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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한국에는 닉 하나우어가 없다"
프라임경제 | 2018-07-17 16:27:45
[프라임경제] 내년도 최저임금이 10.9% 오른 8350원으로 결정됐다. 국내 최저임금 30년 역사상 처음으로 8000원대에 접어든 것이다.

이번 최저임금 인상에 노동계와 경영계, 소상공인들 모두 불만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노동계는 이번 인상률에 대해 "최저임금 1만원 실현을 위한 대통령 공약이 사실상 지켜질 수 없게 됐다"며 "매우 유감스럽고 안타까운 일"이라고 말했다.

반면 경영계는 영세·중소기업과 소상공인 보호를 위해 요구한 최저임금의 업종·기업규모별 차등 적용이 반영되지 않은 데 대해 크게 우려했다.

역사상 첫 8000원대 최저임금에 노동과 경영계가 동시에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셈이다.

최저임금 8000원대로 고심하고 있는 우리나라와 달리, 최저임금 15달러(1만7000원) 시대를 맞고 있는 도시도 있다. 미국의 시애틀은 시간당 15달러 시대를 가장 먼저 치고 나온 곳이다.

시애틀은 2014년 미국 대도시 가운데서 처음으로 시간당 15달러를 보장하는 법을 통과시켰다. 이에 따라 시애틀의 노동자들은 오는 2021년까지 15달러 이상의 최저임금을 보장받게 된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최저임금 15달러 실현을 주장한 사람이 노동계 대표 인사가 아닌, 미국의 상위 1%에 속하는 슈퍼 리치, 닉 하나우어(Nick Hanauer)라는 점이다. 스스로 1년 수입이 적게는 1000만달러에서 3000만달러에 달한다고 밝힌 그는 대저택과 자가용 비행기, 요트 같은 재산을 굳이 숨기려 들지 않는다.

그리고 그는 미국 도시 최초로 최저임금 15달러 인상 운동에 앞장 섰다. "그들이 더 많이 버는 것이 나에게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다.

즉, 닉 하나우어는 자본주의의 지속적 발전은 물론 끊임없는 부의 재창출을 위해 소득이 늘지 않는 불평등한 체제의 피해자들을 도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그의 최저임금 15달러 주장은 기업이 당연히 지급해야 할 비용이라는 점을 전제로 했다. 최저임금으로 인해 늘어나는 인건비 부담을 대기업이 감당함으로써 소득의 균형을 맞출 수 있다는 것이다.

자영업자나 소상공인들은 인건비 부담으로 인해 제품의 가격인상이 불가피하겠지만, 적절한 수준의 소득을 손에 쥐게 된다면 상승한 물가에도 충분히 대응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그러나 국내의 경우 상황이 다르다. 슈퍼 리치 '닉 하나우어'와 같은 생각을 하는 국내 재벌이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국내 재벌들은 최저임금 인상 이슈가 있을 때마다 숨을 죽이고 상황을 관망한다. 근로자의 불만, 소상공인의 불만을 정부가 나서서 해결 하길 기다리면서.

결국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부담은 자금줄을 쥐고 있는 대기업이 아닌 소상공인들에게 돌아가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시 마지못해 대기업들은 소상공인들을 위한 지원방안을 마련하고 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닌 당장 이들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함에 그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편의점가맹점주들이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한 피해가 가장 우려되고 있다. 높은 임대료, 가맹 수수료, 카드 수수료 등 본사와 건물주에 납부해야 하는 고정비가 너무나도 크기 때문이다.

근본적인 문제가 최저임금 10% 인상이 아니라는 점은 모두 알고 있다. 이들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것이 높은 임대료와 수수료가 그 원인이라는 점도.

높은 가맹 수수료를 받고 있는 본사(대기업)가 수수료를 절반으로만 낮춰도, 월 임대료가 조금 떨어지기만 해도, 최저임금 논란은 줄어들 것이다. 대기업이 최저임금 인상과 관련해 소상공인과 상생할 수 있는 가장 쉽고 효과적인 방법이기도 하다.

노동계가 최근의 최저임금 논쟁의 본질이 왜곡돼 있다고 지적한 것이 바로 이러한 이유다.

한국노총은 "최저임금 협상에서 우리 사회의 실질적 갑이라 할 수 있는 대기업들은 비켜있다. 최저임금 문제를 편의점주와 최저임금 노동자 간 갈등구조로 모는 것은 본질을 왜곡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의 반발이 거세지자 정부는 내년에도 3조원 규모의 일자리안정 자금을 집행한다는 계획이다. 기업이 아닌, 정부가 국민의 세금으로 보완하겠다는 의미다.

국내에 닉 하나우어는 없다. 최저임금 인상에 나서는 재벌이 없다는 것은 향후에도 최저임금과 관련된 근본적 해결책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근로자의 생활안정과 노동력의 질적향상을 꾀함으로써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에 이바지하게 함을 목적으로 한다"는 최저임금 취지에 동의한다.

건물 몇 채로 고리의 임대 수수료에 수입을 의존해 살아가는 사람들보다, 높은 수수료를 받아 세를 확장하는 본사보다, 열심히 땀 흘려 일한 노동자들이 잘 사는 사회가 바람직하다.

정부가 이러한 취지에 의해 최저임금 인상을 추진한다면 먼저 기업의 지갑을 열게끔 해야 한다.

기업의 보따리를 풀지 못한다면, 정부가 최저임금 인상을 추진하는 이유는 무색해진다.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의 몰락이 "모든 사람이 사람다운 삶을 영위해야 한다"는 최저임금의 처음의 취지를 깨트리는 결과를 가져올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추민선 기자 cms@newsprime.co.kr <저작권자(c)프라임경제(www.newsprime.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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