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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은 최첨단, 협상은 조선시대"…트럼프 룰에 갇힌 한국
비즈니스워치 | 2025-09-12 15:34:03

[비즈니스워치] 강민경 기자 klk707@bizwatch.co.kr

/그래픽=비즈워치



7일 만의 귀국이다. 미국 조지아 현대차·LG에너지솔루션 합작 공장에서 체포된 근로자 316명이 전세기를 타고 귀국길에 올랐다. 그러나 안도의 순간은 길지 않았다. 전세기가 이륙한 그날, 트럼프 행정부는 "한국은 유연함은 없다"는 선언과 함께 관세 카드를 다시 꺼내 들었다. '귀국'이라는 해결 장면을 연출하자마자 새로운 짐을 얹은 셈이다. 전형적인 '병 주고 약 주기'다. 트럼프는 위기를 만들고 해법을 팔며 협상의 무게추를 끊임없이 자신 쪽으로 당겨왔다. 한국은 또다시 수세에 몰리고 있다.



트럼프, '일자리 프레임'으로 지지층 결집·실리 확보

 



지난 11일 오전 11시 38분(현지시각) 애틀랜타에서 출발한 대한항공 전세기는 12일 오후 3시 30분 인천에 도착할 예정이다. 박윤주 외교부 1차관과 김동명 LG에너지솔루션 대표가 동승했다. 구금된 한국인 317명 중 316명이 귀국했고, 1명은 잔류를 선택했다. 중국과 일본 국적자를 포함해 모두 330명이 귀국길에 올랐다. 



전세기가 이륙한 당일, 트럼프 행정부는 다시 통상 의제를 꺼내 들었다. 러트닉 미 상무장관은 CNBC 방송에서 "한국은 협정을 수용하거나 관세를 내야 한다"며 "유연함이 없다"고 못 박았다. 수백 명의 귀국이 이뤄진 순간과 관세 압박 메시지가 겹친 것은 단순한 우연으로 보기 어렵다. 안도와 위협을 병치해 한국을 협상 테이블에 더 단단히 묶어둔 셈이다.



지난 7월 양국은 상호관세를 25%에서 15%로 낮추는 대신 한국이 3500억달러를 투자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이 거대한 투자금을 어디에, 어떤 방식으로 집행할지, 투자에서 발생하는 수익을 어떻게 나눌지 등을 두고 논의가 꼬이면서 협상은 교착상태에 빠졌다. 



미국은 자국이 원하는 인프라와 에너지 프로젝트에 한국의 투자금을 쓰길 원했고, 수익 배분에서도 미국 몫을 확대하려는 입장을 고수했다. 러트닉 장관이 "유연함 없는 한국"이라 단언한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이는 곧 한국이 미국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관세를 다시 25%로 되돌리겠다는 노골적 압박으로 해석된다.




2025년 트럼프 관세정책 타임라인./그래픽=비즈워치



박상기 한국협상학회 부회장은 이번 사태를 '미국 스스로 문제를 만들고 해결 명분을 팔아 대가를 챙기는' 전형적 전술로 봤다. 박 부회장은 "부당해 보이는 조치일수록 협상장에서 부담이 상대 쪽으로 넘어간다"며 "미국의 '병 주고 약 주는' 방식이 효과적이었다"고 진단했다. 



미국의 전술에 대해 그는 '(걱정)거리 만들기'라는 개념으로 설명했다. 구금과 송환으로 한국 기업과 근로자는 재입국과 공정 안정화라는 걱정을 안게 됐고, 이 걱정이 거래의 재료가 된다. 미국은 그 걱정을 풀어주는 대신 투자 방식과 수익 배분에서 더 많은 몫을 요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를 '니블링(Nibbling)'의 확장으로 설명했다. 니블링은 쥐가 음식을 조금씩 갉아먹듯 협상 마지막에 상대방에게 소규모 양보를 끊임없이 요구하는 기법이다. 단일 사안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차후 거래의 운을 띄우는 수단으로 활용, 결국 상대의 체력을 소진시키는 전략이다. 큰 합의가 있어도 장면을 새로 만들면 요구를 다시 올릴 수 있다는 점에서 이번 구금 사태 역시 같은 맥락이라는 얘기다.



