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실시간 속보창 보기
  • 검색 전체 종목 검색

주요뉴스

[단독] 정부 '국회 견제' 피하려 시행령 고쳐 기업 규제
한국경제 | 2019-10-16 01:08:09
[ 김우섭/성상훈/고은이 기자 ] 정부가 국회를 건너뛰고 기업 규제 강화를 추
진해 논란이 일고 있다. 야당의 반대로 규제 관련법 개정이 어려워지자 정부가
시행령만 바꿔 기업 활동을 옥죄려는 ‘편법 시도’에 나서면서 기
업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15일 더불어민주당에 따르면 한국경영자총협회와 한국상장회사협의회는 정부의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에 반대하는 내용의 건의서를 금융위원회와 국회에 16
일 제출하기로 했다. 개정안의 핵심은 연기금의 ‘주식 5% 대량 보유 보고
(5%룰)’ 제도를 완화하는 것이다. 국민연금이 기업에 지배구조 개선을 이
유로 정관 변경을 요구하더라도 경영 참여로 보지 않도록 했다. 시행령이 개정
되면 국민연금은 주식 매입 사실을 5일 이내에 공시해야 하는 투자상 제약을 피
할 수 있고, 정관 변경을 통해 집중투표제 노동이사제 등을 기업에 관철시킬 수
있게 된다. 시행령 개정안은 16일까지 입법예고하고 연말께 시행할 예정이다.


경제계와 야당은 ‘꼬리’(시행령)가 ‘몸통’(상위법)을
흔드는 격이라며 헌법소원까지 검토하고 있다. 정부의 시행령 개정안이 상위법
인 자본시장법은 물론 헌법에 위배된다는 지적이다. 전삼현 숭실대 법학과 교수
는 “자본시장법(147조 1항)에 정관 변경은 경영권 영향 사항이라고 못 박
고 있다”며 “시행령에서 예외를 두는 건 경영권 침해이자 상위법
위반”이라고 설명했다.

경제계는 상법을 개정해야 가능한 집중투표제 도입도 정부가 자본시장법 시행령
을 고쳐 시행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다음달 시행되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시행령 개정안을 통해선 위법 행위를 한 대주주의 경영 참여를 금지하는 등 경
영권 박탈에 가까운 규제를 가할 수 있다. 전 교수는 “정부가 시행령만
바꿔 기업 활동을 간섭하는 것은 민간기업 경영을 국가기관이 통제할 수 없도록
한 헌법 126조도 위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특경가法' 통과 어렵자 시행령 슬쩍 바꿔
기업인 경영 복귀 차단

여야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마지막으로 상법을 논의한 것은 1년11개월 전
인 2017년 11월 20일이다. 이후 법사위 전체회의와 법안소위에서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상법을 논의한 적이 없었다. 대형 복합쇼핑몰 입점을 규제하는 유통산
업발전법 등 다른 경제민주화 법안들도 진도가 안 나가긴 마찬가지였다. &lsqu
o;조국 사태’로 국회 파행이 길어진 점도 원인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국회 입법에 매달리던 정책 기조를 180도 바꿔 시행령 개
정으로 비슷한 효과를 내겠다는 전략으로 선회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ld
quo;시행령 개정을 통하더라도 얼마든지 입법 효과를 낼 수 있다”며 &ld
quo;20대 국회가 끝나는 내년 4월까지 계속될 것”이라고 전했다.


시행령으로 ‘기업 옥죄기’ 나서나

15일 정부 부처와 경제계에 따르면 정부가 시행령 개정을 통해 ‘기업 옥
죄기’에 나선 사례는 적지 않다. 지난 4월 국무회의를 통과하고 다음달
8일 시행되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시행령 개정안이 대표적이다. 특경가법
14조는 5억원 이상 배임·횡령 등의 혐의로 유죄가 확정되면 범죄행위로
이익을 준 기업체에 대한 취업을 금지하는 법안이다. 경쟁 기업에 이익을 주고
, 이직하는 걸 막기 위해서다.

