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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적 (5) 조회 : 1540
셀트소액주주 (115.143.***.172) 작성글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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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급 세자
2016/09/07 18:08
 



빌립을 기뻐하셨던 성령이 이번엔 다메섹에서 아나니아를 기뻐하셨습니다. 얼마나 아나니아를 귀하게 여기셨으면 아나니아의 개인적인 이름을 부르실 정도였죠. 즉, 부활의 표적으로 이름을 부르셨다는 겁니다. 다메섹에 있는 성도들을 체포하기 위해 출동한 사울을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소경으로 만드셨고, 소경된 사울이 유다라는 사람의 집에서 사흘동안 식음을 전폐하고 기도하고 있는 동안 성령님께서 아나니아를 부르시는 겁니다. 사울이 왜 출동했는지를 미리 알고 겁 먹는 아나니아를 사울에게 보내십니다. 이때 아나니아는 사울을 용기 있게 만나 안수하면서 “형제 사울아”라고 부릅니다. 자신을 죽이려는 핍박자요, 예수님을 대적하던 원수였던 사울을 ‘형제 사울’이라고 부르는 겁니다. 아나니아에게 있어서 핍박자요 원수였던 사울이 형제로 변하는 순간, 사울의 눈에서 비늘이 벗어지면서 다시 앞을 보게 되었고 아나니아는 위대한 사역자로 변신할 사울을 형제로 맞이하게 됩니다. 


여기서 알 수 있듯이, 아나니아의 마음도 성령님과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오염되지 않은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빌립과 똑같은 순수한 마음을 간직하고 있었기 때문에 성령님의 음성을 듣고 움직인 것이겠죠. 아나니아가 성령님의 음성을 듣지 못했다면, 살기가 등등한 사울에게 접근한다는 것은 며칠 굶은 사자에게 접근하는 것처럼 두렵고 위험하겠지만, 다니엘이 사자굴에서 살아난 것처럼 아나니아는 믿음 그 하나만으로 사울을 형제라 부르게 된 겁니다. 성령님의 음성을 듣느냐 못 듣느냐의 여부는 순전히 내 마음의 상태에 달려있습니다. 하늘의 신령한 것으로 하나님께서 허락한 것이 아닌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으로 즉, 육신적인 야망을 버리지 않으면, 세상적인 욕심을 버리지 않으면, 물질적인 탐욕을 버리지 않으면, 그 심령에 우상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므로 절대로 성령님의 음성을 들을 수 없습니다.


사도행전 9장에서는 이름을 부르는 장면이 여러 번 기록되어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사울아, 사울아”하고 부르셨고, 주님께서 환상 중에 “아나니아야”하고 부르셨고, 그 아나니아가 “형제 사울아”라고 불렀고, 베드로가 중풍병자 "애니아"의 이름을 불렀고, 욥바에서 구제를 많이 하다가 죽은 여제자의 이름을 불렀죠. " 다비다야 일어나라" 하니까 눈을 뜨고 일어나 앉았다고 증거했습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이름을 부르신 "나사로"처럼 말이죠. 또한 10장에서는 이달리아의 백부장 "고넬료"의 이름을 하나님의 사자가 불렀습니다. 그리고 이름을 부를 때마다 큰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핍박자가 형제로 변했고, 중풍병자가 고침을 받았고,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났고, 이방인 백부장에게도 성령님께서 함께 하심을 체험케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사도행전 5장에서는 이름을 불리자마자 멀쩡하던 아나니아, 주의 영을 시험하던 아나니아가 갑자기 쓰러져 죽기도 했습니다. 우리 성도들이 부르는 예수님의 이름은 모든 이름 중에서 가장 뛰어난 이름이지만, 그 예수님과 성령님께서 불러 주시는 우리의 이름은 그 다음으로 버금가는 이름입니다. 물론 이름이 직접 불리웠다는 기록은 없어도 베드로와 교제하고 바울과 교제하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베드로 혹은 바울과 함께 하면서 많은 교제를 나누고 많은 체험을 했고 변화를 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이사야서에는 야곱이라는 개인적인 이름이 자주 불립니다. 41:14에 “지렁이 같은 너 야곱아”라고 불렀습니다. 이때의 야곱이라고 지칭된 것은 이삭의 아들 야곱이라는 개인을 부른 게 아니고 이스라엘 민족 전체를 부른 겁니다. 하나님께서 인간 전체를 향하여 부르실 때에는 그 전체의 어떤 상태를 지적하시기 위함이고, 이 전체적인 상태에서 변화 받을 대상자를 지목하여 개인적인 이름을 부르시는 것입니다. 또한 이렇게 불려져 변화 받은 개인을 통하여 또 다른 많은 사람에게 연쇄반응을 일으키게 됩니다. 그래서 노예 상태에 있는 전체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하나님께서는 개인 모세를 부르셨고, 모세가 변화되었고, 모세를 통한 영향력이 여호수아와 갈렙에게 또 변화를 일으킨 게 아닐까요? 


