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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경제 본질은 계획된 질서 아닌 '자생적 질서'…가격·도덕률이 익명의 소비자 신뢰하게 만들어
한국경제 | 2016-02-27 08:56:48
오늘날 반(反)자유주의 진영에서 명확한 뜻을 밝히지 않고 사용하는 용어가 있
다. 신(新)자유주의(Neoliberalism)다. 이 개념을 사용하는 맥락을 보면 경제규
제를 풀거나 복지지출을 줄이고 노동시장 경직성을 완화하는 등 친(親)시장개혁
을 지칭하는 뜻으로 이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친시장개혁의 바탕에
깔린 것은 새로 생겨난 자유주의가 아니라 영국의 애덤 스미스, 독일의 칸트,
프랑스의 장바티스트 세이 등이 개발한 고전적 자유주의라는 걸 알아야 한다.


18~19세기 절대국가와의 이념적 전쟁을 위한 지적 무기였던 자유주의는 자유를
최고 가치로 생각하고 책임윤리를 강조하는 체계다. 이는 개인이 정부 허가 없
이 자유로이 투자·소비·생산·교환할 수 있는 열린 사회다
. 규제가 쌓이고 조세 부담이 커서 경제적 자유가 억압되면 개인의 물질적&mid
dot;정신적 역량이 억제돼 빈곤, 실업, 저성장이 필연적으로 나타난다고 자유주
의자는 끊임없이 경고했다. 그들은 규제를 풀고 정부지출, 세금을 줄이고 건전
한 통화를 통해서만 번영을 누릴 수 있다고 설파했다. 이 전통의 계승자가 하이
에크, 미제스, 프리드먼 등이다. 신자유주의는 자유주의의 정신사적 지식이 없
는 사람들이 친시장개혁을 비판·조롱하기 위해서 만든 용어일 뿐 유용한
말이 결코 아닌 것이 확실하다.

그 비판의 내용이 흥미롭다. 주목할 것은 친시장개혁을 통해 확립되는 자유시장
은 정부의 계획이 없다는 의미에서 ‘무계획적’이기 때문에 위기와
혼란을 야기할 뿐이라는 비판이다. 시장현상을 혼란으로 파악하는 것은 일견
이해할 수도 있다. 시장경제에는 전체적인 관점에서 집단적 목표를 위해 계획을
세우는 사람이 없다. 각자 삶의 계획을 세우고 성공을 위해 서로 경쟁하는 개
인만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인식은 질서란 오로지 전지전능한 힘
에 의존해서만 창출될 수 있다는 믿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런 믿음은 우리 사고방식을 지배하는 이분법, 즉 계획해 만든 인위적 질서(조
직)와 자연적 질서로 나누는 사고의 결과다. 이분법으로는 제3의 질서로서 &ls
quo;자생적 질서(spontaneous order)’의 존재를 이해할 수 없다. 이 질서
는 계획해서 의도적으로 형성한 것도 아니고 인간행동 없이 자연적으로 생겨나
는 것도 아니다. 이것은 인간행동에서 나온 것이지만 누구도 의도하지 않은 결
과다. 시장경제야말로 국가의 계획과 간섭 없어도 시장사람들이 자신의 목적을
위해 거래하는 과정에서 ‘보이지 않는 손’의 원리에 의해 질서가
형성돼 가는 ‘자생적 질서’다.

그런 질서가 가능한 이유는 시장사람의 행동을 안내하는 두 가지 작용 때문이다
. 첫째가 시장에서 저절로 형성되는 가격 구조이고 두 번째가 직업윤리, 인격&
middot;재산 존중, 책임윤리, 약속 이행 등 공동으로 지키는 도덕률이다. 이 두
가지 작용 덕에 시장사람들은 서로를 알지 못하면서도 안심하고 경제적 거래관
계를 가질 수 있다. 타인의 행동을 기대할 수 있게 하는 지식을 전달하는 가격
과 도덕률의 역할 때문이다.

이런 기대의 형성으로 우리는 거대한 사회에서 전혀 알지도 못하는 수많은 익명
의 사람들의 행동에 의존해 우리 계획과 목표를 수행하고 달성한다. 자생적으로
형성되는 시장질서의 결과는 고용, 소득 증대, 빈곤 퇴치 등 경제적 번영으로
나타난다. 시장에서는 어떤 변화든 잘 소화해 그런 경제문제를 스스로 해결하
는 강력한 자생적 힘이 작용한다.

시장은 무계획적이라는 비판에는 시장에 대한 정부 규제가 없으면 대량 실업,
저성장 위기 등 다양한 문제가 야기된다는 인식이 숨어 있다. 그 증거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들먹인다. 친시장개혁으로 무법천지가 된 금융시장의 독재
와 오만에서 위기가 비롯됐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런 비판은 틀렸다. 규제를
풀었기 때문에 위기가 야기된 것은 아니다. 미국 중앙은행(Fed)의 방만한 통화
정책과 정부의 주택시장 간섭이 주범이었다. 주택시장 버블과 금융위기가 그런
정책의 결과였다.

