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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김종인…보수 구원투수인가, 트로이의 목마인가
한국경제 | 2020-09-28 01:02:15
[ 좌동욱/고은이/김소현 기자 ] “도대체 정체가 뭐냐.” 정치인 김
종인을 말할 때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질문이다. ‘진보인
가 보수인가’ ‘시장주의자인가 사회주의자인가’라는 질문이
끊임없이 제기된다.

지난 25일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찾아간 것도 그의 경제철학과 정
치적 지향점이 궁금해서였다. 경제민주화를 주장하면서 보수 야당 비대위원장이
된 인물, 양쪽 진영에서 늘 정체성을 의심받았던 노회한 정치인…. 이날
만난 김 위원장은 “이제 국민의힘을 보고 보수정당이란 소리 하지 말라
”고 잘라 말했다. “(정당을) 지키기 위해선 변해야 하는데 지금 보
수는 진짜 보수가 뭔지를 모른다”고도 했다.

4년 전 더불어민주당 비대위 대표였던 그는 지난 6월 국민의힘 비대위원장 취임
이후 당 정강·정책에 경제민주화를 명시하는 등 광폭 행보를 이어오고
있다. 자유시장경제를 지지하는 보수진영 유권자들은 김 위원장의 행보에 의구
심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그는 인터뷰에서 “경제학원론 첫 장만 보면 시
장경제가 뭔지는 알 수 있다”며 “시장경제가 어떻게 변화하는지,
일반 국민의 성향이 어떻게 바뀌는지 따라가지 못한다면 그 정당은 실패한다&r
dquo;고 했다. 자유시장경제 가치를 지키기보다는 유권자 요구에 맞춰 정권을
가져오겠다는 의지가 먼저 읽히는 발언이다.

김 위원장은 그동안 경제민주화 실현을 위해서라면 어떤 정치세력과도 손 잡을
수 있다는 태도를 보여왔다. 노태우 정부에서 경제수석을 지낸 그는 2004년엔
새천년민주당 국회의원으로, 2012년엔 다시 새누리당의 총선과 박근혜 당시 대
통령 후보 지원에 나섰다. 2012년 김 위원장은 “내가 다른 후보(박 후보
)를 대통령 만들려고 나와 있지만 대선이 끝나고 (문재인 후보가 당선돼) 나를
필요로 하면 도와줄 수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그는 2016년엔 민주당
비대위 대표를 맡아 20대 총선 선거전략을 이끌었다.

김 위원장은 이날도 “국민의힘이나 민주당이나 따져보면 별로 다른 게 없
다”고 했다. 정부·여당이 추진하는 ‘기업규제 3법’에
대해서도 “그 사람들(민주당) 제대로 못 할테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rd
quo;고 냉소했다. '이념 정체성' 의심받는 김종인…"보수란
딱지가 뭐가 중요한가"
경제민주화 위해 수차례 당 바꿔
비례대표로만 5선을 한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4선을 지내는 동안
한 건의 법안도 발의하지 않다가 20대 국회 들어 처음으로 법안 하나를 대표발
의했다. 현재 ‘기업규제 3법(공정경제 3법)’ 중 하나인 상법개정안
이다. 김 위원장이 당시 대표발의한 법안엔 다중대표소송제 도입과 이사회 투명
성 제고 방안 등이 담겼다. 그는 인터뷰 내내 규제3법이 기업들의 경영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비판에 전혀 개의치 않는 모습을 보였다. “기업들,
사회 위해 뭐 했나”
그는 해당 법안에 대한 기업들의 우려에 “대한민국 경제를 자기네들(기업
들)만 걱정하는 줄 아느냐”며 “한국 경제 잘못되는 입법 안 할 테
니 걱정 말라”고 선을 그었다. 논의의 여지를 완전히 닫아버린 표현이다
. 기업들이 ‘엄살’을 부리고 있다는 인식도 확연히 드러냈다. 그는
“(기업규제 3법) 된다고 해서 기업 못 하냐고 묻는다면 아니다”며
“다 재주가 있어서 살아갈 수 있는 양반(대기업)들”이라고 했다.
“내가 과거에 다 경험해봤지만 법을 회피할 수단은 누구보다 많은 게 바
로 기업하는 사람들”이라고도 덧붙였다. 그러면서 “투명하게 경영
하고 사회적으로 지탄받을 짓을 안 하면 기업들이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그는 이전에도 여러 차례 기업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표출해왔다. 김 위원장을
잘 아는 한 중견기업 회장은 “헌법에 들어간 경제민주화 조항(119조2항
)을 (김 위원장이) 가장 자랑스러워 한다”고 전했다. 당시 거세게 반발했
던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과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과의 악연 등으
로 지금도 재벌에 대한 반감을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의 인식은 과거 노태우 정부 시절 경제정책을 주도하면서 ‘관치경제&r
squo;를 겪었던 경험 때문이라는 평가가 많다. 삼성이 과거 자동차 사업 진출을
위해 정관계에 요청한 것을 거론하면서 “이런저런 루트를 통해 로비를
하도 많이 벌이니까 노태우 전 대통령이 ‘그냥 그거 해주면 안 될까?&rs
quo;라고 조심히 물어봤을 정도”라며 “국가 경제의 합리성이란 개
념은 안중에도 없는 사람들”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그는 ‘시대가
달라져 기업들의 행동 방식이 변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도 “과거
에 한번 시스템이 그렇게 만들어진 이상 지속될 수밖에 없다”며 기업들이
달라지지 않았다는 의견을 내놨다.

