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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뱀 (2) 조회 : 1486
셀트소액주주 (115.143.***.172) 작성글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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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급 세자
2016/08/17 18:04
 



모세는 애굽의 왕자로 40년을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양을 치는 목동이 되어 또 다시 40년을 보냈는데, 또 어느 날 갑자기 대략 300만 명 규모의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으로 인도하게 되었습니다. 모세 스스로 원해서 트랜스포머처럼 3단 변신을 한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모세를 그렇게 사용하셨던 겁니다. 그런데, 백 마리의 양을 치는 것과 백 명의 사람을 다스리는 것 중에서 어느 쪽이 더 어려울까요? 물론 사람을 다스리는 것이 양을 치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렵습니다. 그것도 300만 명이라면 더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양치기 목동으로 40년 간 교육을 시키셨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대리자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어떻게 인도했나요? 당연히 300만 명의 백성을 다스리려면 체계적인 조직을 갖춰야 했습니다. 그래서 "온 백성 가운데서 능력 있는 사람들, 곧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진실하며 불의한 이익을 미워하는 자를 살펴서 백성 위에 세워 천부장과 백부장과 오십부장과 십부장을" 삼았습니다. (출18:21) 이렇게 조직을 했는데, 이스라엘 백성이 제대로 다스려졌나요? 그렇지 못 했습니다. 출애굽기 32장을 보면, 모세가 40일 간 자리를 비웠는데 그새를 못 참고 이스라엘 백성은 우상을 만들어 섬겼거든요.  이스라엘 백성 위에 세웠던 천부장과 백부장과 오십부장과 십부장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진실하며 불의한 이익을 미워했더라면' 우상을 만들어 숭배하는 사건이 일어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일어나고야 말았습니다. 그렇다면 뭐가 잘못된 걸까요? 


조직 그 자체만으로는 이스라엘 백성을 제대로 다스릴 수가 없습니다. 조직뿐만 아니라 그 조직을 통솔할 수 있는 법이 있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법이 바로 율법이었습니다. 율법이 없는 이스라엘 백성은 그야말로 오합지졸에 불과할 뿐입니다. 율법이 이스라엘 백성의 질서를 유지하고 오합지졸의 백성을 하나로 뭉치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사실 율법이 없어도 이스라엘 백성 하나 하나가 지혜롭게 잘 판단하고 잘 깨달아서 하나님의 마음을 훤히 이해하고 순종하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 하나 하나는 하나님을 만날 수 없고, 심지어 모세조차도 만나는 게 매우 어려웠겠죠.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의 마음을 알기 어려웠고, 하나님의 마음은 더더욱 알기 힘들었을 겁니다. 


율법이 주어지면, 그 율법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의 진짜 지도자이신 하나님의 마음을 파악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들이 율법에 순종할 때에 하나님께서 심히 기뻐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율법을 통해서 "엿새 동안은 일하고 일곱째 날은 너희를 위한 거룩한 날이니 여호와께 엄숙한 안식일이라 누구든지 이 날에 일하는 자는 죽일지니 안식일에는 너희의 모든 처소에서 불도 피우지 말지니라"(출 35:2-3)고 명하셨을까요? 왜 안식일에는 불도 피우지 말라고 명하셨는지 하나님의 의도를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안식일 규정을 잘 지키는 것으로 이스라엘 백성이 오합지졸에서 탈피할 수 있을까요? 그건 분명히 아닙니다. 그래서 율법이 주어진 이스라엘 백성에게 성막 건축이라는 전대미문의 새로운 과제가 주어졌습니다. 모세는 성막 건축의 재료를 모으기 위해서 백성의 소유 중에서 마음에 원하는 대로 여호와 하나님께 바치라고 했습니다. (출 35:5) 뿐만 아니라 마음이 지혜로운 자(10절), 마음이 감동된 자(21절), 자원하는 자(21절), 마음에 원하는 자(22절), 마음이 슬기로운 여인(25절)과 같은 성막 건축에 필요한 다양한 인재를 모세는 모집했습니다.   


바로 이 점이 일당으로 모은 어용단체와 자발적으로 모인 모세 조직의 차이점입니다. 일당이라는 미끼를 사용하는 어용단체는 위에서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야 그에 따른 보상으로 일당을 받을 수 있습니다. 구성 조직원이 원하거나 말거나 전혀 상관 없습니다. 엉덩이로 밤송이를 까라면 까는 시늉이라도 해야 하는 게 일당으로 모은 어용단체의 특징입니다. 그러나 모세의 경우는 하늘과 땅 사이만큼의 차이를 보입니다. 아무리 율법이 강력하다고 해도 구성원이 마음으로 원하지 않는다면, 마음의 감동이 없다면, 자원하지 않는다면, 굳이 성막 건축에 참여하지 않아도 됩니다. 

