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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봉 전 한섬 회장, "골프의류로 '타임·시스템 신화' 다시 쓰겠다"
한국경제 | 2018-11-27 17:22:10
[ 김진수 기자 ] 정재봉 전 한섬 회장(77)은 국내 패션업계를 이끌던 거장이다
. ‘커리어 우먼의 자존심’으로 불린 타임 마인 시스템 등의 브랜드
를 직접 만들고 키웠다. 2012년 그는 갑작스레 현대백화점그룹을 상대로 4300억
원에 회사를 매각하고 떠났다. 얼마 후 골프장 회장으로 변신했다. 경남 남해에
골프리조트 ‘사우스케이프 오너스 클럽’을 지었다. 최근 그가 다
시 의류 사업에 관심을 두고 있다는 소식이 들렸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궁금했
다. 인터뷰를 요청하자 그는 남해로 내려오라고 했다.

이달 초 사우스케이프에서 만난 그는 “작은 도전을 해볼까 한다. 골프장
을 짓고 나니 한국 사람에게 개성있는 골프의류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고 했다. 희수의 나이에 새로운 도전이 부담스럽지 않으냐고 물었다. 그는 &ld
quo;무언가 일을 해야 삶의 의미를 느낄 수 있다”며 “높은 산(한섬
)에 올랐다가 지금은 적당히 낮은 산(골프의류)을 오르려 한다”고 답했다
.

○‘개념 정립’이 사업 성공 비결

정 회장은 사업을 산에 비유했다. 30대에 패션회사 한섬을 이끌고 정상을 정복
했던 그는 “앞으로도 한섬 같은 회사는 나오지 않을 것 같다”고 했
다. 여성복 시장에서 수십 년간 1위를 하는, 그런 회사를 지칭했다. 경쟁이 더
치열해졌고, 디자이너 중심 회사라는 정체성을 지니면서도 대중성을 확보하는
게 쉽지 않을 것이란 예상이었다. 한섬 이후 그는 ‘궁극의 휴식’
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프리미엄 골프리조트 사우스케이프로 새로운 고지에도
올라봤다. 이 산에서 보니 골프의류라는 작은 산이 눈에 들어왔다고 했다. 그
는 “높은 산을 오르는 게 힘들지만 그렇다고 등산가가 아무것도 안 하면
그것도 심심하지 않겠느냐”며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적당한 산에
오르는 게 좋다”고 했다.

과거 한섬의 성공비결을 묻자 그는 “콘셉트(개념)가 있었다”고 했
다. ‘경험을 체계적으로 지식화하는 작업’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 한섬이 대기업 계열 패션회사를 제치고 독보적인 1위가 될 수 있었던 것은 회
사의 방향성을 제대로 잡았기 때문이라는 얘기였다. 이것만으로는 부족했는지
그는 이마누엘 칸트가 한 말이 인사이트를 줬다고 했다.

‘감각 없는 개념은 공허하고 개념 없는 감각은 맹목적이다.’

정 회장은 “디자인의 개념 정의가 안 되고 감각만 앞세우면 회사가 잘나
가다가도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며 “기획 영업 디자인 등 다양
한 업무에 체계를 잡고 방향성을 정해 직원들이 일관성을 갖추도록 하는 게 개
념 정립”이라고 했다.

○골프의류 비즈니스에 도전

정 회장은 매주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사우스케이프 골프장에 머문다. 2013년
11월 개장 이후 일상이 됐다. 그는 “골프를 치다 보니 저절로 방문객의
패션에 눈길이 갔다. 한 달에 새로운 골프의류 브랜드 하나가 생기는데도 패션
감각이 떨어진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이런 생각을 하던 차에 패션
·디자인업계 종사자들도 마땅히 입을 골프의류가 별로 없다는 말을 해
사업 욕구를 자극했다. 정 회장은 “패션감각이 떨어지고 천편일률적인 골
프의류 시장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고 싶다”고 했다.

골프의류 브랜드는 골프장 이름과 같은 ‘사우스케이프’로 정했다.
이곳에서 받은 영감을 토대로 만들겠다고 했다. 정 회장은 “평화로운 남
해를 끼고 있는 사우스케이프 골프장이라는 실체가 존재한다. 골프장에서 받은
영감을 바탕으로 의류를 내놔야 하니 자연스레 브랜드 이름도 같아졌다&rdquo
;고 했다. 그는 또 “여기 와본 이에게는 느낌이 확 다가올 것”이라
며 “골프장의 개념을 구체화해 제품에 녹여내겠다”고 강조했다.

정 회장은 청담동 사무실에 골프의류 사업부를 꾸리고 디자이너 10명가량을 뽑
았다. 정 회장은 “젊은 여성층이 주요 타깃이 될 것”이라고 했다.
생산은 국내 전문업체에 맡길 계획이다. 이르면 내년 봄 시범적으로 제품을 내
놓고 가을께 본격적으로 비즈니스를 시작할 계획이다.

정 회장은 골프의류를 온라인 중심으로 유통할 방침이다. 오프라인 매장은 서울
청담동 프래그숍과 남해 사우스케이프 골프장에만 둘 예정이다. 정 회장은 e커
머스를 동영상 콘텐츠와 접목할 생각이다. 혁신적인 옷을 코디해서 올리면 젊은
수요층이 들어와 살펴보고 구매를 결정할 것이라는 얘기다. 동영상을 정지 화
면으로 보고 재질이나 색상, 가격 등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도록 꾸밀 계획이다
. ○비즈니스 로맨티스트

인터뷰 내내 정 회장이 자신의 정체성을 어떻게 정의할지 궁금했다. 기업가라기
보다 패션 기획자 또는 아티스트에 더 가깝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을 “비즈니스 로맨티스트라고 불러주면 좋겠다”고 했다. 패션
업으로 성공한 비즈니스맨이지만 단순히 기업 마인드로 접근했으면 한섬 매각대
금(4000억원) 대부분을 쏟아부어 사우스케이프라는 골프장을 짓지 않았을 것이
란 게 그의 설명이다. 정 회장은 “나이가 들다 보니 이익은 둘째 치고 하
고 싶은 일을 찾게 된다”며 “그 일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손익을
따지지도 않는다”고 강조했다.

최고의 제품을 선보이고 싶은 욕심은 숨기지 않았다. 1997년 외환위기 때도 한
섬이 세일을 하지 않은 건 유명한 일화다. 브랜드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정 회장은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창업자는 전진하지 않으면 후발업체에
추월당할 것이라며 자기 생애에는 추월당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고 말했
다. 정 회장도 생전에는 어떤 영역에서건 경쟁자들에게 추월당하고 싶지 않다는
얘기로 들렸다.

남해=김진수 기자 tru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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