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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베껴" 싸움 난 방송사…트로트 열풍 찬물 끼얹을까 [연계소문]
한국경제 | 2021-01-23 08:05:03
중장년층의 전유물로만 여겨지던 트로트가 남녀노소 모두의 장르가 된 것은 더
이상 어색한 일이 아니다.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시작된 트로트 열풍은 K팝을
즐겨듣는 10~20대의 높은 장벽까지 뛰어넘었다. 연말 시상식에서 트로트 가수가
나오면 잠시 숨을 고르던 학생들이 이제는 임영웅, 영탁 등의 무대를 함께 즐
긴다. 트로트의 '세대 화합' 의미를 비로소 체감하게 되는 요즘이다.

그러나 최근 트로트를 둘러싸고 방송사 간 신경전이 펼쳐졌다. '미스트롯&
#39;, '미스터트롯'을 탄생시킨 TV조선이 MBN을 상대로 "포맷을
도용했다"며 문제를 제기한 것. MBN은 트로트를 소재로 한 '보이스퀸
', '보이스트롯'을 방송한 바 있고, 후속으로 '보이스킹'
도 선보일 예정이다. 현재는 '트롯파이터'를 방송하고 있다. 표절 논란
은 소송전으로까지 비화했다.

양측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TV조선은 "MBN이 '미스트롯'과
'미스터트롯' 포맷을 도용해 2019년 11월 '보이스퀸', 2020년
7월 '보이스트롯'을 방송했고, 현재는 '사랑의 콜센타'를 도
용한 '트롯파이터'를 방송하고 있다"면서 지난해 1월과 11월 두
차례에 걸쳐 포맷 도용에 대한 중단을 요구하는 공문을 보냈으나 시정이 이루어
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에 결국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는 입장이다.


MBN은 즉각 반박했다. 먼저 "'미스트롯'이 전 연령대의 여성 출연
자들을 대상으로 하지만 '보이스트롯'은 남녀 연예인으로 출연자를 한
정한다. 또 '사랑의 콜센타'와 유사하다고 주장하고 있는 '트롯파
이터'는 MBN이 지난해 2월 방송한 '트로트퀸' 포맷을 활용한 것으
로, '트로트퀸'은 '사랑의 콜센타'보다 두 달 먼저 방송했다&
quot;고 했다. 그러면서 '나는 자연인이다' 카드까지 꺼내들었다. 과거
TV조선이 MBN의 '나는 자연인이다'와 유사한 프로그램인 '자연애
산다'를 선보여 먼저 피해를 봤다고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포맷 베끼기'는 방송가에 뿌리 깊게 자리한 관행 중 하나다. MBN이 바
로 '나는 자연인이다'를 언급할 수 있었던 것 또한 이를 방증한다. 한
프로그램이 대중적 인기를 얻어 이른바 '대박'을 치면 방송사들은 줄
줄이 유사한 포맷의 프로그램을 론칭한다. 먹방부터 육아, 여행, 오디션 서바이
벌 등 비슷한 유형의 콘텐츠로 맞불 전략을 펼치며 시청률 싸움에서 우위를 점
하기 위한 사투를 벌였다. 트로트도 같은 맥락이었다. '미스트롯', &#
39;미스터트롯'의 성공 이후 '보이스트롯'뿐만 아니라 KBS2 '
트롯전국체전', MBC '트로트의 민족', SBS '트롯신이 떴다
9;까지 지상파 3사 전부 트로트 프로그램을 내놓았다.


방송가에서 '포맷 베끼기'를 직접적으로 문제 삼는 것은 상당히 이례적
이다. 일각에서는 '트로트 원조' 타이틀을 지키기 위한 대응일 것이라
보고 있다. 이에 TV조선은 "단순한 시청률 경쟁을 위한 원조 전쟁이 아니
라, 방송가에서 그동안 비일비재하게 일어났던 경계심 없는 마구잡이 포맷 베끼
기에 경종을 울리기 위함"이라고 밝혔다. 아직까지 저작권법으로 방송 프
로그램의 포맷 표절에 대한 기준점이 설정되어 있지 않아 표절 유무를 가리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이나, 암묵적으로 용인돼 온 문제점들을 짚어보는 좋은 시
도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다만, 안타까운 것은 이 같은 줄다리기가 트로트 장르에 대한 이미지 소모에 영
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트로트를 소재로 한 프로그램이 범람하면서
피로감을 호소하는 이들도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열성 팬덤을 기반으로 한
지지는 지속되고 있지만, 대중성은 다소 흔들리고 있다. 현재 방송 중인 프로
그램만 두고 봐도 KBS2 '트롯전국체전'은 첫회 시청률 16.5% 이상의 성
적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TV조선 '미스트롯2' 역시 최고 35.7%의 시청
률을 기록했던 '미스터트롯' 후광효과로 첫 방송을 28.6%로 기분 좋게
출발했으나 아직까지 마의 30%를 넘기지 못한 상태다. 높은 출연자 화제성을
바탕으로 분위기를 어디까지 끌어올릴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할 일이다.

TV조선은 소송을 진행하게 된 이유를 밝히며 "그동안 소멸해가는 트로트
장르를 신선, 건전하게 부활시켰고 이를 통해 어려운 시기 시청자들에게 위로와
용기를 주는 국민의 가요로 발전시켜 왔다. 이러한 때에 무분별한 짜깁기, 모
방, 저질 프로그램의 홍수로 방송콘텐츠 생태계가 교란되고 시청자의 혼란과 피
로감으로 트로트 장르의 재소멸 위기에 대한 우려가 제기됐다"고 했다.

직접적으로 '트로트 장르의 재소멸 위기'라 언급했다. 그러나 이번 갈
등 구도 또한 트로트 장르의 특성인 '화합'에는 반하는 상황이다. 결국
트로트 열풍을 불러일으킨 장본인들이 그 지속력을 단축시키는 역효과를 낼 수
있음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트로트 프로그램이 갓 시작했을 초창기에는 방송에 나
온 가수들만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면, 지난해부터는 신구 가수들이 조화를 이
루는 등 세대 간 대통합의 느낌이 강했다. 트로트는 분명 '화합'이라는
의미가 더해진 장르인데 자칫 좋은 뜻마저 퇴색되지는 않을까 우려된다"
며 "방송사 별로 대결구도가 펼쳐지면 결과적으로 가수들의 화합에도 문제
가 생길 수 있다. 2년 넘게 이어졌던 트로트 열풍을 저해하는 요소가 될 수도
있어 걱정스럽다"고 생각을 전했다.

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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