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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드인 코리아" 격 올린 이건희 회장 별세
프라임경제 | 2020-10-25 12:12:15
[프라임경제] 삼성그룹의 이건희 회장이 향년 78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27년간 그룹을 이끌며 삼성의 무대를 글로벌로 옮긴 이 회장의 일화를 돌아봤다. 이 회장이 선봉에서 '메이드인 코리아'의 격을 높여왔다는 사실은 부정하기 어렵다.

이 회장이 삼성을 이끌기 시작한 시점은 1987년이다. 앞서 1969년 이 회장의 형인 이맹희 전 CJ회장과 이창희 전 세한그룹 회장이 벌인 '왕자의 난'에 따른 여파로 일찌감치 호암 이병철 회장의 경영권 승계 대상으로 낙점받았지만 실제 경영권을 물려받은 것은 그로부터 18년이 지나고 나서다.

그 사이 이 회장은 본인이 삼성을 이끌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동양방송과 중앙일보를 맡아 이끌던 시절 한국 반도체의 인수를 추진한 결과는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부의 초석이됐다. 결과론으로 반도체는 삼성의 경쟁력을 갖출 수 있게 했다. 경영인으로 선견지명을 갖추고 있음을 보여준 것.

회장이 된 이듬해인 1988년이 삼성그룹의 창립 50주년 행사에서 이 회장은 삼성의 제2창업을 선언했다. 인간중심·기술중시·자율경영·사회공헌을 경영의 축으로 삼아 세계 초일류 기업으로의 도약을 천명했다.

이어 삼성가의 분리작업을 마무리 한 가운데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린 사장단 회의에서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라"며 제2의 창업을 선언했다.

이 회장의 작심발언은 국내 재계를 뒤흔들었다. 완성됐다고 여겨지던 삼성그룹이 전면 개조를 추구하며 품질경영, 디자인경영 등 다음 세대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포석을 준비했기 때문이다.

이후 반도체를 중심으로 사업을 재편하는 과정을 추진했고 이 회장의 취임장시 1조원의 시가총액은 400배 이상의 성장으로 확인됐다.

특히 TV등을 포함한 백색가전의 경쟁력 확보는 반도체 중심 재편과 함께 국가 브랜드 전반에 긍정적인 영향을 제공했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에 대한 유난스러운 집착의 결과다. 글로벌 시장에서 '메이드인 코리아'가 갖는 의미를 긍정적으로 바꿔놓은 삼성의 역할을 고려하면 이 회장의 업적은 과소평가된 부분이 분명히 있다.

스마트폰의 등장은 삼성에게 다음 세대로의 도약을 제공해줬다. 이 회장은 글로벌 경쟁사인 애플과의 특허침해 소송에도 큰 관심을 기울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삼성이 안드로이드 진영에서 세계 최고의 자리를 지킬 수 있는 배경이 됐다.

삼성 성장의 배경으로 이 회장이 2002년 조성한 '삼성이건희장학재단'도 빼놓을 수 없다. 당시 이 회장과 이재용 부회장의 사비 1500억원을 들여 만든 재단은 일견 이재용 부회장의 승계작업의 초석으로 조명받았다.

이 부회장이 내놓은 돈의 출처가 삼성전자의 전환사채를 주식으로 바꾼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결과를 고려하면 재단은 사회적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했다. 14년간 인재를 국내에 묶어 두기 위해 더 나은 혜택을 제공한다는 취지를 온전히 지켜왔기 때문이다.

삼성장학생들은 다시 '메이드인 코리아'의 가치를 높이는데 기여했다. 삼성의 장학금 지급 조건이 수혜 기간동안 한국 국적을 유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삼성이 이들을 적극적으로 채용해 인재들이 좋은 기술과 제품을 만들어 낸 수익이 다시 인재를 채용하는 선순환의 구조도 그려질 수 있었다.

반면 기업활동 내내 이 회장의 발목을 잡은 것은 권력 관계에서 나온 유착의혹이다. 일각에서 이를 두고 산업화 과정의 부산물로 취급하지만, 불필요한 사건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가장 유명한 사건은 '삼성 X파일 사건'이다. 2005년 보도를 통해 드러난 삼성의 정치인 유착 정황은 출처가 '국정원'인 불법 감청 녹취 테이프였다. 이 회장의 오른팔로 불렸던 이학수 부회장과 처남 홍석현 중앙일보 부회장의 대화를 통해 대선후보를 비롯한 유력 정치인, 검찰 등에 전방위 뇌물 살포의 과정이 고스란히 드러난 바 있다.

이 사건은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로 불이 붙게 됐다. 삼성그룹 구조조정본부 법무팅장을 맡았던 김 변호사는 이건희 회장의 지시로 삼성이 비자금을 조성해 임직원 명의의 차명주식 형태로 숨기고, 이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잡음을 방지하기 위해 검찰이나 국세청 등 권력기관에 로비를 해왔다는 충격적인 내용의 양심선언을 하며 이 회장에 대한 본격적인 고발을 시작했다.

2007년 국회는 '삼성 비자금 의혹 관련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 이른바 삼성특검법을 통과시켰다. 2008년 4월 특별검사팀은 이건희 회장이 불법적 경영권 승계 과정에 개입하고, 4조5000억원에 달하는 차명자산을 보유하면서 세금 1128억원을 포탈한 사실을 확인해 기소했다.

이 사건은 이 회장을 경영에서 물러나게 만들었다. 그리고 2010년, 특별사면 이후 3개월만에 이 회장은 '평창올림픽 유치'를 명분으로 현장에 돌아왔다. 당시 고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유치위원단장으로 활동했지만 IOC가 이 회장의 위원 자격을 인정해 대외 활동의 방향과 당위성도 확보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도 이 회장에게 올림픽 유치는 남다른 사연이 있는 분야다. 이 회장이 취임하던 당시는 삼성의 재계 라이벌인 현대그룹의 고 정주영 회장이 일선에서 유치 활동을 펼친 서울 올림픽이 개최됐던 시기다. 기업간의 직접적인 비교는 아니지만, 국가에 대한 기여를 논할 때 마다 현대그룹의 서울올림픽 유치에 힘이 실려왔던 흔적이 있다.

이후 정몽준 현대중공업 회장이 기여한 2002 월드컵과 정몽구 회장이 기여한 여수 엑스포 등 글로벌 행사가 누적이 될 수록 현대가의 국가기여에 대한 칭송은 높아졌다. 올림픽을 위해 나설 조건은 충분했다. 평창이 개최지로 선정된 이후 이 회장이 대중 앞에서 처음 눈물을 흘렸다는 일화는 이런 면에서 공감이 됐다.

2014년 이 회장은 급성심근경색으로 쓰러져 자택 인근 병원에서 심폐소생술을 받고, 서울 일원동 삼성서울병원으로 이송. 이후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아왔다.

한때 의식을 회복해 재활치료를 받기도 했지만, 끝내 병상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삼성은 "고인과 유가족의 뜻에 따라 가족장으로 치르기로 했다"고 전했다.

관련해 재계 관계자는 "고인의 과가 분명하다고 비난만을 받기에는 억울한 면이 많은 기업인으로, 되려 국민의 일원으로 '메이드인 코리아'의 격을 높인 삶에 대해 조명할 필요가 충분하다"며 "분명한 공에 대해서도 알려져 존경받을 경영인으로 기억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강경식 기자 kks@newsprime.co.kr <저작권자(c)프라임경제(www.newsprime.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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