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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50대 퇴직연금 10억 받는데…韓 50대는 '노인 공공 알바'
한국경제 | 2021-07-25 22:06:29
[ 이태훈 기자 ] 미국 식품회사에서 일하는 50대 후반 프리츠는 10만달러(약
1억1500만원)의 연봉을 받고 있다. 1985년 직장생활을 시작한 그의 퇴직연금 계
좌에는 94만달러(약 10억8000만원)가 들어 있다. 2023년께 은퇴할 예정인 그는
“퇴직 기념으로 아내와 석 달간 스페인 여행을 할 계획”이라고 말
했다.

프리츠와 비슷한 또래인 이모씨는 2017년 다니던 건설회사를 퇴직했다. 중동 현
지 사무소장을 지냈고, 한때 연봉이 1억원을 넘었지만 건설경기가 나빠져 회사
를 그만뒀다. 그는 최근 정부가 50대 이상에게 제공하는 ‘노인 공공 알바
’ 자리를 얻었다. 이씨는 “퇴직연금으로 월 40만원 정도를 받고 있
다”며 “8년 후 국민연금이 나오기 전까지는 일을 해야 먹고살 수
있다”고 했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와 머서코리아가 한국과 미국의 50대 후반 직장인의 퇴직연
금 운용을 비교분석해 내놓은 한 사례다. 이들의 ‘노후 삶의 질’을
가른 건 퇴직연금이다. 프리츠는 주식형 펀드 위주로 투자해 연평균 8% 정도의
수익률을 올렸다. 이씨는 원리금 보장형 상품(저축성 예금)에 돈을 묻어뒀다.


한국경제신문과 미래에셋증권이 30~50대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를 보면 퇴직연금에서 원리금 보장형 상품이 차지하는 비중이 90~100%라고 응답
한 비율이 21.3%로 가장 높았다. 투자 비중을 모른다고 답한 비율도 15.4%였다
. 퇴직연금 가입 상품을 한 번이라도 교체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68.4%가
없다고 답했다.

주식시장 급등에도 국내 퇴직연금의 지난해 수익률은 2.58%에 그쳤다. 전체 연
금의 89.3%가 저축성 예금에 들어가 있는 게 문제였다. 미국의 대표적 퇴직연금
인 401k의 지난해 수익률은 14.85%였으며 원리금 보장형 비중은 약 4%에 불과했
다.

김혜령 하나금융 100년행복연구센터 연구위원은 “저축성 예금에 퇴직연금
을 넣어두면 안정적이라고 느껴지겠지만 미래 소득은 그만큼 불안정해진다&rdq
uo;며 “은퇴 후에도 창업이나 재취업을 해야 한다는 조급함을 느낄 수밖
에 없다”고 말했다.
韓, 퇴직연금 89% '원금보장형' 묻어놔 … 美, 투자상품에 96%
굴려
韓 퇴직연금이 '노후 안전판'?
한국의 중장년층은 트라우마를 갖고 있다. “주식하면 망한다.” 작
년 주가 급등으로 이런 인식은 많이 변했다. 하지만 여전히 이 트라우마가 지배
하는 영역이 있다. 퇴직연금이다. ‘퇴직연금 운용계좌에서는 잠시라도 원
금 손실이 발생해선 안 된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다. 쥐꼬리만 한
이자에도 원금보장형 상품에 돈을 묻어두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퇴직연금을 묻
어두는 것과 굴리는 것의 차이에 대해 “노후 빈곤과 여유를 가르는 기준
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는 숫자로도 드러난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퇴직연금을 포함한 공&midd
ot;사적 연금의 소득대체율(연금 가입기간 순소득 대비 연금 비율)은 43.4%로
은퇴 전 소득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미국은 이 비율이 83.7%, 프랑스는 7
3.6%, 독일은 68.0%, 일본은 61.5%였다. 굴리는 것과 묻어두는 것의 차이를 보
여주는 실제 사례는 차고 넘친다. ○퇴직연금 3억원 모은 호주 40대
50대 중반에 명예퇴직한 정모씨(61)는 퇴직연금을 예금으로만 운용했다. &ldqu
o;주식을 했다 크게 손실을 본 경험이 있어 원금 손실이 날 수 있는 펀드는 쳐
다도 안 봤다”고 했다. 그는 회사를 나올 때 1억원 정도의 퇴직연금을 일
시불로 받아 아들의 전세자금 마련에 보탰다. 이후 생활비 마련을 위해 공인중
개사 자격증을 따고, 구청에서 하는 컴퓨터 교육도 받았지만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다. 직장생활을 하는 아내도 1년 후면 정년퇴직을 한다. 정씨는 “현
재 살고 있는 아파트를 처분하거나 주택연금을 받는 것을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마지막 자산을 담보로 노후자금을 마련해야 할 상황에 처했다.