하나님께서는 개인의 이름을 부르실 뿐 아니라 아예 이름을 지어주시기까지 하셨습니다. 창 17:15에서 아브람의 이름을 아브라함으로 사래의 이름을 사라로, 창 17:19에서는 아브라함과 사라 사이에서 태어날 아들의 이름을 이삭으로, 호 1:4-9에서는 선지자 호세아가 창녀 고멜을 아내로 맞이하여 아들을 낳았을 때 하나님께서는 이 아들의 이름을 이스르엘로 지으셨고 다시 딸을 낳자 로루하마로 지을 것과 세 번째로 아들을 낳자 그의 이름을 로암미로 지으라고 명하셨습니다. 불행하게도 이 호세아와 고멜과의 사이에서 난 자식들의 이름은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죄악에 빠져 있는 상태를 지적하시기 위함이셨죠. 하지만 눅 1:13에서 하나님께서는 세례 요한의 이름을 직접 지어 주셨고 그리고 눅 1:30-31에서 하나님 자신의 독생자가 처녀 마리아의 몸에서 날 것을 예언하시면서 마리아의 이름을 부르셨고, 마리아에게서 장차 태어날 아들의 이름을 예수로 지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라는 이름은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이 되었고, 온 인류는 예수라는 이름의 절대적 영향력 아래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예수님께서는 나와 함께 교제하기 원하실 때 나의 이름을 불러서 접근해 오시는 겁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내 이름을 부르지 않으심은, 다른 말로 하나님께서 내 이름을 불러주신 경험이 없으면 아직도 하나님께서는 나와 개인적인 교제를 나누기 원치를 않으신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애통해 하여야 합니다. 고민하고 절망도 하고 항의도 하고 필요하다면 발광이라도 해야 합니다. 오리도 발광하면 날아간다면서요. 괜히 없어도 있는 척하는 것보다는 백번 낫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꼭 육신적으로 받아들이는 분이 계실 것 같아요.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방법은 직접적인 계시에 의해, 꿈을 통해, 기록된 말씀을 통해, 선지자를 통해, 환경을 통해, 천사를 통해, 성령님을 통해 오늘도 다양하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음성은 천둥 소리처럼 크지 않습니다. 오히려 초음파처럼 아주 미세하기 때문에 주의해서 듣지 않으면 놓치기가 쉽습니다.








  • 야무지개 (61.255.***.71) 09.08 14:53
    6 5

    감사합니다~ 댓글 신고

  • 진짜허벌나다 (223.62.***.85) 09.08 17:02
    5 7

    호흡을 가다듬어요..^^ 140 댓글 신고

  • dksvkfdk (39.115.***.39) 09.09 11:37
    5 5

    맘이 갈갈이 찢어져 깊은 심연에서 허우적 댈때 하나님은 말씀으로 건져 내 주십디다
    내짐이 무거워 도저히 감당 못해 내짐을 대신져 달라고 예수님께 기도 했을때 내 짐을 비껴 가게 해 주셨습니다
    쓰잘데기 없는 명예를 탐할다 지쳤을때 그짐을 놓게 하시고 아무 값없이 다시 일을 주십디다
    평온한 삶은 주와 멀어지게하지만 불안하고 어려운 삶은 주와 손잡게 합디다
    소주님이 늘 예수님과 같이 동행하는삶이시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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