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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보] 이건희 삼성 회장 별세
한국경제 | 2020-10-25 10:09:23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25일 별세했다. 향년 79세. 한국 경제사에 큰 획을 그
은 거인이 쓰러졌다. 삼성은 이날 "장례는 고인과 유가족의 뜻에 따라 간
소하게 가족장으로 치르기로 했다"며 "조화와 조문은 정중히 사양한
다"고 발표했다.

고(故) 이 회장은 산업은 물론 세상의 미래를 꿰뚫어보는 혜안을 갖기 위해 스
스로 끊임없이 탐구하는 ‘고독한 천재’이자 ‘탁월한 경영자
’였다. 이 회장이 취임한 1987년 세계 무대에서 주목받지 못했던 삼성은
20세기말 전자업계 최고 기업이었던 소니를 무너뜨렸다. 21세기 초 최고 기업
으로 평가받는 애플과 맞짱을 뜨는 유일한 기업으로 성장했다. 이 회장의 경영
능력이 없었다면 이뤄내지 못했을 성과다. 날카로운 직관력을 갖춘 ‘사
상가’이기도 했다. 그가 남긴 수 많은 말들은 시대의 화두를 던져 사회적
상상력을 자극했다. 한국 사회가 앞으로 나아가는데 기폭제 역할을 했다. 삼성
의 질주…위기와 변신
‘17조4000억원→390조원.’ 이 회장이 취임한 1987년에서 2013
년까지 삼성 그룹의 매출 변화다. 26년간 20배 넘게 성장했다. 1987년 세계 무
대에서 아무도 알아보지 못했던 삼성은 누구나 동경하는 일류 기업이 됐다. 이
기간 스마트폰, TV, 모니터, D램, 낸드플래시 등 수 많은 세계 1등 품목을 만
들어냈다. 10만명 남짓하던 임직원 수는 40만명을 넘었다. 이 회장의 삼성 경영
26년은 끊임없는 위기의식 속에서의 변신이었다. 어느정도 성장해도 결코 만족
하지 않고 ‘초일류’를 향해 내달렸다.

이 회장은 1987년 호암 이병철 회장이 세상을 등진 뒤 회장으로 추대됐다. 재계
에선 당시 45세에 불과한 이 회장이 창업주인 선친 이병철 명예회장의 그늘에서
한동안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이 회장은 “세기말적
변화가 온다. 초일류가 아니면 살아남을 수 없다”며 ‘제2의 창업
’을 선포했다. 1983년 자신의 사재를 털어 시작한 메모리 반도체 사업을
1993년 세계 1위(D램 부문)에 올려 경영능력을 인정받았다.

세간에서는 삼성의 성공을 주목했지만 이 회장은 당시를 오히려 절체절명의 위
기로 삼았다. ‘많이 팔아 돈만 벌면 그만’이라는 사고방식이 바뀌
지 않은 한 세계 1위 달성은 의미가 없다고 봤다. 그래서 나온 것이 1993년 독
일 프랑크푸르트에서의 ‘신경영’ 선포다. 이 회장은 세계 곳곳에서
350여시간 동안 ‘절규’에 가까운 연설을 했다. “양이 아닌
질(質) 경영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임직원에게 전파했다. 7&m
iddot;4제(7시 출근 4시 퇴근), 라인스톱제(불량이 발생하면 전 라인을 멈추고
원인을 파악함) 등 파격적인 제도를 도입해 삼성을 한 단계 도약시켰다.

1997년 한국은 국제통화기금(IMF) 체제에 들어갔다. 국가가 위기에 빠졌지만 삼
성은 선제적으로 위기 요인을 제거했다. ‘파격적이고 성역없는 구조조정
’을 내세워 59개 계열사를 40개로 줄이는 등 조직 재정비를 단행했다. 그
결과 삼성은 위기를 기회로 삼아 한 층 더 성장할 수 있었다. 이 회장의 경영
혜안이 돋보이는 순간이었다.

2003년 이후엔 시대 변화에 맞춰 융합, 디지털, 소프트 등의 개념을 경영에 적
극 도입했다. 2005년 ‘밀라노 선언’을 통해 ‘디자인 삼성&r
squo;의 기치를 들었다. 이후 브랜드 가치에 아낌없이 투자했다. 이는 삼성이
세계 스마트폰 시장 1위에 오르는데 밑거름이 됐다. 2008년 ‘삼성 특검&
rsquo;으로 경영일선에서 잠시 물러났던 이 회장은 2011년 4월 출근했다. 애플
이 삼성전자가 아이폰을 베꼈다며 특허소송을 제기한 직후다. ‘출근 경영
’을 시작한 이 회장은 다시 한번 삼성에 ‘위기론’을 불어넣
어 갤럭시S 시리즈 등 히트작을 만들어냈다. 갤럭시S 시리즈로 삼성은 2012년
애플을 넘어 세계 스마트폰 시장 1위 기업으로 도약했다. 인재 경영…인
생 대부분 ‘인간 공부’
이건희 경영은 ‘인재 경영’으로 요약된다. 이 회장은 1990년대 중
반 사장들에게 ‘5~10년 뒤 뭘 먹고살 것인지’ 보고서를 내도록 했
다. 보고서를 읽은 이 회장은 “원하는 답을 쓴 사장은 아무도 없다. 1년
앞을 내다보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변하는 현실에서 5~10년 뒤를 예측하는 건
불가능하다. 해답은 이런 변화에 대처할 수 있는 인재를 구하고 키우는 것&rd
quo;이라고 했다. 사장들에게 인재의 중요성을 강조한 일화다.

친구 홍사덕 의원의 회고에 따르면 이 회장은 고교 때부터 “나는 사람에
대한 공부를 가장 많이 한다”고 했다고 한다. 이런 인간에 대한 통찰력
은 인재 경영의 바탕이 됐다. 이 회장은 임직원들을 뽑을 때 직접 면접을 6~7시
간씩 했다. S급 인재를 뽑아오라며 사장들을 다그치기도 했다. 1993년 임원들을
프랑크푸르트 등으로 불러 신경영 강연을 할 땐 “인간미를 찾자, 뒷다리
잡지 말자”고 말을 시작했다. ‘임직원이 서로 믿고 힘을 합쳐 한
방향으로 가면 초일류 기업이 될 것’이란 것이 주요 내용이었다. 어떻게
비용을 아끼고, 어떤 제품을 개발할지가 아니었다. 삼성이 이 회장의 강의를
요약해 교육용으로 만든 ‘신경영’ 책자는 236페이지 중 처음 96페
이지가 인간미, 도덕성, 에티켓에 관한 내용이다. 이 같은 인간 중심의 접근법
은 삼성이 흔들림 없이 성장하는데 저력으로 작용했다.황정수 기자 hjs@hanky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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