오늘날 우리가 겪고 있는 저성장, 고실업도 규제 없는 시장 탓이 아니라 통화팽
창과 금리를 비롯한 다양한 정부 규제로 야기된 생산구조의 왜곡 때문이다. 대
부분의 경제문제는 경제적 자유를 극대화하는 친시장정책이 아니라 정부가 과거
에 도입한 각종 규제와 정부지출 확대 등의 결과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친시장개혁과 동일시되는 신자유주의를 ‘자유방임’이라고 비판하는
목소리도 작지 않다. 그러나 친시장개혁을 주장한다고 해서 국가가 불필요하다
는 뜻은 아니다. 좌파가 신자유주의의 대표자라고 비방하는 하이에크도 국가의
두 가지 역할을 매우 중시한다. 첫째, 개인의 자유와 재산을 보호하기 위한 국
가의 ‘강제기능’이다. 그런 강제권은 국가가 독점한다. 둘째, 도로
항만 등과 같은 공공재의 생산, 스스로 부양할 능력이 없는 사람들의 생계 보
장 등과 같이 시민 삶의 증진에 봉사하는 ‘봉사기능’이 있다. 이
기능은 국가가 독점해서는 안 된다.

‘자유시장=자유방임’이라고 비판하는 배후에는 국가의 계획과 규제
를 확대해야 한다는 국가주의가 감춰져 있다. 그 바탕에는 ‘시장실패&rs
quo;라는 생각이 깔려 있다. 그러나 자생적으로 형성되는 시장질서에 시장실패
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도 틀렸다. 실패와 성공은 항상 의도(계획)와 목표를
전제한다는 걸 염두에 둬야 한다. 시장실패를 말한다면 시장은 계획해 달성할
집단목표를 전제해야 한다. 그러나 시장은 집단목표를 위해서 계획해 만든 인위
적 질서가 아니다.

시장은 집단목표가 없는 자생적 질서다. 이런 질서에는 개인이 추구하는 개별
목적만 있을 뿐이다. 집단목표로 이상적 상태를 정해놓고 현실시장이 이에 벗어
나면 시장실패라고 비판하는 것은 전적으로 잘못이다. 그런 비판에는 정부는 유
토피아를 이룰 도덕·지적 능력을 갖춘 실체라는 치명적 자만이 깔려 있
다.

이쯤에서만 봐도 좌파진영에서 친시장개혁을 비판하기 위해 만들어낸 신자유주
의란 용어가 틀렸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자유주의 이념의 역사는 물론 시장질
서의 성격과 작동원리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생겨난 것이기 때문이다.

反독점 내세운 유럽 신자유주의. EU의 규제 철학으로

역사적으로 보면 고전적 자유주의의 대안으로 개발돼 오늘날 유럽에서 사용되는
신자유주의 이념이 있다. 지구촌을 사회주의가 지배해 인류의 미래가 매우 암
울하던 193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자유주의는 이념전쟁에서 완벽하게 패배했다. 자유주의자들은 실의에 빠져있었
다. 이때 프랑스 자유주의 철학자 루이 루지에(1889~1982)가 등장했다. 루지에
는 1938년 8월 유럽자유주의자 26명을 초청, 미국 저널리스트 월터 리프만의 저
서 《좋은 사회》의 프랑스어 출판기념회 겸 파리학술회(월터 리프만 콜로키움
)를 5일간 열었다.

회의 주제는 ‘자유주의가 이념전쟁에서 패배한 이유는 무엇인가’였
다. 자유주의 거성 하이에크와 미제스 등을 제외한 대부분은 패배의 원인이 정
치적인 것이 아니라 자유주의 자체의 문제 즉, 경제력 집중과 빈곤문제를 등한
시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독점 규제와 분배정책을 통해서 고전적 자유주의
를 개선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신자유주의라고 불렀다. 역사상 최초의 신자유주
의 명칭이 등장한 것이다. 그 이념적 전통이 오늘날에도 유럽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정치적인 이유로 파리학술회의에 참석하지 못했지만 신자유주의 이념 형성에 영
향을 미친 인물은 프라이부르크학파 창시자인 독일 경제학자 발터 오이켄(1891
~1950)이다. 경제적 자유는 경제력 집중과 카르텔에 의해 억압될 위험성 때문에
별도의 법으로 반(反)독점법이 필요하다는 게 오이켄 사상의 핵심이다.

유럽적 신자유주의는 고전적 자유주의의 대안으로 오늘날 확고한 자리를 차지하
고 있다. 독일과 유럽연합의 독점 규제의 원천과 기본철학은 파리학술회의와 오
이켄을 중심으로 한 프라이부르크학파의 신자유주의 사상에서 나온 것이다.

유럽의 신자유주의는 1947년 하이에크 주도로 창설된 몽펠르랭학회의 이념과 큰
관련성이 없다. 이 학회의 이념은 고전적 자유주의를 비판하기보다 이를 심화
·확대한, 그래서 수식어 없는 자유주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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