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빙 | 2026-10-17 17:41:31

할리데이비슨에 입문한 사람은 어떻게 팬이 되는가. 28회 코리아 내셔널 호그 랠리 첫날이 입문자가 어떻게 들어오는지를 본 날이었다면, 둘째 날인 17일은 입문이 어떻게 깊은 팬덤으로 바뀌는지를 찾는 날이었다. 행사장 곳곳에서 그 요소들이 읽혔다. 합법 커스텀으로 방향을 바꾼 커스텀 킹 콘테스트가 그중 하나였고, 웰리힐리파크 메인 스테이지 한쪽에 올해 처음 선 '할리 스토리(HARLEY STORY)' 존이 또 하나였다.
커스텀 킹이 보여준 것이 '안전하게 오래 탈 수 있다'는 신뢰를 아내와 가족, 주변 사람들에게 심어주는 시간이었다면, 할리 스토리가 보여준 것은 '오래 탈수록 가치가 붙는다'는 사실을 오너 자신이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할리 스토리는 호그 멤버들이 소장하고 있는 역사적인 모델을 한자리에 모은 첫 전시다. 대부분 지금은 단종된 모델이고, 모두 지금도 주인이 타고 다니는 바이크다.
할리데이비슨코리아 관계자에게 올해 꼭 봐야 할 것을 물었더니 돌아온 답이 이 전시였다. 옛날부터 지금까지 할리의 흐름을 한눈에 느낄 수 있게 새로 만든 콘텐츠라는 설명이었다. 전시 바이크를 직접 선별한 할리데이비슨 남양주점 김동로 점장에게 한두 대만 골라 달라고 했다.





1983년 관용으로 수입된 셔블헤드 FLH… "경찰이 10년 타고, 그 뒤 30년을 한 사람이 탔다"
김 점장이 가장 먼저 세운 바이크는 짙은 녹색의 1983년식 일렉트라 글라이드, FLH다. 안내판에는 '셔블헤드, 한국에서 43년째 이어지는 고동'이라고 적혀 있다. 1983년 관용 모터사이클로 수입돼 경찰 오토바이로 쓰인 모델이다. 김 점장은 "대한민국 초대 기동순찰대 바이크"라고 소개했다. 미국 드라마 속 백색 순찰 바이크가 한국 도로에도 있었던 셈이다.
경찰에서 10년을 운용한 뒤 경매로 민간에 불하됐고, 현재 차주 연광진 씨가 1993년 무렵부터 30년 넘게 보유해 왔다. 수입 시점부터 세면 43년이다. 원래 흰색으로 출고된 경찰 바이크를 녹색으로 다시 칠하고 'Rose in Harley' 레터링을 넣은 것 외에는 거의 출고 상태 그대로다. 계기판의 적산 거리계는 7만8,000을 넘기고 있었다.
셔블헤드는 1966년부터 1984년까지 할리데이비슨이 쓴 엔진의 별명이다. 1984년 에볼루션 엔진으로 넘어가기 직전 세대로, 손으로 만지며 고쳐 타던 시절의 마지막 엔진이다. 차주는 본래 음향 분야 종사자였지만 이 바이크를 오래 타는 동안 엔진을 직접 분해하고 수리할 수 있는 수준까지 정비 기술을 익혔다고 한다. 오래된 할리를 유지한다는 것은 손재주를 배운다는 뜻이기도 하다.
김 점장은 이 바이크의 가치가 커스텀이 아니라 원형 보존에 있다고 설명했다. "부품을 바꾸거나 손대면 오히려 가치가 떨어진다"는 것이다. 지금도 이 모델을 원하는 수요가 있고, 거래 가격은 클래식 카처럼 상당한 수준에서 형성된다고 했다. 커스텀 킹에서는 손댄 흔적이 보이지 않는 커스텀이 트렌드였다면, 여기서는 아예 손대지 않은 것이 가치다.



