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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적 (3) 조회 : 1488
셀트소액주주 (115.143.***.172) 작성글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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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급 세자
2016/08/31 21:30
 



옛날에, 아주 오랜 옛날에, 호랑이가 담배 피던 시절에, 어느 형제 둘이 참으로 우애 넘치는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형제가 함께 길을 가다가 동생이 금덩이 둘을 발견했습니다. 동생은 얼른 집어서 형 한개, 자기 한개씩을 나누어 가졌습니다. 한참 길을 가면서 두 형제는 각기 생각에 사로잡혔습니다.

‘에고! 이 길을 나 혼자 갔더라면 둘 다 내것인데. 괜히 형님한테 한 덩이 뺏겼네.’ 

‘저 녀석이 저는 큰 것을 갖고 나는 작은 것을 주었겠지. 내 눈에 먼저 좀 띄질 않고.’ 

그러면서 두 형제는 서로 마음이 편하지 않았지만, ‘어이구! 이것도 감지 덕지지. 감사한 일이야’ 하면서 길을 가는데, 다시 둘 다 내것이었으면 하는 생각에 갈등은 점점 심해졌습니다. 한참 길을 걷다가 강을 건너려고 하는데, 동생이 금덩이를 번쩍 들더니

‘에이 요사스런 골칫거리 이놈을 버려야겠다’ 하면서 금덩어리를 강물에 던졌습니다.

형이 깜짝 놀라 ‘아니! 왜 금을 버리느냐?’ 하고 아까운 마음으로 물었습니다.

‘네, 제가 평소에 형을 따르고 존경했는데 이놈이 생기고부터는 별놈의 생각이 다 들어서 아주 위험한 물건으로 생각돼 버렸습니다.’  이 말을 들은 형 역시 ‘네 말이 맞다! 나도 실은 그랬다. 이놈은 마음에 병을 주는 놈이야!’ 하면서 금덩어리를 던져 버렸다고 합니다.  


대부분의 경우에 있어서, 사람이 재물을 가지면 가질수록 재물의 노예가 되기 쉽습니다. 많은 재물은 젊은이를 타락시키고, 황금은 선비의 마음을 시커멓게 만듭니다. 많은 지도자와 인사들이 돈 때문에 감옥에 갔으며, 인격과 양심이 돈 앞에서 완전히 무너지는 비극을 저는 수없이 보았습니다. 그래서 딤전 6:10에서는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고 했으며, 또한 약 5:3에서는 "너희 금과 은은 녹이 슬었으니 이 녹이 너희에게 증거가 되며 불 같이 너희 살을 먹으리라 너희가 말세에 재물을 쌓았도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행전 9장에는 또 다른 '아나니아'가 등장합니다. 하나님을 재물로 시험하다가 죽임 당한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가 아닙니다. 이 아나니아에 대해선 거의 아는 바가 없습니다. 사도행전을 제외하고는 그 외 다른 자료에 전혀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나니아가 다메섹에 있던 그리스도인이라는 것만 알 뿐입니다. 그런데 엑스트라급 아나니아가 아주 엄청난 사역을 감당했습니다. 사울을 안수하여 바울로 변화시켜 하나님의 일에 앞장서게 만드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사도 베드로와 순교한 스데반도 어쩌지 못한 사울,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려고 이스라엘 영토 밖까지 살기등등하게 쫓아갔던 그 사울에게 감히 안수함으로써, 나중에 복음이 무엇인지를 설명한 신약 13권의 책을 저술케 되는 바울로 변모시키는 하나님의 일에 쓰임 받은 사람이었던 겁니다.


사울이 살기등등하게 다메섹으로 향하다가 예수님의 영을 만나게 됩니다. 그 여파로 사울은 유다라는 사람의 집에서 사흘 동안 보지 못하고 먹지도 마시지도 아니했습니다. 그런데, 아나니아는 환상 속에서 주님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예수님의 영은 아나니아에게 유다의 집으로 가서 사울을 만나 안수하라는 것이었죠. 예루살렘에서 행한 사울의 악명을 아나니아는 이미 들어서 잘알고 있었습니다. 사울이 똑같이 핍박하려고 다메섹까지 왔다는 소식을 듣고 겁을 먹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 아나니아에게 주님께서는 큰 위로를 전하셨습니다. 행 9:15-16에서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고난을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는 이 말씀에 아나니아는 찍 소리도 못하고 사울에게 가서 안수하여 성령 충만하게 했습니다. 


이 사건 이후에 사도 바울과 아나니아가 다시 만나서 회포를 나눈 적이 있었을까요? 사도 바울은 바나바, 누가, 마가와 함께 전도 여행을 했지만, 자기의 은인격인 아나니아와 재회했다는 말은 기록된 바가 없습니다. 로마서 16장에 기록된 사도 바울의 친구들과 동역자들과 보호자들의 명단에서도 아나니아의 이름은 없습니다. 그 이유를 알 수 없지만, 정말 중요한 점은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서 다시 보게 되었다는 행 9:18의 기록입니다. 사울의 눈을 덮었던 비늘, 그래서 보지 못하게 만들었으며 깨닫지 못하게 방해했던 그 비늘을 벗겨주었던 것이야말로 부활의 표적을 소유했던 아나니아의 사역이 아니었을까요? 이런 아나니아는 바울 말고도 많은 사람들의 눈에서 비늘을 벗겨서 영적인 눈을 뜨게 만들었을 겁니다. 


