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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3장 6절 (2) 조회 : 1327
셀트소액주주 (115.143.***.172) 작성글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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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급 세자
2016/07/22 11:05 (수정 : 2016/07/22 11:17)
 



보암직하고 먹음직하고 탐스러운 것을 선호하는 사람들은 그러한 육신적인 본능을 활용하여 조직체를 유지해 나갑니다. 어떤 조직의 지도자는 자기의 조직 내에서의 입지강화와 조직의 유지를 위해서 잔머리를 굴리는데, 이때 사용하는 방법이 바로 상벌제도입니다. 바로 이 '상'이라는 것을 얼마나 보기에 좋고 탐스럽게 만드느냐에 따라 이것을 차지하려는 경쟁의 열기를 조절할 수가 있습니다. 반대로 '벌'이라는 것은 조직과 그 리더에 대항하는 자들에게 가합니다. 이 벌은 누구도 좋아할 수 없는 고통이고 소외당하는 것입니다. 상이던 벌이던 어떻든 그것은 보암직하고 먹음직하고 탐스러운 것을 좋아하는 사람의 깊은 내면적 욕구를 자극하고 있다는 점에서 선악과의 본질과 일치합니다. 이 상벌제도를 적당하게 구사해서 국가라는 거대한 조직은 물론이요 군대, 기업체, 교육계, 체육계, 예능계, 심지어 교회와 가정 등의 모든 조직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여기까지는 좋은데, 사람들은 이 보암직하고 먹음직하고 탐스러운 것을 선호하는 본능적인 경향을 하나님께로도 향한다는데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상벌제도를 적당하게 구사하시는 하나님이시고, 그래서 우리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보암직 먹음직한 상을 받고, 불순종을 하면 벌을 주시는 하나님으로 인식하게 됩니다. 그래서 교회에서는 충성하자, 봉사하자, 헌금하자 등등 수많은 구호를 외치면서 순진한 성도들의 경쟁심을 자극하고 이것이 마치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처럼 각인시킵니다. 그렇지만 실상은 교회의 지도자들끼리 벌이는 육신의 경쟁심입니다. '명예'라는 보암직하고 먹음직하고 탐스러운 것을 탐하는 육신의 본능을 유감없이 발휘하게 만드는 것일 뿐입니다. 하나님 나라와 그 의를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가 다니는 교회와 목사 혹은 자기 자신을 위해 충성 봉사 헌금 기도에 열심을 다한다면, 그것은 믿음의 본질에서 멀리 떨어져서 타락해 가고 있다는 증거가 되는 겁니다. 그것은 더 높이 더 크게 더 많이 더 화려한 바벨탑을 자기의 마음속에 쌓고 있는 겁니다. 


그렇다면 믿음이란 무엇일까요? 예수님을 믿겠다고 입으로 시인하면 그게 믿음이 되는 걸니까? 어떤 사람들은 복음이 너무 쉽기 때문에 오히려 믿기가 어렵다고 말하지만, 과연 그렇게 믿는 것이 쉬운 거라면 얼마나 좋을까요? 오늘날 우리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인정하면 구원을 받는다고 하니까, 너무도 쉽게 고백합니다. 그러나 로마제국으로부터 공인받기 이전의 초대교회 성도들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시인하려면 반드시 죽음을 각오해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주님으로 받아들이는 그 순간부터 로마제국의 원수가 되기 때문이죠. 바울의 서신을 읽어보면 그런 암담한 세상에서 초대교회 성도들이 어떻게 믿음을 지켜나갔는지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울 자신도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영접하기 전까지는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던 사람이었거든요. 오늘날 한국에서 예수님을 믿는다고 고백한다고 해서 누가 해코지를 하나요? 우리가 신약성경을 읽을 때, 특히 초대교회 성도들과 관련된 많은 서신들을 읽을 때에는 믿음이라는 것이 오늘날 자유로운 환경에서 손쉽게 얻는 믿음과는 다르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따라서 구원에 이르게 하는 진짜 '믿음'을 갖는다는 것은 기적이 일어나지 않으면 안된다고 감히 말씀드릴 수 있답니다. 입으로 예수님을 믿는다고 수천 번을 시인하고 고백한다고 해도 마음의 관심은 육신과 세상과 자기 자신에게 향하여 있다면, 그것은 가짜 믿음일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나의 관심이 여전히 세상적이고 육신적인 보암직하고 먹음직하고 탐스러운 것을 향하여 있다면, 그 마음속에 어찌 성령님께서 거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의와 그의 나라를 구하는 것, 의에 주리고 목마른 것, 애통하는 것, 마음이 가난한 것,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는 것이 육신적으로 보기에 좋고 먹을만하고 탐스러울까요? 사람들은 교회를 다니면서도 이런 것들을 싫어합니다. 참된 복음은 선악과를 탐하는 자들에게 철저하게 배척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영혼이 잘되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게 되리란 말씀은 얼마나 듣기에 좋고 먹기도 좋고 탐스러운 말씀입니까? 그러니까 이 말씀만 강조를 하면 사람들은 좋아합니다. 그래서 그런 말만 늘어놓는 교회에 사람들이 메워질 정도로 모여듭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것이란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 죽는 것이고, 세상을 버리는 것이며, 세상에게 핍박과 소외를 당하는 것이라는 말을 듣는 것은 싫어합니다. 그 근본적인 원인은 다름이 아니라, 기도하는 집을 강도의 굴혈로 만들어버린 예수님 당시의 성전 장사꾼과 같은 일부 목회자들이 오늘날 그렇게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 셀트인생활짝 (220.73.***.58) 07.22 11:11
    3 2

