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실시간 속보창 보기
  • 검색 전체 종목 검색

탑이슈

[대한민국 제19대 대통령] 문재인 라이프 스토리
한국경제 | 2017-05-15 09:00:40
[ 은정진 기자 ] 문재인의 자기소개서

● 키, 몸무게, 신발사이즈=172㎝, 67㎏, 260㎜

● 혈액형=B형

● 종교=천주교(세례명 디모테오)

● 좌우명=어려울수록 원칙으로 돌아가라

● 내 인생의 멘토=아버지

● 좋아하는 노래=꿈꾸는 백마강

● 가장 기뻤던 일=사법시험 합격, 노무현 대통령 당선

● 가장 후회되는 일=아버지 돌아가시기 전에 잘된 모습 보여드리지 못한 것

● 장점=처음 만나는 사람들에게 호감을 주는 것

● 단점=과도한 진지함과 결벽주의

● 가장 존경하는 사람=다산 정약용 선생

● 가장 닮고 싶은 리더십=세종대왕의 ‘통합정신’

● 감명 깊게 본 영화=변호인, 광해-왕이 된 남자

● 자신을 음식에 비유한다면=고구마

● 주량=소주 1병

제19대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당선된 문재인 대통령은 6·25전쟁 중이던
1953년 1월24일 경남 거제에서 2남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함
경남도 흥남 출신으로 1950년 12월 흥남 철수 작전 당시 고향을 떠나 월남해 경
남 거제 피란민수용소에서 정착했다. 부산 영도 판잣집에서 살던 시절 부친의
장사 실패 후 강냉이(옥수수)죽 급식으로 끼니를 때우고 모친의 연탄 배달을 도
우며 생계를 꾸렸을 정도로 집안 형편이 넉넉지 못했다.

2남 3녀 중 장남으로 거제에서 출생

경남중·고교 시절에는 공부만 잘하는 모범생은 아니었다. 친구에게 시험
답안지를 보여주고, 폭력 교사에게 반항해 해당 과목을 공부하지 않기도 했다
. 친구와의 의리를 지키기 위해 싸움판에 뛰어들어 네 번이나 정학을 당했다.
재수 끝에 1972년 경희대 법대에 들어갔다. 하지만 공부보단 유신 반대 시위를
이끄는 데 앞장섰다. 1975년 4월 인혁당 관계자들이 사형당한 다음날 대규모
유신 독재 화형식을 주도해 서대문구치소에 4개월 동안 수감됐다. 장남에게 실
망한 부친은 한 번도 면회를 오지 않았다.

제대 후 시위 및 구속 전력으로 복학의 길은 막혀 있었고 취업도 힘들었다. 그
와중에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아픔을 겪었다. 문 대통령은 사법고시 공부를 하
게 된 배경에 대해 “뒤늦게나마 한 번이라도 잘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는 아들로서의 결심”이었다고 했다. 선친의 49재를 마친 다음날 전남
해남 대흥사에 들어가 고시공부에 몰입했다. 누우면 잠이 올까봐 방에 물을 뿌
리며 공부에 전념했다. 이듬해인 1979년 1차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학내 시위와
공부를 병행하던 문 대통령은 1980년 ‘서울의 봄’ 시위에 나섰다
가 계엄령 위반으로 군사재판에 회부됐다. 결국 경찰서 유치장에서 2차 시험 합
격 통지서를 받았다.

노무현 정부에서 청와대 비서실장 등 지내

문 대통령의 사법연수원 동기로는 고(故) 조영래 변호사, 박원순 서울시장, 박
시환 전 대법관, 송두환 전 헌법재판관, 이귀남 전 법무부 장관, 박병대 대법관
등이 있다. 사법연수원을 차석으로 졸업했지만 시위 전력 때문에 판사에 임용
되지 못했다. 결국 1982년 부산으로 내려와 변호사로 활동하던 중 운명적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을 만났다. 노 전 대통령과 합동법률사무소를 차리고 인권 변
호사의 길을 걸으며 시국사건을 맡았다. 그 인연으로 2002년 당시 노무현 대선
후보의 부산선거대책본부장직을 맡으며 정계에 입문했다.

노 전 대통령 당선 후 문 대통령은 청와대 민정수석·시민사회수석&midd
ot;비서실장을 맡으며 대표적인 ‘친노(친노무현) 인사’로 자리매김
했다. 노 전 대통령 탄핵 당시엔 대리인단 간사 변호인을 맡기도 했다. 문 대통
령의 발음이 다소 부정확해진 것도 이때 격무와 스트레스로 치아 10개가 빠졌기
때문이다. 노 전 대통령의 계속되는 권유에도 국회의원 선거 출마 등 정치권에
발을 들여놓기를 꺼린 문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재단법인 ‘
사람사는 세상 노무현재단’ 이사장직을 맡았다. 그 후 2011년 자서전 《
운명》을 출간하며 현실정치에 발을 내디뎠다. 2012년 19대 총선에서 부산 사상
구에 출마해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두번째 대권 도전해 성공

2012년 12월 치러진 제18대 대선에서 역대 야권 후보 최다 득표인 1469만표(득
표율 48%)를 얻었지만 진영 대결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51.6%를 얻은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패했다. 이후 대권 준비를 이어 온 문 대통령은 2015년 2월 새정치
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 당 대표 출마라는 승부수를 던졌고 결국 당선됐다.
당초 100석도 힘들 것이라던 지난해 4·13 총선에서 민주당은 총 123석
의 제1당 자리를 꿰차면서 위기론을 대세론으로 바꿔놓았다.

이후 네 차례 당 순회 경선에서 ‘대세론’을 지속한 문 대통령은 지
난달 3일 총 57%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민주당 대선후보로 확정됐다. 대학 입학
과 사법시험 모두 재수로 합격하며 자신을 재수에 강하다고 소개하며 두 번째
대권 도전에 나섰던 문재인. 그는 적폐 청산과 완전히 새로운 대한민국을 약속
하며 정치 입문 6년 만에 대한민국호를 이끌어갈 제19대 대통령이 됐다.

은정진 한국경제신문 기자 silver@hankyung.com


ⓒ 한국경제 & hankyung.
com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시각 주요뉴스
  • 한줄 의견이 없습니다.

한마디 쓰기현재 0 / 최대 1000byte (한글 500자, 영문 1000자)

등록

※ 광고, 음란성 게시물등 운영원칙에 위배되는 의견은 예고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

오늘의 이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