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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250명의 눈빛, 보이지 않는 힘이 만든 "APEC 2025"
프라임경제 | 2025-11-11 13:47:11
[프라임경제] 2025년 10월, 경주는 세계가 모인 도시였다. 각국 정상과 기자, 대표단이 오가며 세계 경제와 평화를 논의하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열렸다.

그 거대한 국제행사 뒤편에는 보이지 않는 또 하나의 힘, 자원봉사자들이 있었다. 전국에서 선발된 250여명 중 한 명으로 참여한 나는 관광 프로그램 운영을 지원하며 9일간 세계와 가장 가까운 곳에서 봉사했다.

나는 개인 휴가를 내고 이 봉사에 참여했다. 국제행사의 현장을 직접 체험하고 싶다는 마음 하나였다. 자원봉사 지원은 6월에 시작됐고, 전국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다. 그중에는 71세의 노교수도 계셨다. 연륜에서 우러나오는 겸손함이 몸에 배어 있었고, 그분에게서 봉사의 본질을 배웠다.

함께한 봉사자들은 나이와 배경은 달랐지만 '자발적으로' 이 자리에 왔다는 점에서 모두 같았다. 서로에 대한 태도는 언제나 긍정적이었고, 협력은 자연스러웠다.

근무 시간 외에는 함께 화폐박물관의 각국 화폐 특별 전시를 관람하며 교류했고, 비번인 날에는 경주 남산의 칠불암과 신선암을 오르며 마음을 다스렸다. 선무도의 본고장 골굴사를 찾아가 전통 수행문화를 체험하기도 했다.

자원봉사 일정은 3교대였다. 오전, 오후, 저녁 근무에 따라 각국 대표단과 기자들이 참여하는 관광 프로그램에 동승했다. 경주, 양동마을, 포항 등지에서 진행된 문화탐방과 도시투어를 돕는 일은 단순한 안내가 아니라, 한국의 문화를 직접 전하는 일이었다. 행사 전후로 각국의 시선이 머무는 곳이 바로 관광 현장이었고, 나는 그 속에서 '언어와 관광이 만나는 지점'을 몸으로 배웠다.

행사 첫날인 10월24일 금요일 저녁, 총괄 국제회의기획사(PCO) 대표와의 대화가 기억에 남는다. 그는 "행사의 품격은 자원봉사자의 눈빛에서 완성된다"고 말했다.

그날 나는 대학원 온라인 세미나 발표를 위해 저녁식사를 건너뛰었다. 자원봉사와 학업이 겹쳤지만 "시간의 밀도란 예측하고, 계획하고, 책임지는 것"이라는 내 원칙을 지키고 싶었다.

같은 날 KBS1TV 다큐온 인터뷰를 진행했고, 며칠 뒤 중국 CCTV 취재팀도 찾아왔다. 나는 인터뷰에서 "시진핑, 트럼프 같은 세계 정상들이 경제와 평화를 이끌어 달라"는 소망과 함께, APEC 엠블럼의 모티브인 '천년의 미소와 당'을 소개했다.

그 장면은 10월29일 중국 전역에 방영됐다. 개인의 작은 목소리가 세계로 퍼져나간 순간이었다. 자원봉사자에게 가장 중요한 건 '사람을 대하는 마음'이었다.

10월29일, 나는 러시아 대표단 기업인 Maria와 불국사·석굴암 관광을 함께 했다. 불국사 입구의 한복 체험 부스에서 그녀는 해맑게 웃으며 사진 다섯 장을 받았지만, 도중에 잃어버렸다. 몹시 속상해하던 그녀를 보며 행사 사무실과 버스를 뒤졌으나 찾을 수 없었다. 결국 국립공원공단에 연락해 재인화 요청을 했고, 그날 저녁 내 사비로 사진을 택배로 보냈다.

다음날 "Спасибо(감사합니다)"라는 메시지가 도착했다. 언어는 달랐지만, 마음은 통했다. 그 한마디가 9일간의 피로를 모두 녹였다. 행사장 곳곳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땀과 노력이 스며 있었다. 무더운 날씨에도 공사기간을 맞추기 위해 현장 노동자들은 묵묵히 일했고, 화려한 행사장 뒤편에는 그들의 헌신이 있었다.

밤새 외곽을 지키며 경비를 선 군인과 경찰의 수고 역시 인상 깊었다. 자원봉사자로서 나는 그 모든 수고를 직접 목격했다. 그것은 '현장을 함께한 자만이 볼 수 있는 진심'이었다.

자원봉사자들의 헌신, 시민의 질서, 문화의 품격이 어우러진 덕분에 APEC 2025는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행사가 끝난 뒤에도 마음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나는 이번 경험을 통해 '언어보다 마음이 먼저 통한다'는 진리를 배웠다. 세계가 경주에 모였던 그 9일, 나 또한 세계와 마음을 나눈 한사람이었다.

박철호 한국관광공사 부산울산경남지사 선임차장
APEC 2025 자원봉사자








박철호 한국관광공사 부산울산경남지사 선임차장 chulho@knto.or.kr <저작권자(c)프라임경제(www.newsprime.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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