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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임희순의 노닥노답(9) - 2020년 봄, 진달래꽃
프라임경제 | 2020-04-03 17:34:36

[프라임경제] 갑자기 오한이 나며 고열이 40도를 넘나들고 의식을 잃은 지 24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사망한다. 중국에서 시작된 이 병은 유럽으로 건너가 이탈리아를 시작으로 왕래가 잦은 인근 유럽국가로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간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코로나19 얘기가 아니다. 바로 1340년대 유럽을 휩쓴 '페스트(흑사병)'의 얘기이다.

중국 발생설은 최근 유전자 분석으로 제시된 가정이니 지금의 상황과 다를 수 있겠지만, 이렇게 중국을 거쳐 이탈리아의 시칠리아 섬으로부터 급속히 확산된 전염병 '페스트'는 3년 여간 유럽 전역을 휩쓸며 당시 유럽 인구의 5분의 1이 넘는 2000만명이 넘는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하고서야 차츰 사라져갔다.

세상을 삼킬 듯 하던 페스트의 기세는 유럽의 몇몇 도시에서 발생한 대화재로 인한 도시 재건설 과정 중에 차츰 사라져버리게 되었는데, 그 원인이 하수구 등의 도시 기반 시설의 재건축으로 인한 위생 시설 개선에 있었다고 하니 너무 당연한 인과(因果)에 조금은 허무하다는 생각이 든다.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필자도 지난 설 이후 급격히 퍼지기 시작한 코로나19 사태로 근 3개월 가까이 경험해 보지 못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아침 출근길에 필수 지참물이 되어버린 마스크는 하루 일과의 주요 시점(회의, 식사 등)마다 쓰고 벗고를 반복하다 보니 시간을 알려주는 시침 노릇을 하고 있고 빼곡한 엘리베이터안은 마스크를 씌운 마네킹들을 세워놓은 듯 고요하다.

모든 뉴스는 특집 방송이 되어버린 지 오래고 TV화면 하단에 불쑥 나타나는 속보 자막이 더 이상 낯설지가 않다.

하지만, 역사는 진보(進步)했다. 아이러니하게도 페스트 덕에 중세 봉건주의는 급속히 몰락하고 교회의 권위는 무너졌으며 인간이 중시되는 르네상스 시대가 탄생하였다. 조반니 보카치오(Giovanni Boccaaccio)의 '데카메론(Decarmeron)'과 같은 명작도 탄생하였다.

지금의 코로나19 사태가 지나고 나면 이 세상은 또 한걸음 진보(進步)할 게다. 그 무엇이 되었든 후퇴(後退)한다는 가정은 하지 말자. 사람이나 집단, 특정 지역이나 국가를 비난하고 미워하지 말자.

알베르트 카뮈는 소설 '페스트'의 주인공인 의사 리유의 입을 빌어 "재앙 중에 배운 것은 인간에겐 경멸해야 할 것보다 찬양해야 할 것이 더 많다"라고 말하지 않는가. 언제가 되었든 인류는 이 어려움에 지지 않고 극복해 나갈 것이고 진보(進步)할 것이다.

밤바람에 실려 / 서쪽바다로 / 떠난 하얀 구름이
봄비가 되어 / 아침 창을 두드린다.
창문을 여니 / 아직 가난한 / 이른 햇봄의 아침 뜨락에
연분홍 편지가 / 가지런히 놓여 있다.

사업가이자 시인(詩人)인 지인의 '진달래꽃'이라는 시(詩)의 일부이다.
봄이다. 봄이라는 단어가 이렇게나 낯설었던 적이 있었을까 싶다. 하지만 봄은 왔다.

3월을 지내고, 4월이 되었는데도 시인(詩人)의 말처럼 아직 가난한 이른 햇봄인 듯 낯설기는 하지만, 봄은 이미 와있다. 시(詩)는 이어진다.

나 보기가 / 역겨워 가실 때에는 / 말없이 고이 보내드리오리다.
사랑이 / 기쁨으로 넘칠 때 / 처음으로 / 이별을 예감했다.
그 마음에 / 진달래꽃이 피었다.
말없이 / 고이 보내겠다고,
바보같이 / 눈물 흘리지 않으리라고
추억이 흐르고 / 계절은 다시 돌아와
아침 뜨락에 / 꽃봉오리가 여물고
가슴엔 / 연분홍 꽃편지가 피었다.

올 봄은 아내와 먼 발치 나무에 걸친 노란색을 보고 '산수유니 생강나무니'를 내기하지 못했다. 귀한 청벚꽃를 보러 개심사 언덕을 오르지 못한 것도 못내 아쉽다. 그리고 지천에 흐드러진 진달래꽃은 또 어찌하나.

하지만 아쉬울 것이 있겠나. 내년 봄에도 산수유, 생강나무는 노란 옷을 두르고 퍼드러질테고, 개심사 청벚꽃도 여전히 푸를게다. 그리고 진달래꽃으로 덮힌 나의 나라는 더욱 아름다울 것이다.

임희순 넥서스커뮤니티 전략기획그룹 그룹장


임희순 넥서스커뮤니티 전략기획그룹 그룹장 akbar@nexus.co.kr <저작권자(c)프라임경제(www.newsprime.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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