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K-기업 미국 전략, 현대차 사태가 던진 "투자 딜레마"
프라임경제 | 2025-09-16 10:24:24
프라임경제 | 2025-09-16 10:24:24
[프라임경제] 미국 조지아 주 현대자동차(005380) 배터리 공장에 대한 대규모 비자 단속은 단순한 일정 지연이 아니라 한국 기업들의 대미 투자 전략 전반을 흔드는 변곡점이 되고 있다. 합법 비자 인력까지 구금된 이번 사태는 현지 생산기지 확대를 전제로 한 경영계획이 얼마나 불안정한 토대 위에 놓여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줬기 때문이다.
굵직한 대미 투자 기업들은 앞 다퉈 일정 재점검과 리스크 관리에 들어갔으며, 이제는 보조금 유인에 기댄 단일 시장 집중 전략을 넘어서는 포트폴리오 다변화와 운영방식의 근본적 전환이 불가피해졌다.
◆"재점검 모드" 단기 차질 최소화·인력 리스크 대응
호세 무뇨스 현대차 대표이사 겸 글로벌 COO는 최근 기자회견에서 "비자 단속 여파로 LG에너지솔루션(373220)과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이 최소 2~3개월 지연될 것이다"라고 공식 인정했다.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의 단속으로 400명 이상이 체포되면서 현대차 조지아 공장은 당장 일정 조정이 불가피해졌다. 합법 B-1 비자 소지자까지 단속 대상에 포함되면서 '합법·불법의 경계가 모호한 규제 환경'이 드러난 점은 기업 경영 차원에서 더 큰 충격이다.
현대차는 단기적으로 인력 교체와 공정 재배치를 통해 일정 차질을 최소화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업계는 이를 구조적 리스크로 해석한다. 향후 현대차는 비자 검증과 체류 관리 절차를 강화하고, 현지 인력 비중을 늘리면서도 숙련 인력은 본사 차원에서 더 엄격하게 관리할 것으로 관측된다.

공급망 차질을 줄이기 위해 협력사와의 공조도 강화될 전망이다. 대표적으로 SK온의 조지아 커머스 공장은 현대차가 당분간 배터리를 안정적으로 조달할 수 있는 거점으로 부상했다.
SK온은 현대차와의 협력 관계를 발판 삼아 발 빠른 대응에 나섰다. 이번 사태 직후 B-1 비자 인력의 정상 근무 가능성을 공식 안내하고 복귀 검토에 착수한 것이다. 위기상황에서 현대차와의 파트너십을 강화하는 전략적 선택으로 평가된다.
반면 LG에너지솔루션은 합작공장이 있는 조지아 주를 비롯해 △애리조나 주 △미시간 주 △오하이오 주 등 대규모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지만, 합법 비자 인력조차 숙소에 대기시키며 신중한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삼성SDI(006400)도 인디애나 주에서 스텔란티스·GM과 합작 공장을 건설 중으로, 이번 사태를 계기로 인력 수급과 규제 변수 관리에 집중하는 분위기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이번 사태는 단순 공사 차질이 아니라 대미 투자 구조 전반을 다시 점검하라는 신호다"라며 "포트폴리오 다변화와 지역 리스크 분산이 중요해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반도체 기업들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삼성전자(005930)는 텍사스 주에 370억달러(약 51조6000억원)를 투입해 파운드리 공장을 건설 중이며, SK하이닉스(000660)는 인디애나 주에 38억7000만달러를 투자해 HBM 후공정 공장을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두 기업 모두 초기 세팅 과정에서 필수적인 한국·아시아 숙련 인력의 파견이 불가피해진 탓에, 이번 단속으로 드러난 이민 규제 불확실성은 반도체 공정 일정에도 직격탄이 될 수 있다.
반도체업체 관계자는 "반도체 산업은 공정 자체가 고도의 기술집약적이라, 초기 세팅에 필요한 한국·아시아 인력의 합법적 파견이 불가피하다"며 "이민 규제 불확실성은 생산 일정에 직결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구조적 취약성…정치·노동 리스크 상시화
이번 단속은 단순한 치안 문제가 아니다. 지난 조 바이든 행정부가 IRA(인플레이션 감축법)를 통해 외국 기업 투자를 유인했던 한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복귀 이후 강경 이민 단속이 병행되면서 정책 모순이 노출되고 있다. 한국 기업들은 '고용창출과 보조금'이라는 당근과 '노동·정책 리스크'라는 채찍을 동시에 맞는 구조에 갇혔다.
결국 현대차 사태는 단순히 한 기업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기업 전체의 미국 투자 모델이 안고 있는 구조적 취약성을 드러냈다. 단기적으로는 각 기업이 전략 수정과 인력 교체로 대응하겠지만, 장기적으로는 △현지 인력 양성 △정부 간 제도 협의 △투자 지역 다변화 같은 해법이 필수적이라는 점이 분명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기업별 대응을 넘어서는 '팀 코리아' 차원의 공동 대응이다. 단속과 같은 변수는 특정 업종이나 기업에 국한되지 않고, 한국 전체의 대미 투자 신뢰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단순한 일정 수정이 아니라 한국 기업들의 미국 투자 전략 자체를 다시 설계하는 일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시각 주요뉴스
이시각 포토뉴스


- 한줄 의견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