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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신격호 이후 롯데…어디로?] 1. ‘껌’으로 시작한 롯데 신화
SBSCNBC | 2020-01-25 09:09:43
■ 취재파일 

▶[송태희 / 앵커]
고 신격호 명예 회장은 가난하던 시절, 꿈이 없던 시절 풍선 껌 하나로 시작해 재계 5위의 대그룹을 일궜습니다.

하지만 신동주, 신동빈 두 아들의 경영권 다툼으로 말년은 불운했습니다. 

기자들과 함께 그가 우리 경제에 남긴 의미부터 알아보죠. 

김성훈 기자, 롯데그룹 창업주 고 신격호 명예회장의 마지막 길은 어땠나요?

▷[김성훈 / 기자]
고 신격호 명예회장은 두 아들의 경영권 분쟁과정에서 중증 치매를 앓는다는 사실이 알려졌는데요.

경영권 분쟁이 발목을 잡아 경영 비리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구속 위기는 면했지만 건강이 악화됐습니다.
                      
결국, 99살로 생을 마감했는데요.

서울 잠실 롯데월드몰에서 열린 영결식장에서 두 형제는 부친을 회고했습니다.

[신동빈 / 롯데그룹 회장 : 아버지는 한마디로 정말 멋진 분이셨습니다. 역경과 고난이 닥쳐올 때마다 아버지의 태산 같은 열정을 떠올리며 길을 찾겠습니다.]

[신동주 /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 : 직원들과 롯데 고객과 약속을 지키기 위해 평생을 힘써 오셨습니다. 저희 가족들은 앞으로 선친의 가르침을 가슴 깊이 새기고 살아가겠습니다.]

영결식 후 고인의 30년 꿈이 서린 곳이자 말년에 잠시 머물렀던 공간이죠.

지상 123층, 롯데월드타워를 돌아보는 것을 마지막으로 신격호 명예회장은 영원한 안식에 들어갔습니다.
 
▶[송태희 / 앵커]
재계의 원로, 1세대였던 신 명예회장 빈소에는 재계의 조문행렬이 이어졌죠? 

▷[김성훈 / 기자]
네. 서울아산병원에 마련된 빈소에는 우리 경제 고도 성장기를 이끌었던 고 신 명예회장을 기리는 재계 인사들의 발길이 이어졌는데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시작으로 구광모 LG그룹 회장,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 유통 맞수였던 신세계 이명희 회장 등이 빈소를 찾아 애도했습니다.
                    
손경식 경영자총연합회 회장과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도 빈소를 찾아 고인의 업적을 기렸습니다.

[손경식 / 한국경영자총연합회 회장 : 항상 존경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우리나라 최고의 원로 기업인 중 한 명이시고, 이제는 전설적인 기업인이 되셨습니다.]

[박용만 /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 얼마나 힘든 과정을 거쳐 오늘날의 롯데를 이루셨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송태희 / 앵커]
고 신격호 명예 회장, 눈을 감을 때까지 결국 두 아들이 화해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의 죽음을 계기로 빈소에서 두 형제가 만났잖아요.

형제가 화해를 할 가능성 있습니까?

▷[이한나 / 기자]
신동주, 신동빈 두 형제가 재회한 건 1년 3개월 만인데요.
                   
재계에서는 형제가 화해를 하긴 힘들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입니다.

경영권 다툼 이후 갈등의 골이 깊기 때문인데요. 

함께 조문객을 맞고 장례 절차를 논의했지만 돌아가신 부친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는 것에 불과하다는 겁니다.

실제로 두 사람은 빈소는 같이 지켰지만 식사는 따로 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송태희 / 앵커]
형제의 경영권 분쟁 얘기는 잠시 후에 다시 해보기로 하고, 고 신격호 명예회장은 맨손으로 성공한 대표적인 창업 1세대죠?

▷[김성훈 / 기자]
네, 신격호 명예회장은 일본 와세다 대학 유학시절 우유배달을 했는데요.

배달 시간을 정확히 지킨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주문이 밀려들자 본인이 아르바이트 직원을 고용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고인의 성실성을 눈여겨 본 일본인 사업가의 지원을 받아 윤활유 사업을 시작했는데요. 공장이 미군의 폭격을 받으면서 제대로 해보기도 전에 접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해방 이후에도 일본에 남아 우유 배달과 공사장 막노동을 하며 돈을 모아 비누 크림을 만드는 사업을 했습니다.
                            
▶[송태희 / 앵커]
롯데를 일본에 세운 것이 언제죠?

▷[김성훈 / 기자]
1948년인데요. 처음으로 '롯데'란 간판을 달고 종업원 10명으로 껌 회사를 차렸습니다.
                       
당시 2차 대전 패전으로 배고팠던 시절에 껌으로 성공할 수 있겠냐는 회의적인 시선이 많았습니다.

▶[송태희 / 앵커]
게다가 당시엔 조선인에 대한 차별이 심했을 때인데 신 명예회장이 일본에서 성공할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이었나요?

▷[이한나 / 기자]
섬세하기로 소문난 일본인보다 더 섬세하게 껌을 개발했고, 독특한 판매 전략으로 일본시장 공략에 성공했습니다.

껌 제품 개발에 얽힌 일화 한 가지 소개하면요.

당시 일본의 남극 학술 탐험대가 탐험용 껌을 주문했는데, 기후 변화에 맞게 선상식과 기지식, 행동식, 비상식 등 4가지 용도로 개발했고요.