공장에서 커스텀을 끝내고 나온 2002년식 CVO… "국내에 두 대 들어와 한 대가 아직 현역"
두 번째로 고른 바이크는 블랙 차체에 플레임을 입힌 2002년식 CVO 다이나 와이드 글라이드다. CVO(Custom Vehicle Operations)는 할리데이비슨 본사 공장에서 출고 단계부터 커스텀을 완성해 내보내는 최상위 라인업으로, 김 점장은 "벤츠로 치면 AMG"에 비유했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이 열리던 해에 나온 한정 생산 모델이다.
국내에는 단 두 대만 들어왔고, 그중 한 대가 차주 김학필 씨의 손에서 지금까지 현역으로 달린다. 탱크와 펜더의 플레임 그래픽과 레터링에는 실제 금도금이 들어갔고, 출고 당시 적용된 스크리밍 이글 옵션과 타조 가죽 시트가 그대로 남아 있다. 24년 전 출고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 전시의 이유다. 손으로 고쳐 타는 셔블헤드와 공장에서 완성돼 나온 CVO는 정반대의 바이크지만, 원형을 지켰다는 점에서는 같다.
전시존에는 이 두 대 외에도 1990년대 다이나, 스포스터 등 멤버들이 내놓은 소장 바이크가 줄지어 섰다. 흥달 커스텀이 순금 24K로 손본 2017년식 소프테일 슬림 S까지 연대와 성격이 제각각이다. 공통점은 모두 번호판을 달고 달리는 바이크라는 것이다. 박물관이 아니라 주차장이었다.
같은 시각 전시존 건너편에서는 경찰인재개발원 소속 경찰 라이더들이 현행 순찰용 일렉트라 글라이드로 슬라럼 시범을 보였다. 1983년 경찰이 탔던 FLH가 서 있는 자리에서 43년 뒤의 경찰이 같은 계보의 바이크를 몰았다. 400kg에 가까운 투어링 바이크가 콘 사이를 빠져나가는 솜씨에 호그 멤버들의 박수가 쏟아졌다. 한국 경찰의 할리는 43년째 현역이었다.




기자의 눈, 팬덤을 깊게 만드는 요소들… "오래 탈수록 가치가 붙는 바이크는 주인을 놓아주지 않는다"
팻 보이 앞에서 본 것이 입문의 문턱이었다면, 셔블헤드 앞에서 본 것은 팬덤의 깊이였다. 10년 된 스마트폰을 자랑하는 사람은 없지만, 43년 된 할리를 세워두면 사람들이 멈춰 선다. 할리는 소비재가 아니라 소장품이고, 소장품은 주인을 쉽게 놓아주지 않는다. 오래 탈수록 가치가 붙는다는 사실이 입문자를 팬으로 바꾸는 요소 중 하나다.
그 가치의 주인은 브랜드가 아니라 오너다. 경찰에서 넘겨받은 바이크를 30년 타면서 엔진 분해를 배운 사람, 두 대뿐인 한정판을 24년째 출고 상태로 지키는 사람. 할리의 1909년 V트윈 설계가 바이닐 레코드처럼 보존되는 이유는 공장이 아니라 이런 차고에 있다. 처음 핸들을 잡은 입문자가 '언젠가 저 자리에 내 바이크가 서겠다'는 그림을 그리는 순간, 그는 고객이 아니라 팬이 된다.
가족과 주변에 심어주는 안전의 신뢰, 그리고 오너 자신이 확인하는 오래 타는 가치. 둘째 날 행사장에서 읽은 팬덤의 요소들은 결국 하나로 모인다. 할리 팬덤은 사서 쓰고 버리는 팬덤이 아니라, 지켜서 물려주는 팬덤이라는 것이다. 바이크를 물려주는 것은 세월을 물려주는 것이고, 그 세월을 받은 다음 주인은 입문자가 아니라 처음부터 팬이다. 올해 처음 만든 할리 스토리가 매년 이어진다면 한국 호그 랠리는 신차 행사가 아니라 세월을 전시하는 행사가 될 것이다.
* AVING NEWS는 기사 편집 시, AI도구를 사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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