김 위원장 스스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얘기하면서 시장에 반하는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때문에 보수정당의 핵
심 지지층은 그가 정말 보수의 대표가 맞는지 의문을 갖는다. 그는 이날도 손경
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이 지난 23일 찾아온 것을 언급하면서 “국가가
사회적으로 어려움에 처했을 때 기업들이 진정시키려는 노력을 했냐고 (손 회
장에게) 물었다”며 “미국은 부호들이 먼저 나와서 ‘우리한테
서 세금 더 걷어가라’고 했다”고 비교했다. 자유시장경제 가치 버
리나
김 위원장은 노태우 정부 경제수석으로 일하던 시절 재벌의 비업무용 부동산을
강제 매각하도록 한 조치를 단행했다. 이 조치는 지금까지도 역대 최강도의 재
벌규제로 평가받는다. 정주영 전 명예회장이 김종인이라면 자다가도 일어나 치
를 떨었다는 일화가 전해질 정도다.

그는 차기 대권에 보수정당 대표로 나설 인물에 대해 “당 안팎에 후보 너
덧 명이 있다”면서도 “지금 이 자리에서 이름을 공개할 수는 없다
”고 했다. 대신 “보수니 진보니 하는 엉뚱한 이분법에는 상관하지
않는다”고 진영을 열어놨다. 그는 국민의힘에 대해서도 “이제는
보수정당이란 소리 하지 말라”고 했다. “시대의 변화에 맞게 방향
을 설정하고 자유민주주의 정당이라 하면 되는 거지, 거기에다가 보수 딱지 딱
붙이려고 하면 안 된다”고 했다.

일각에선 기회가 온다면 김 위원장 스스로 대선에 나설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국민의힘의 한 중진의원은 “지난 8월 광주의 5·18 국립묘지 앞에
무릎을 꿇고 사죄하는 김 위원장을 지켜본 후 ‘대선 후보의 꿈을 버리지
않고 있나’라는 당내 관측이 크게 늘었다”고 전했다.

80세가 넘은 나이에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으로 나선 것부터가 경제민주화라는 자
신의 숙원을 이루기 위한 ‘마지막 승부수’를 던진 게 아니냐는 분
석이다. 단순히 국민의힘의 ‘법정관리인’ 역할을 넘어 정권 창출에
적극적으로 관여하려는 의지가 강하게 엿보인다는 평가다. 일각에선 그가 보수
진영이 오랫동안 지켜온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가치를 형해화시키는 &l
squo;트로이의 목마(몰락의 계기가 되는 결정적 사건)’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국민의힘 한 중진 의원은 “정권만 되찾아오면 된다는 목
표 아래 보수정당의 가치는 아예 저버려도 되는지 의문”이라며 “대
한민국 역사 속에서 발전시켜온 소중한 가치들이 근본부터 흔들릴까 겁난다&rd
quo;고 했다.

■ 김종인 대표는…

△1940년 서울 출생
△중앙고
△한국외국어대 독일어과
△독일 뮌스터대 경제학 석·박사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
△11·12·14·17·20대 국회의원
△보건사회부 장관
△대통령비서실 경제수석비서관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국민행복추진위원장
△건국대 경제학과 석좌교수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좌동욱/고은이/김소현 기자 leftki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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