사울은 눈에서 비늘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되었는데, 눈만 다시 보게 된 것이 아니고 자기가 핍박했던 예수님께서 바로 그리스도이심을 알게 되었죠. 그뿐만 아니라 강력하게 예수님을 증거하는 바람에 다메섹에 살던 유대인들을 당혹하게 만들었습니다. 여러 날이 지나서 황당한 일이 벌어졌는데, 그게 뭔가 하면 혼란에 빠졌던 유대인들이 사울을 죽이려고 공모했습니다. 왜 사울을 죽이려고 했을까요? 그것은 그들의 눈에 비늘이 덮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사울에게 행하신 것처럼 예수님께서는 왜 이 유대인들에게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는 식으로 역사하시지 않고 그냥 방치하셨을까요?


아마도 그들의 영적인 눈을 덮어서 도무지 깨닫지 못하게 하는 그 비늘을 벗겨내는 사역을 바울이 감당하도록 하셨던 게 싶네요. 사도 바울이 저술한 열세 권의 성경은 부활의 표적을 가진 크리스천의 가르침이며, 이것은 비늘이 벗겨진 상태에서 나왔습니다. 부활의 표적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깨닫는 믿음입니다. 사울도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율법에 열심이 있었고 세상 학문이 깊었지만, 이는 그 자신의 영적인 눈에 비늘이 덮여 있었기 때문이었죠. 그러므로 '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다'(빌 3:6)는 그 사울의 확신이 뭔가 하면, 하나님을 알 수 없게 방해하는 비늘의 정체였습니다. 사울의 비늘이 벗겨짐으로 해서 드디어 사울은 부활의 표적을 갖게 되었던 겁니다. 


사도 베드로에게도 비늘이 있었습니다.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이방인은 속되고 깨끗하지 못하다는 유대교의 고집이 바로 사도 베드로의 비늘이었습니다. 사도 베드로의 이 비늘을 벗기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환상을 보이셨고, 이 환상을 본 다음에 고넬료를 전도하게 되었는데 고넬료는 다름 아닌 이방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도 베드로가 받았던 성령님을 이방인 고넬료에게도 주심으로써 사도 베드로의 비늘을 벗겨 주셨습니다. 사도 베드로의 마음을 덮었던 이 비늘은 사도 베드로뿐만 아니라 유대인 전체를 다 덮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베드로가 이방인 고넬료와 함께 식사를 했다는 소문이 만발하였고, 결국 사도 베드로가 유대에 갔을 때 사도 베드로를 비난했습니다. 이 때문에 사도 베드로는 하나님께서 보이신 환상을 간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이러한 간증을 끝내면서, 행 11:17에서 "그런즉 하나님이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주신 것과 같은 선물을 그들에게도 주셨으니 내가 누구이기에 하나님을 능히 막겠느냐"며 유대의 크리스천들에게 이방인들에 대한 의식의 변화를 촉구했고, 그들도 사도 베드로의 말을 듣고는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고 마음을 덮었던 비늘이 벗겨지며 진리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말할 것도 없고 유대의 크리스천들 역시 사도행전 2장에서 이미 부활을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선민 사상과 이방인에 대한 잘못된 편견에 사로잡혔다가 고넬료 사건이 계기가 되어 겨우 비늘이 벗겨지게 된 겁니다. 이것을 보면, 영적인 눈을 덮고 있는 비늘이 한꺼번에 홀라당 벗겨지는 게 아니고 한 꺼풀씩 벗겨지고 죽을 때까지 벗겨져야 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도대체 비늘이 무엇일까요? 마 17:20에서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에서 언급된 '산'이 바로 비늘입니다. 즉,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아는데 방해되는 것은 모두가 다 비늘입니다. 사람은 세상과 육신의 생각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모릅니다. 세상과 육신이라는 개념에 사로잡혀 있기에 결코 하나님을 알 수 없고, 이것 역시 우리의 마음과 눈을 두껍게 가로막고 있는 비늘입니다. 세상적이고 육신적인 자아, 즉 욕심과 정욕과 야망과 같은 것은 하나님을 모르게 하는데 최고 갑질을 합니다. 재물이나 구하고 육신이나 잘되기를 바라는 것은 벌써 하나님을 몰라도 한참을 모른다는 확실하고 명백한 표적이 됩니다. 신학이나 교리 그리고 전통 또한 사탄 마귀가 즐겨 사용하는 강력한 비늘이 아닐까요? 


이런 비늘에 덮여서 하나님을 전혀 모르고 있는 부류의 대표가 바로 바리새인이요 제사장이었던 것처럼, 오늘날에는 신학자들과 목회자들과 장로들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비늘로 덮힌 대표적인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율법에 흠이 없다는 확신, 복음을 철저히 지킨다는 그 자체가 바로 두꺼운 비늘입니다. 목회를 오랫동안 했고 교회를 성장시켰고 많은 교인들로부터 존경을 한 몸에 받는 그 현실이 두꺼운 비늘에 덮혀 있다는 표적입니다. 마음속에 부활의 표적이 아닌 세상과 육신의 표적만 가득한 대다수 우리나라 교회 지도자들, 그들의 영적인 눈을 덮고 있는  그 비늘은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면 결코 벗길 수 없습니다.








  • 셀사랑 홈페이지 이동하기 (49.175.***.148) 09.01 23:32
    6 6

    감사합니다....
    하나님 마음을 아는데 방해가 되는 세상적이고 육신적인 욕심과 야망이라는 비늘..
    날마다 말씀안에서 늘 깨어 기도하며 비늘을 닦아내어야하는데..........(ㅠ.ㅠ)
    댓글 신고

  • wog841 (14.44.***.47) 09.02 17:23
    8 5

    셀소주님 감사합니다.
    세상적인것에서 벗어나려 순간순간 생각하는데 자녀 붑ㄴ에서는 말씀과 인내가 많이 필요하네요. 위로를 받고 재충전 하고 갑니다.
    늘 건강 하시길 기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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