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워치 | 2025-07-02 08:30:03
[비즈니스워치] 도다솔 기자 did0903@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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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기아가 새롭게 선보인 'UX 스튜디오 서울'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눈에 띈 문구다. 단순 슬로건을 넘어 이 공간의 존재 이유를 설명하는 핵심 철학이기도 하다.
지난 1일 서울 강남대로에 위치한 현대차 강남사옥 1층을 찾았다. 이곳에 둥지를 튼 UX 스튜디오 서울은 고객이 차를 타고 만지고 조작하는 모든 과정을 데이터로 남기고 그 데이터를 실제 차량 개발에 반영하는 사용자 참여형 연구소다. 고객이 겪는 경험이 곧 미래차를 설계하는 출발점이 되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 실험의 주체가 연구원이 아닌 방문객이라는 점에서 사용자 경험을 바라보는 방식 자체가 달라졌음을 보여준다.

UX(User Experience·사용자 경험)는 차량을 타고 조작하고 내리는 모든 과정에서 사용자가 겪는 경험을 뜻한다. 버튼의 위치와 화면 구성은 물론 도어의 개폐 감각, 시트의 착좌감, 주행 중 정보 전달 방식까지 모두 포함된다. 현대차·기아는 이 UX를 단순 편의 기능이 아니라 모빌리티 기술의 중심축으로 삼아 설계 단계부터 고객과 함께 연구하겠다는 구상이다. 공식 개관일은 오는 3일이다.
'고객 체험이 곧 연구'
UX 스튜디오 서울의 가장 큰 특징은 '개방성'이다. 과거에도 완성차 업체들은 고객을 대상으로 UX 조사를 해왔다. 다만 대부분 일정 대상만 초청해 설문을 하거나 포커스 그룹 인터뷰를 진행하는 수준에 그쳤다. 그러나 이 공간은 다르다. 언제든 방문한 고객이 곧 실험 참가자이자 공동 설계자가 된다.
1층 오픈랩은 그런 철학을 구현한 공간이다. 입구에 들어서면 세 개의 체험 존이 이어진다. 'UX 테스트 존'에선 실제 도어와 시트, 콘솔 등 부품 단위 UX 모형이 놓여 있어 직접 만져보고 조작해볼 수 있다. 단순한 터치 경험이 아니라 고객의 움직임, 시선, 조작 순서 등을 통해 '실제 사용성'을 데이터화하는 방식이다. 예컨대 어떤 버튼이 더 직관적인지 시트를 얼마나 자주 조정하는지 등의 행동 패턴이 그대로 수집된다.

이어지는 'UX 콘셉트 존'에서는 나무 구조물로 만든 실물 '스터디 벅(Study Buck·실험용 모형)'에 올라 차량의 시트 구성, 수납 공간, 콘솔 위치 등을 입체적으로 체험할 수 있다. 여기에 VR 기기를 더하면 차 안에 실제로 앉은 듯한 몰입형 인터페이스 UX까지 경험 가능하다.
'UX 검증 존'에서는 주행 시뮬레이터에 탑승해 조작 반응성과 시선 분산 정도를 측정하는 시스템이 마련돼 있다. 사용자는 그저 한 바퀴 주행을 돌았을 뿐인데, 현대차는 이를 통해 기능 이해도, 조작 편의성, 시야 확보성 등 정량적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는 것.
이러한 상시 리서치 구조는 완성차 업계에서도 처음 시도되는 방식이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단순한 제품 테스트가 아닌 고객 경험 자체를 설계의 출발점으로 삼는 체계"라고 설명했다. 브랜드가 사용자를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사용자와 함께 설계하는 방식으로 패러다임이 바뀐 셈이다.
기술 진화도 고객 손끝에서 확인
체험 범위는 하드웨어에 그치지 않는다. 오픈랩 내 'SDV 존'에서는 현대차그룹의 최신 SDV(Software Defined Vehicle) 기술이 집약된 테스트베드 차량도 만나볼 수 있다. 기존 차량은 제어기가 분산돼 있어 새로운 기능을 추가하거나 구조를 바꾸려면 하드웨어 수정을 동반해야 했다.
하지만 이번에 도입된 'E&E 아키텍처'는 제어 장치를 고성능 컴퓨터(HPVC)와 존 컨트롤러로 통합해 업데이트만으로도 차량 기능을 확장·변경할 수 있는 구조다. 이 구조 덕분에 차량은 지속적인 진화를 전제로 설계되며 물리적인 부품 수와 배선을 줄여 경량화에도 유리하다.
같은 공간에는 현대차그룹의 차세대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플레오스 커넥트(Pleos Connect)'도 탑재돼 있다. 안드로이드 오토모티브 OS 기반으로 작동하며 모바일 기기와의 연결성과 UI 응답성이 강화된 것이 특징이다.

특히 인상적인 기능은 음성 기반 AI 어시스턴트 '글레오 AI(Gleo AI)'다. "에어컨 온도 낮춰줘" "충전소 찾아줘" 같은 명령에 실시간으로 반응하며 단순 명령어가 아닌 맥락 인식까지 가능하다는 점에서 기존 음성인식과는 결이 달랐다. UX 스튜디오에서는 이 AI 인터페이스를 실제 조작해보며 반응 속도와 직관성, 적응성을 직접 평가할 수 있다.
2층에 위치한 '어드밴스드 리서치 랩(Advanced Research Lab)'은 오픈랩과는 성격이 다르다. 상시 개방되지 않는 연구 전용 공간으로, 사전 모집된 사용자에 한해 방문 가능한 몰입형 실험실이다. 이날은 취재 목적으로 사전 허가를 받아 공간 일부를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가장 핵심적인 공간은 '시뮬레이션 룸'이다. 테스트용 차 모형에 탑승하면 차가 움직이는 듯한 진동이 전해지고 전방에는 넓게 휘어진 초대형 화면이 펼쳐진다. 서울, 샌프란시스코, 델리 등 실제 도시 도로가 화면 속에 그대로 구현돼 운전자가 도심을 주행하는 것처럼 몰입할 수 있다. 서킷 환경도 지원돼 고성능 차량의 주행 UX도 실감 나게 검증할 수 있었다.
탑승자가 핸들을 돌리고 버튼을 누르고 화면을 바라보는 동안 내부에 설치된 센서가 시선과 조작 동작을 실시간으로 기록한다. 이 데이터는 모두 저장되는데, 어떤 기능이 더 직관적인지 어떤 위치에 정보가 있어야 주행 중 시선이 덜 분산되는지 등 사용자 관점에서의 사용성을 정량적으로 분석하는 데 활용된다.
이 시뮬레이터는 단순 체험용이 아니라 실제 차량 UX를 설계하고 개선하는 데 쓰이는 도구다. 옆 공간인 '피쳐 개발 룸'과 'UX 캔버스'에선 자율주행차나 고성능 모델 등 다양한 주제의 UX 콘셉트가 논의되고 그 아이디어는 곧바로 시뮬레이션 룸으로 넘어와 테스트된다. 연구와 실험을 동시에 반복하는 구조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이같은 방식을 통해 "사용자 경험을 빠르게 설계하고 검증하는 연구개발(R&D) 순환 체계를 갖췄다"며 "누적된 사용자 데이터를 UX 연구 과정에 적극 활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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