"반발도 전략…'투자 지연 가능성' 테이블에 올려라"



박 부회장은 이번 사태의 정치적 배경도 강조했다. 그는 "트럼프는 제조업 일자리 프레임으로 서민층을 묶는다"며 "한국 기술자 문제가 불거지면 '우리 일자리를 빼앗긴다'는 감정을 자극하기에 적합한 소재"라며 말했다. "트럼프는 겉으로 강경 발언으로 싸우는 모습을 보여주고 실제 협상장에서는 무마하는 패턴을 반복한다"며 "지지층에게는 정치적 효과를, 협상장에서는 실리를 챙기는 셈"이라고 부연했다.



이어 그는 "기존 공화당 대통령들이 기업 중심에 머무른것과 달리 트럼프는 서민 지지층까지 포섭하려 한다"며 "외국 인력을 몰아내고 자국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메시지를 부각시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짚었다. 결국 한국 기업은 공장 안정화 지연과 인력 수급 차질 같은 단기 충격을 피하기 어렵고, 이러한 불안이 한미 협상 테이블에서 미국이 지렛대로 활용할 카드가 된다는 분석이다.



그는 한국의 대응을 "백면서생(白面書生) 같다"고 꼬집었다. "기술은 최첨단이지만 협상은 조선시대 수준, 한국의 대미 협상력은 200년은 뒤떨어졌다"고 직격했다. 이어 "현재 외교부는 협상력이 제로"라며 "기업 총수들을 데려다 숫자만 더 크게 적어 미국에 보여주는 협상이 어디 있느냐. 일본과 유럽도 그러한 방식으로 하지 않는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이번 사태로 약속된 투자 일정에 차질이 생길 위험을 공식화하고, 미국이 직접 해법을 내도록 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단순 유감을 표명하거나 선의에 기댄다면 같은 부담이 다음 국면서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진단이다.




박상기 한국협상학회 부회장





박 부회장은 "반발도 전략"이라며 "투자 지연 가능성을 테이블 위에 올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단순 유감 표명에 머무르지 말고 '왜 불가능한지'를 숫자와 일정으로 증명해 미국도 피해입는 구조로 보여줘야 균형이 맞는다는 주장이다.



한국 내 생산시설 확충이 늦어지면 임금과 생산성이 떨어지고 기술 업그레이드 지연은 고부가가치 축소로 이어진다. 이러한 손실은 한국만의 부담이 아니라 미국에도 직격탄이 된다. 투자 차질과 이미지 훼손은 미국이 감수하기 어려운 비용이며, 이러한 현실적 위험을 협상 테이블 위에 올려야한다는 설명이다.



상호관세를 15%로 낮추는 합의는 아직 최종 서명이 이뤄지지 않았다. 세부 조건을 두고 교착 상태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그는 이번 국면을 "마지막 기회"라고 규정했다.



그는 "15% 유지가 현실화되려면 공장 안정화 단계, 비자 처리 기한, 현장 투입률 같은 지표를 합의문에 명시해야 한다"며 "해당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면 자동으로 시정 절차가 작동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결국 향후 투자 협상 과정에서 추가 요구가 나오더라도 '들어주면 끝'이 아니라 무엇과 교환하는지까지 구조화해야 한다는 것이 박 부회장의 조언이다. 그는 "투자 지연 리스크를 미국에 돌려야 균형이 선다. 협상은 감정이 아니라 수치와 일정의 언어"며 "지금 구조를 바꾸지 못하면 한국은 앞으로도 같은 대가를 반복해 지불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박상기

? 한국협상학회 부회장

? BNE글로벌협상컨설팅 대표

? 협상전략AI 네고메이트(Negomate) 개발자

? 국제협상 칼럼니스트

?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국제협상 겸임교수

? 연세대 협상학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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