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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서엔 5% 인상, 뒤로는 월세… 전세난민의 분노
파이낸셜뉴스 | 2021-07-25 19:53:05
임대차법 1년, 혼돈의 전세시장"정부는 우리의 현실을 모른다"
집주인과 실랑이 하던 세입자
부인 이름으로 '새 계약서' 써
"많이 올려도 이사 안간게 다행"


"전세 갱신율 77.7%요? 그렇겠죠. 세입자들은 어떻게든 더 살고 싶으니까요. 그런데 그 숫자가 다일까요? 현실도 모르고 자화자찬하니 짜증을 넘어 실소가 나옵니다."

2년 전 지어진 서울 서초동 한 아파트에 첫 임차인으로 들어간 A씨는 이달 초 우여곡절 끝에 전세계약을 연장했다. 전셋값으로는 법정 상한인 5%를 올려주고, 추가로 매달 100만원을 집주인에게 '위로금' 명목으로 별도 지급하는 조건이었다. 이 위로금은 임대차 계약서상에는 잡히지 않지만 엄연히 A씨가 마주한 '현실'이다.

A씨는 올 들어 계속 불안했다. 정부는 세입자가 원하면 법적으로 계약갱신 청구권을 쓸 수 있다고 했지만 걱정 속에 살아야 했다. '집주인이 들어온다고 하면 어쩌지' '2년이 지나고도 계속 살고 싶은데 정말 5%만 올려도 될까' '나가 달라고 하면 위로금은 얼마나 받지' 등 평소엔 해보지 않던 고민들이 A씨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기존대로라면 계약 만료시점에 시세에 맞게 집주인과 상의해 적정선을 찾으면 됐던 전세계약이 '수(手)싸움'으로 변질된 느낌이었다.

불안은 현실이 됐다. 올 초 계약 만료를 반년 이상 앞두고 집주인이 전세금을 5%밖에 못 올릴 바엔 직접 살겠다는 뜻을 전달했다. 2년 전 A씨가 9억원에 계약한 이 아파트 전용면적 83㎡ 전셋값은 1년반 만에 16억원으로 뛰어올랐다. 집주인은 "5%인 4500만원을 올려 받느니 그냥 들어와 살겠다"며 사실상 웃돈을 요구한 것이다. A씨는 25일 "아쉬운 쪽이 세입자니 맞춰야 하는 것 아니냐"며 "위로금도 우리가 먼저 제안했다"고 털어놨다.

정부가 임대인의 주거안정과 임대차 시장의 투명성을 높인다는 명분으로 지난해 7월 말 임대차2법(계약갱신청구권·전월세상한제)을 도입한 지 1년이 됐다. 정부는 임대차계약 갱신율이 법 시행 1년 전 평균 57.2%에서 시행 후 77.7%로 상승했다는 수치를 내세워 "임차인 다수가 제도 시행의 혜택을 누렸다"고 홍보했다. 전세 갱신율이 높아졌고, 평균 거주기간도 증가해 임차인의 주거안정성이 크게 제고됐다는 것이다.

표면적으로 갱신율은 높아졌지만 분쟁도 급증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임대차분쟁위원회의 분쟁 상담건수는 2020년 689건에서 올해 현재까지 2936건으로 폭증했다. LH 임대차 분쟁위 한 관계자는 "임대차법 원상회복과 갱신요구권이 가장 빈번한 상담사례"라고 말했다.

정부는 임대차2법 시행 이후 계약 갱신율 상향에 도취된 분위기이지만 전월세상한제 기준인 5%를 초과한 재계약들이 시장에서 속출하고 있다. 전셋값을 시세에 맞게 올리지 못하게 된 집주인들이 직접 거주하겠다고 배수진을 치면서 월세 형식으로 웃돈을 얹어주거나 중간범위에서 절충점을 찾아 계약을 갱신하는 형태들이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올 1월 경기 하남시 풍산동의 한 아파트(전용 84㎡)에 전세로 거주하는 B씨는 집주인으로부터 "아들을 거주시킬 것"이라며 나가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이 단지 아파트 전세 시세는 당시 7억원대였다. A씨의 2년 전 임대보증금은 3억9000만원이었다. 집주인은 도저히 3억9000만원의 5% 인상분(약 1950만원)을 납득할 수 없다는 뉘앙스를 풍겼다.

B씨의 자녀는 올해 인근 초등학교에 입학해 다른 동네로 이사는 엄두가 안났다. 결국 B씨는 계약 만료 직전까지 집주인과 실랑이를 벌이다 전세금을 2억원 인상키로 합의했다. B씨는 "5%를 훨씬 넘겨 계약했지만 오히려 고맙더라"면서 "당장 이사를 가지 않아도 되고, 5억9000만원이면 주변 시세와 비교해 그나마 낮은 가격이니까"라며 씁쓸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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