해예방의 핵심인데, 상위 사업자에 의한 정보왜곡은 명백한 소비자 권리 침해"라고 꼬집었다.

이수영 기자 lsy@newsprime.co.kr <저작권자(c)프라임경제(www.newsprime.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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