  

안식일을 준수하지 않고 안식일에 일하면 죽인다는 율법이 있어서 안식일에 성막을 만들어도 죽임을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지만 성막을 건축하기 위한 소유를 바치지 않아도,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는 베 실과 염소 털과 붉은 물 들인 숫양의 가죽과 해달의 가죽과 조각목과 등유와 및 관유에 드는 향품과 분향할 향을 만드는 향품과 호마노며 에봇과 흉패에 물릴 보석을 바치지 않아도, 성소에서 하나님을 섬기기 위하여 정교하게 만든 각종 기물들을 만들지 않아도 죽음을 당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합니다. 안식일과 성막은 매우 가까운 관계가 있어서 안식일에 성막에서 제사를 드려야 하거든요. 안식일을 범하면 죽임을 당하는데, 성막 건축에 대한 봉사는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입니다. 감사와 기쁨 없이 억지로 성막 건축에 참여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원하시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안식일을 범하면 죽이라는 것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명령이며, 이스라엘 백성이 반드시 지켜야 할 율법입니다. 그러나 성막 건축에 자기 소유물을 바치거나 봉사하는 것은 백성의 자발적인 참여입니다. 아무리 소유가 많고 성막 건축 기술이 탁월해도 마음이 원하지 않고 감동이 없으면 참여할 필요가 없습니다. 


애굽을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이 대략 300만 명 정도라고 하는데,  이 거대한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벗어나서 홍해를 건너 광야로 들어가는 과정까지는 그럭저럭 잘했습니다. 그런데 그 많은 백성 중에서 최종 목적지인 가나안 땅에 들어간 사람은 오직 여호수아와 갈렙 달랑 두 명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의 이곳저곳에서 경고하시기를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경고를 여호수아와 갈렙만 비켜간 걸까요? 천부장과 백부장과 오십부장과 십부장을 어떻게 세웠죠?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진실하며 불의한 이익을 미워하는 사람들이었는데(출18:21), 그들도 광야에서 다 죽었습니다. 또한 성막 건축에 참여한 사람들이 누구라고 했죠? 마음이 지혜로우며, 마음에 감동 받았으며, 마음으로 원하여 자원하는 사람들이었는데, 이들도 광야에서 다 죽었습니다. 이렇게 평소에 솔선수범하는 자세를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충성심으로 똘똘 뭉쳐서 타의 모범이 되기에 손색이 없을 정도인데도 가나안 땅에 도착한 사람은 여호수아와 갈렙뿐이었습니다. 도대체 그 많은 충성스런 백성이 다 어디로 갔단 말인가요? 

 

하나님을 경외(敬畏)할 정도로 신실했던 천부장 백부장 오십부장 십부장들이 나중에 변절했다는 건가요? 성막 건축에 즐거운 마음으로 소유물로 바치고 봉사도 했던 그 많은 백성이 성막 완성 후에 도대체 왜 불뱀에 물려서 모래더미 속에 파묻히는 신세가 되고 말았을까요? 그렇다면 마음에 감동 받고 마음으로 원하여 성막 건축에 자발적으로 참여했다는 게 다 거짓이었을까요? 어쨌든, 이스라엘 백성이 자진해서 소유를 바치고 기쁜 마음으로 만들었던 성막이 나중엔 다 부셔졌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가 바로 성막인데, 왜 성막을 만들 때의 그 감동과 지혜와 봉사하는 마음을 끝까지 유지하지 못했을까요?   


오늘날이라고 다를 게 있을까요? 처음으로 사회에 진출할 때의 그 마음가짐이 몇 년 지나고 혹은 십 수 년이 지나고 어떤 마음으로 변해 있을까요? 사회에 첫 발을 내디딜 때의 그 감동과 마음을 그대로 유지할까요? 여기에는 목사도 예외가 아닙니다. 처음 목사가 되었을 때의 그 마음가짐이 십 년 이십 년 지나도 변함이 없을까요? 목사라는 타이틀이 자기 밥그릇이나 명예를 위한 도구가 되지는 않았을까요? 어떻게 교회에서 세습이라는 단어가 통용될까요? 세습을 가장 멋지게 사용하는 곳은 북한 정권인데, 어떻게 교회가 북한 공산당을 닮아가는 걸까요?


율법이나 성막, 심지어 복음마저도 얼마든지 껍데기로 전락시킬 수 있는 게 바로 육신의 마음입니다. 교회 신자들을 교리와 규율과 전통으로 유지하느냐, 그와는 달리 감동과 지혜와 자발적인 마음으로  유지하느냐의 차이는 별것 아닌 것 같아도 매우 큽니다. 수천 년 전에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을 물었던 불뱀이 오늘날 한국 교회에 등장하지 않았다고 해서 과연 불뱀이 없는 걸까요? 누가복음 10장에서 많은 일로 근심하는 마르다보다는 좋은 것 한 가지를 택한 마리아를 칭찬하셨던 예수님, 그 예수님께서 주일성수나 십일조 그리고 충성 봉사를 좋아하실까요? 그게 아니면, 마음으로 우러난 감동과 지혜를 더 기뻐하실까요? 하늘에 계신 주님께서 진정으로 원하시는 교회의 모습은 무엇일까요? 크리스천이라고 자부하는 우리가 교회 내에서 불뱀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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