대부분의 중장년층은 퇴직하고 나서야 퇴직 준비가 안 돼 있음을 깨닫는다. 직
장생활 28년째인 50대 중반 박모씨는 동료들의 퇴직연금 수익률을 듣고 깜짝 놀
랐다. 연평균 8~9%대는 수두룩했다. 본인은 1.2%였다. 적립금의 98%가 원리금
보장형 상품에 있었기 때문이다. 박씨는 “일이 바빠 퇴직연금이 어디에
얼마나 들어가 있는지 보지도 못하다 최근에야 확인했다”고 했다. 무관심
속에 수많은 예비 퇴직자의 연금 수익률은 1% 안팎에 머물고 있다.

퇴직연금 컨설팅 업체 머서코리아를 통해 해외 사례를 알아봤다. 호주 시드니에
서 직장을 다니는 로건 씨(45)는 40대 중반의 나이에 벌써 퇴직연금이 35만400
0호주달러(약 2억9800만원)가 쌓였다. 연봉 12만호주달러(약 1억원)를 받는 그
는 회사에서 넣어주는 법정 적립금 외에 여윳돈을 추가 납입해 매년 1만4000호
주달러(약 1200만원) 정도를 적립했다. 주식형 펀드와 부동산 펀드 등으로 돈을
굴려 연평균 6% 정도의 수익률을 올렸다. 로건 씨는 “60세 은퇴 시점에
110만호주달러(약 9억3000만원)를 모아 퇴직 후 매년 7만호주달러(약 5900만원
) 정도를 받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와 머서코리아를 통해 수집한 사례를 분석해보면 미국 호주
등 ‘연금 선진국’의 근로자들과 한국 근로자들은 퇴직연금을 바라
보는 시각의 차이가 컸다. 한국 근로자들은 퇴직연금이 ‘최후의 안전판&
rsquo;이기 때문에 보수적으로 운용해야 한다는 믿음이 있었다. 반면 미국과 호
주 근로자들은 퇴직연금 적립금을 ‘종잣돈’으로 여기고 적극적으로
투자에 나서고 있었다. ○한국은 89%가 원금 보장형에

미국과 호주 근로자들이 퇴직연금을 공격적으로 운용하는 이유는 절세 효과 때
문이다. 퇴직연금 계좌에 납입한 원금과 운용수익은 은퇴 후 인출하기 전까지
과세하지 않는다. 세금으로 빠져나가지 않은 돈으로 추가 투자할 수 있어 일반
계좌로 투자하는 것보다 유리하다. 미국은 지난해 연금계좌에 100만달러(약 1
1억5000만원) 이상이 들어 있는 ‘연금 백만장자’가 26만 명이 넘었
다.

한국도 미국 호주와 비슷한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연금계좌를 통해 금융상품에
투자하면 금융소득이 발생해도 인출 전까지 과세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 같
은 제도를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근로자는 극소수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
해 퇴직연금 적립금의 89.3%가 원리금 보장 상품에 들어 있었다. 개인이 퇴직연
금 상품을 직접 고를 수 있는 확정기여(DC)형도 83.3%가 원리금 보장 상품에 방
치돼 있었다.

송홍선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국내 퇴직연금 시장은 원리금 보
장 상품 비중이 수년간 90% 안팎을 차지하는 ‘위험으로부터의 도피&rsqu
o; 현상이 고착화됐다”며 “투자 포트폴리오와 자산 배분에 대한 근
로자의 이해도를 높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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