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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말보다 주먹이 가까운 미국
파이낸셜뉴스 | 2025-10-12 19:35:03
박종원 국제부
지난 1일(현지시간) 미국 공영방송 PBS는 눈에 띄는 설문조사 결과를 내놨다. 1477명에게 물어보니 30%는 '나라를 바로잡기 위해 폭력이 필요할 수도 있다'고 답했다. 이는 지난해 4월(19%)에 비해 크게 올라간 숫자다. 어쩌다 민주주의의 첨병이었던 미국에서 국민 중 약 3분의 1이 정치폭력을 지지하게 됐을까.

영국 런던정치경제대학(LSE)은 지난달 블로그에서 세 가지 원인을 꼽았다. 첫 번째는 고위 정치인들이 상대를 '적'으로 규정하고 '갈라치기'에 집중한다는 것이다. 이들을 추종하는 일반인들은 극단적 표현이 지속되면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상대 진영을 증오하게 된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비롯한 우파 진영의 막말들은 새롭지도 않다.

신기한 것은 최근 좌파 진영에서 정치폭력을 옹호한다는 점이다. PBS 설문에서 폭력을 지지하는 민주당 지지자 비중은 28%로 18개월 전보다 16%p 늘었다. 이는 공화당 상승폭(3%p)의 5배가 넘는 수치다. 미국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지난 9월 보고서에서 올해 약 30년 만에 처음으로 좌파의 정치테러가 우파보다 많았다고 분석했다.

트럼프는 지난달 우파 논객 찰리 커크 암살과 이민당국 피습을 언급하며 좌파 진영과 민주당을 맹렬히 비난했다. 그는 지난 7일 민주당이 "통제 불능이며 지도자가 없다"고 말했다.

트럼프의 발언은 좌파 진영의 현주소를 설명해 준다. LSE는 정치폭력이 성행하는 두 번째 이유로 기성정당의 조직 붕괴를 언급했다. 한 진영을 대표하는 정당이 지지자를 집결하는 과정에서 책임을 피하려고, 혹은 정치적 무능으로 정치 인플루언서 등에 기대면 자연히 소속 진영의 통제력을 잃게 된다. 이는 극단적인 폭력을 부추기는 선동가들을 막을 수 없다는 의미다. 민주당은 트럼프의 말처럼 지난해 대선 패배 이후 구심점을 잃었고, 올해는 33년 만에 최저 지지율을 갈아 치웠다. LSE는 마지막으로 앞서 두 가지 이유로 정치 양극화에 불이 붙으면, 그 자체로 폭력과 양극화가 가속되는 악순환이 생긴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상황은 우리에게 익숙하다. 지난해부터 수많은 폭력사태를 겪은 한국 정치권에서는 여전히 누구 하나 책임지고 말리는 사람을 찾기 힘들다. 좌우 모두 국회에서 나오는 소식보다 조회수에 눈먼 인플루언서를 믿는다. 한국 정치판은 물을 뿌려야 할 기성 정치인이 뒷짐만 지는 가운데 바싹 말라가고 있다. 여기에 무책임한 누군가가 불쏘시개를 던지면, 그 불길은 지금 미국보다 덜하지 않을 것이다.

pjw@fnnews.com 박종원 국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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