또, 조난 당할 때를 대비해서 구조대가 쉽게 위치 파악을 할 수 있게 까만색 빨간색 등 원색의 껌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송태희 / 앵커]
껌 하나를 정말 세심하게 만들었네요. 마케팅 전략도 특별했다고요?

▷[이한나 / 기자]
네, 일본 기업과 달리 판매전략도 차별화했는데요.

중앙이 아닌 밑바닥부터 다졌습니다.

소매점부터 장악한 뒤 중간 도매상, 지방 도매상, 대리점, 특약점을 본사와 연결하는 전략을 구사했습니다.

또, 담뱃가게와 약국까지 판매망을 개척하고 껌을 파는 만큼 돈을 더 주는 인센티브제도도 도입하는 등 공격적으로 일본 시장을 장악했습니다.                      
 
▶[송태희 / 앵커]
성공한 재일교포 사업가 신격호 회장, 고향 사랑이 남달랐다고요?

▷[김성훈 / 기자]
네, 고인은 경남 울산시 울주군 둔기리에서 태어나 이곳에서 고등학교까지 마쳤는데요.

1969년 고향마을이 댐건설로 수몰되자 1971년부터 40여년간 매년 5월이면 친지들과 마을 주민들을 불러 모아 위로 잔치를 열었습니다.
                           
▶[송태희 / 앵커]
일본에서 성공한 신격호 회장, 귀화를 하지 않고 고국에서 활동을 준비해 왔다고요?

▷[김성훈 / 기자]
네, 고인은 일본에서 사업 기반을 닦았지만, 고국에서의 사업도 준비했는데요.

생전에 한 인터뷰에서는 “한일회담 진행 과정을 지켜보면서 조국을 위해 무엇이든 해야겠다 생각했다”고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1965년 한일이 경제수교를 맺자 2년 후인 1967년 국내에 롯데제과를 세웠습니다.    
                         
▶[송태희 / 앵커]
유통 거인으로 불리는 고 신격호 회장, 국내에 백화점과 호텔사업에 기반을 닦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요. 

이렇게 관광산업에 투자를 한 이유는 뭔가요?

▷[이한나 / 기자]
네, 관광산업이 큰 자본을 들이지 않고 외화를 벌어들일 수 있다는 점 때문인데요

외국 관광객 유치를 위해 1973년에 도심에 롯데호텔을 짓고 그 후 자금줄 역할을 하는 면세점까지 들였습니다.
                 
롯데호텔과 롯데백화점 건립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특혜를 받았다는 지적이 있는데요.

1979년 세운 롯데백화점은 당시엔 사대문 안에 백화점 건립이 금지돼 있어 롯데 쇼핑이란 명칭을 썼습니다.
             
이후 우리나라 경제의 급성장과 한류 바람을 타고 롯데도 폭풍성장하게 된 겁니다.

▶[송태희 / 앵커]
잠실 롯데월드와 백화점은 언제 건립됐나요?

▷[이한나 / 기자]
네, 1984년 신 명예회장은 허허벌판이던 잠실에 호텔, 백화점, 놀이시설을 아우르는 잠실 롯데월드 건립을 추진했는데요.

누가 오겠냐며 반대가 많았지만 밀어붙였습니다.

결국, 잠실 롯데월드는 복합 쇼핑 명소로 인기를 끌었는데요.
                     
당시, 전통 시장으로 향하는 발길을 불러 모으기 위해 백화점 옆에 국내 최초로 할인마트를 만들어 쇼핑객 유치에 성공했습니다.

신 명예회장이 했던 “상권은 좋은 제품과 좋은 서비스로 만들어 나갈 수 있다. 롯데백화점 잠실점은 2년 안에 명동만큼 번화할 것”이란 말을 현실로 증명해 보인 것이죠.

▶[송태희 / 앵커]
하지만 정경유착설이 끊이지 않았죠?

▷[이한나 / 기자]
네, 당시 박정희 정권은 외자유치에 힘을 쏟고 있었는데요.

신격호 롯데 총괄회장이 재일교포라는 점을 이용해서, 외자특례법을 적용해 부동산 취득세, 재산세, 소득세 등 각종 세금을 대폭 면제해줬습니다.

롯데월드 역시 당시 88올림픽을 앞두고 전두환 정권의 한강개발 정책에 협조하기 위해 지었다는 말도 나왔고요.

123층 높이의 롯데타워 건설과정에서는 이명박 정권의 특혜설이 재연되기도 했습니다.
                         
▶[송태희 / 앵커]
논란은 있습니다만 롯데타워 건립은 고인의 마지막 공식 사업, 30년 숙원사업이었죠?

▷[김성훈 / 기자]
네, 신 명예회장은 "고국에 랜드마크를 짓겠다"며 1988년부터 '제2 롯데월드'란 이름의 초고층 건물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하지만 서울 도심 한복판에 지상 123층, 높이 555m의 초고층 건물을 지으려다 보니, 우여곡절도 많았습니다.
  
▶[송태희 / 앵커]
당시 인근 서울공항의 비행안전성 논란도 불거졌었죠?

▷[김성훈 / 기자]
맞습니다. 공군과 논란이 있었고. 교통대란과 주변 도로 침하로 인한 안전문제, 이명박 정권의 특혜 시비까지 이어졌습니다.

건설도면만 10번 넘게 바꾼 끝에 2017년, 만 30년 만에 완공할 수 있었는데요.

전 세계에서 5번째로 높은 이 롯데월드타워는 신 명예회장의 말처럼 롯데를 상징하는 랜드마크가 됐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동영상을 시청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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