하지만 개정된 시행령에선 배임·횡령죄로 기업에 손해를 끼친 임직원은
해당 기업에 복귀하지 못한다는 내용이 새롭게 추가됐다. 범죄를 저지른 재벌
총수일가가 회사에 남아선 안 된다는 시민단체의 건의가 반영됐다. 이로 인해
횡령·배임 혐의로 재판받고 있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유죄가 확
정되면 경영 일선에 복귀할 수 없게 된다.

경제계는 시행령 개정으로 취업을 제한하는 건 상위법 위반이라고 지적하고 있
다. 한국상장협의회 관계자는 “당초 법 취지는 자신이 속한 회사가 아니
라 다른 회사로 취업하는 걸 막기 위한 규정”이라며 “취업 제한이
아니라 사실상 경영권 박탈과 같은 효과를 내기 때문에 하위법이 새롭게 규정
할 수 없다”고 했다.

법학자들도 개인의 직업 선택 자유를 침해한 헌법 위반이라고 주장한다. 최원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상위법에 없는, 자신이 속한 기업 복
귀를 금지하는 건 명백한 헌법 위반”이라고 지적했다. 대기업의 한 법무
담당 임원은 “시행령 개정이라 지금은 주목을 덜 받고 있지만, 형사처벌
을 받은 총수의 경영권 박탈로 이어질 수 있어 기업 경영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부의 편법 규제에 ‘위헌 소지’ 비판

정부의 ‘연기금의 5% 룰 완화 방안’도 위법 논란이 일고 있다. 정
부는 국민연금 등 연기금이 정관 변경을 요구해도 경영권 행사가 아니라고 규정
한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안을 지난달 5일 발표했다. 입법 예고가 끝나면 연말
께 시행할 예정이다. 그러나 경제계는 “자본시장법 147조 1항에 정관 변
경은 ‘경영권 영향’ 사항이라고 규정하고 있어 상위법에서 정한 사
항을 시행령에서 예외적으로 제외할 순 없다”고 반발하고 있다.

정부는 스튜어드십 코드(기관투자가의 의결권 행사지침)를 도입한 국민연금 등
기관투자가에 투자상 혜택을 줄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경영 참
여 목적으로 분류되면 주식 변동 사항을 5일 안에 보고하고, 단기 매매 차익을
실현(10% 룰)한 경우 이를 기업에 반환해야 한다. 사실상 단기 매매가 불가피
한 기관투자가로서 활동할 수 없는 조치여서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재계 관
계자는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을 위해 기업들의 경영권이 왜 침해돼야 하
는지 모르겠다”며 “정관 변경을 통해 집중투표제나 노동이사제 등
무리한 요구를 할 텐데 걱정”이라고 토로했다.

사외이사의 독립성을 높이기 위해 한 회사에 6년 이상, 계열사에 합산 9년 이상
재직하는 것을 금지한 상법 시행령 개정안도 다음달 시행된다. 일정 기간을 정
해놓고 무조건 연임하지 못하도록 금지하는 것은 헌법상 직업 선택의 자유(15조
)를 침해한다는 지적이다. 더불어민주당이 국토교통부 훈령을 고쳐 복합쇼핑몰
의 월 2회 의무 휴업을 강제하는 규제를 추진하는 것도 법 위반 소지가 있다.

정부가 법이 아닌 시행령과 시행규칙 개정을 통한 ‘기업 옥죄기’에
나서면서 경제계는 초긴장 상태다. 법 개정은 국회에서의 공론화 과정을 거치
고 야당의 반대를 뛰어넘어야 하지만 시행령 개정은 정부 의지만으로 충분히 가
능하기 때문이다.

김우섭/성상훈/고은이 기자 duter@hankyung.com


ⓒ 한국경제 & hankyung.
com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시각 주요뉴스
  • 한줄 의견이 없습니다.

한마디 쓰기현재 0 / 최대 1000byte (한글 500자, 영문 1000자)

등록

※ 광고, 음란성 게시물등 운영원칙에 위배되는 의견은 예고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

오늘의 이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