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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허벌판이 주차장?…브로커 판치는 차고지증명제
한국경제 | 2017-09-25 07:14:24
[ 박진우 기자 ] 인근에 군부대가 훤히 보이는 경기 포천시 관인면 삼율리 19
8의 2.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이지만 엄연히 포천시에 등록된 영업용 화물자동
차 차고지다. 인근 주민은 3년 전만 해도 논밭이던 이곳이 자기도 모르는 새 차
고지로 바뀌었다고 했다. 3년 동안 화물차 한 대 들어온 적도 없다고 했다. 바
닥은 폐자재로 다져졌다. 본래 토지 주인이자 지금은 관리자가 된 장모씨(57)는
“나중에 용도가 바뀌어도 쓸모없는 곳이 돼 버렸다”고 했다.

인근 차고지 관리자는 “차고지를 영업용 화물차를 가진 개인에게 빌려주
고 브로커에게서 돈을 받는다”고 설명했다. 실제 인터넷에는 수많은 차고
지 증명 대행업체가 있다. 중고차를 사면 무료로 차고지를 증명해 준다. 한 알
선업자는 “(소개해줄 차고지는) 주차를 위한 것이 아니라 허가를 받기 위
한 목적”이라고 말했다. 자동차 중량에 따라 연간 20만~35만원만 내면 화
물차 영업허가에 필요한 차고지증명 서류를 발급해 준다.

영업용 화물자동차 허가를 받을 때 차고지증명을 의무화한 차고지증명제가 사실
상 유명무실화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증명된 차고지에 주차하는 운전기사는 없
다고 봐도 된다는 게 대행업체 관계자 전언이다. 차고지를 활성화해 위험한 도
심 불법주차를 없애겠다는 차고지증명제 도입 취지가 무색해진 것이다.

차고지는 현장 확인이 어려운 파주, 연천, 포천, 용인, 화성 등 경기 외곽에 밀
집해 있다. 포천의 경우 사설 차고지는 4738개에 달한다. 파주, 용인, 화성에
있는 차고지는 각각 1000여 개를 웃돈다.

상당수 지방자치단체는 차고지 약식도면, 토지등기부등본이나 토지대장, 차고지
임대계약서 등 요건만 갖추면 현장 확인 없이 차고지 허가를 내주고 있다. 실
제 주차가 가능한 곳에 있는지, 아스팔트가 깔려 있는지, 펜스는 있는지 확인이
안 된다는 것이다. 담당 공무원들은 “지자체당 차고지 허가 담당 공무원
이 한 명에 불과하다”며 “모든 차고지가 제대로 관리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없다”고 토로했다.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에 따르면 일반화물자동차운송사업 허가를 받으려면 화물
자동차 한 대당 해당 화물자동차 길이와 너비를 곱한 면적의 차고지증명을 제출
해야 한다. 화물차량은 사업자 등록지 반경 4㎞ 이내에 차고지를 갖춰야 영업허
가가 나온다.

하지만 규제완화 차원에서 주사무소 또는 영업소가 시·군에 있는 경우
그 시·군이 속하는 도와 맞닿은 특별시·광역시·특별자치
시·도에 있는 공동차고지, 공영차고지, 화물자동차 휴게소, 화물터미널
또는 지자체 조례로 정한 시설을 차고지로 이용할 수 있도록 법이 개정되면서
경기 외곽에 차고지가 급증했다.

차고지증명제가 유명무실화하자 화물차가 불법주차된 도로의 운전자나 주택가
주민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 파주시에 사는 고모씨(33)는 “차를 몰아 퇴
근할 때마다 아파트 입구로 향하는 우회전 차선에 화물차가 세워져 있어 수십
차례 민원을 제기했다”며 “담당 구청은 수백 건의 민원을 받은 뒤
에야 처리에 나섰다”고 꼬집었다.

소관 부서인 국토교통부는 “지자체와 협의해 차고지증명제 개선안을 찾고
있으나 대책 마련이 여의치 않은 상황”이라고 밝혔다. 일단 국정과제로
전국 영업용 화물자동차 45만 대의 60%까지 수용할 수 있도록 공영차고지를 확
충할 계획이다. 한 지차체 관계자는 “차고지 허가를 받기 위해 내야 하는
서류 요건을 지금보다 강화하고, 거주지 제한 규정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rdq
uo;고 지적했다.

■ 차고지증명제

차고지 연계 자동차 등록제. 영업용 화물자동차를 허가받는 경우 행정기관에 차
고지 확보 증빙서류를 제출해야 운행을 허가하는 제도다.

박진우 기자 jw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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