    오호~! 33회네요 빠르네요
    감사합니당~^^
    댓글 신고

  • jack7123 (1.209.***.31) 07.22 11:25
    5 6

    참 마음에 와닿네요 고맙습니다.
    댓글 신고

  • 셀트인생활짝 (220.73.***.58) 07.22 11:40
    4 7

    눈이 밝아집니다
    옳은 믿음에 대한 분별력...
    댓글 신고

  • 셀사랑 홈페이지 이동하기 (49.175.***.148) 07.22 11:45
    5 7

    하나님의 의와 그의 나라를 구하는 것
    의에 주리고 목마른 것, 애통하는 것
    마음이 가난한 것,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는 것..
    이러한 마음을 내안에 이루어가기를 소망합니다.
    저에게 어제보다는 오늘이 오늘보다는 내일이
    주님께서 원하시는 삶이 되어질 수 있기를 마음깊히 기도합니다.
    소중한 글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댓글 신고

  • MckennaDIE (117.111.***.137) 07.22 11:49
    7 5

    갈2:20 말씀으로 고민하며 살아가는 자가 바로 구원받은 자의 삶일거라 확신합니다. 댓글 신고

    셀사랑 홈페이지 이동하기 (49.175.***.148) 07.22 12:23
    6 4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안에서 사는것이라..
    댓글 신고

  • jdalm (223.62.***.8) 07.22 12:32
    5 6

    선과 악을 내가 정하여 내뜻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사는 것이 선임을 아는데 아는 것과 실천은 또 다르지요.깊은 묵상 감사합니다.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복과 세상의 복은 차원이 다르지요^^ 댓글 신고

  • 인내가필요해 (211.212.***.152) 07.22 14:42
    4 6

    북한 지하교회성도들의 믿음이 대단하다고 하네요. 걸리면 죽임 당하니까요~ 우리는 넘 편하게 예배드리는데요. 댓글 신고

    셀트소액주주 (115.143.***.172) 07.22 15:02
    7 7

    북한 지하교회 성도들의 믿음은 진짜라고 할 수 있겠죠. 생사가 걸린 문제거든요.
    그런데, 한국에서 이렇게 편하게 신앙생활하는 게 과연 바울이 전한 그 복음 말씀에 얼마나 합당할까요? 저는 그것을 생각할 때마다 등골이 서늘하답니다.
    댓글 신고

  • woomul (211.224.***.51) 07.23 10:09
    4 7

    평소 깊은 명상과 땀흘리는 육체적 연단을 통하여 내 마음 깊은 곳의 욕망 증오 두려움 수치 우월감을 하나하나 떨어내고 나면 기적처럼 말씀의 생명이 내 안에 빨려오듯 들어오고 마음의 평화와 기쁨 그리고 가슴 가득한 세상을 향한 사랑의 마음, 이것이 평범한 우리가 할 수 있는 깨달음과 믿음의 시작이 아닐까요? 처음부터 말씀과 교회의 율법적 규율들에 의존하는 믿음 생활은 깨달음의 문에 이르기까지 오랜시간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댓글 신고

  • mshan90 (211.184.***.246) 07.25 20:39
    6 6

    제가 늘 고민하는 문제를 명쾌하게 써주셨네요.
    교회 지도자들끼리 벌이는 육신의 경쟁심에 관한 문제를 거론하면
    목사님께 불순종하는 자로 찍히는 현실...
    구역식구들과 같이 나누고 싶어 일단 제 카톡으로 퍼갑니다.
    댓글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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