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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눈의 이방인의 시선으로 본 '격동의 조선'
한국경제 | 2018-11-15 20:04:25
이따금 옛일을 기록한 책을 읽는 일은 도움이 된다. 현재의 어려움을 객관적으
로 바라볼 수 있게 하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주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
모습을 객관적으로 이해하는 데도 도움을 준다. 1888년에 내한한 캐나다 선교
사 제임스 S 게일의 《조선, 그 마지막 10년의 기록》(책비)은 구한 말 우리의
모습을 기록한 보기 드문 책이다.

한국을 찾은 선교사들이 펴낸 다양한 책이 있었지만 이들 가운데서도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다. 그 이유가 있다. 그는 선교사 임무를 수행하면서도 어느 학자
에 못지않을 정도로 수많은 한국 관련 논문과 40여 권이 넘는 국·영문
한국 서적을 펴낸 인물이다. 이 책을 번역한 역자는 그를 두고 “오늘 이
땅에 살고 있는 우리들 대다수보다 이 땅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더 해박했던
사람”이라고 평가한다.

이 책의 원저는 1888년에 입국한 게일 선교사가 1898년에 《코리안 스케치》라
는 제목으로 미국과 영국, 캐나다에서 출간했다. 이 책은 철저하게 발로 뛰어서
쓴 기록물이란 점에서 특별하다.

첫인상, 상놈, 압록강, 빈곤에서 풍족까지뿐만 아니라 조선의 조랑말과 방방곡
곡, 조선 보이, 양반, 조선 사람의 사고방식, 선교 관련 등의 소주제 밑에 흥미
로운 이야기들이 가득 차 있다. 이 가운데 특별히 인상적이었던 몇 대목을 소개
한다. “조선의 고질병은 바로 일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이었다&rdqu
o;며 “아무것도 하지 않고 손을 놓고 앉아서 시간을 허비하고만 있는 이
나라”라고 서술한 부분이 있다. 그가 일 때문에 굳은살이 박인 손을 가
진 곽씨라는 사람을 만난 이후에 그를 보면서 떠오른 단상을 정리한 대목이다.


“조선에서 ‘독립’이란 말은 새로운 개념”이라며 &ldq
uo;단어 또한 그 개념을 표현하기 위해 새로 만든 것”이라고도 설명한다
. 그는 “이곳 사람들은 한 번도 다른 존재로부터 분리된 오롯한 자신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고 덧붙인다. 집단주의가 한민족뿐만 아니라 인간
의 원형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저자의 예리한 관찰력도 돋보인다. 그는 “서양 세계에서 넓은 국토에 집
이 한 채 한 채 그렇게 서 있듯 개인도 자신의 책임하에 홀로 살아가는 반면 동
방의 사람들은 함께 일하고 집도 마을을 이루면서 반드시 함께 들어선다&rdquo
;고 소개한다. 성장과 발전에 필수적인 개인주의라는 덕목은 근현대화의 산물이
었음을 알 수 있다. ‘연대’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이 시대에 우리의
원형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거리를 제공하는 저자의 관찰기다.

“조선에는 제대로 된 나무가 전혀 없었다”며 “물론 과거에는
분명히 숲이었을 곳들이 일부 남아 있긴 했지만 나무로 빽빽이 들어선 곳은 전
혀 남아 있지 않았다”는 부분도 눈길을 끈다. 재산권의 부재가 가져온 현
상이었을 것이라고 이해된다. 책을 읽는 내내 우리가 누리는 것들을 너무 당연
하게 여기는 지금의 우리 모습이 겹쳐졌다. 정말 보잘것없는 곳에서 우리가 일
어서 오늘을 이루게 됐음을 상기시켜 주는 책이다.

공병호 < 공병호연구소 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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